또 다른 이름의 나로 산다
2288.. 죽어도 지키고 싶었던 숫자 팔팔. 회사 설립일을 기어이 2022년 8월 8일로 해냈다. 설립날부터 못 지키면, 시작부터 맥이 빠질 것 같았다. 좀 더 팔팔하게 시작하고 싶은 그 단순한 마음부터 해내고 싶었다. 만약 이 숫자를 놓친다면 9월 9일 아니면 10월 10일.. 그렇게 집요한 생각과 싸우고 있던 어느 날, 법무사에서 연락이 왔다.
-대표님, 법인 설립 완료 되었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어요... 그럼, 설립일은요? 8월 8일 맞나요?
-네네 당연하죠. 혹시 무슨 의미 있는 날인가요? 궁금했어요.
-의미요? 하고 싶었어요. 그날로요.. 되는 날로 하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날이 되게 하고 싶었어요.
혼자 그렇게 뿌듯했다. 시작부타 1 score 딴것 같았다. 가장 어렵다는 자기와의 약속을 지켜낸 셈이다. 나는 1인 법인 대표다. 일단은 그렇게 시작했다. 이사님 두 분은 아직 국가의 녹을 받는 터라, 나 혼자 그렇게 일단 꾸리게 되었다. 법인 설립은 법무사의 도움을 받았지만, 사업자 등록증 발급과 법인 통장 발급 등등.. 대표이자 비서이자 직원인 나는 그렇게 하나씩 배워 나갔다.
누구나 할 수 있다. 뭐든 해도 된다. 창업과 창작은 그래서 시작은 쉽다. 그리고 설렌다. 없던 것을 만들어 내고,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가고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표와 작가는 다르다. 작가는 그냥 나다. 그래서 그냥 나를 이야기하면 된다. 대표는 또 다른 이름의 나다. 나이지만, 나만의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나를 둘러싼 구성원들의 한 명이자 말 그대로 그들의 대표이다. 마냥 그냥 나 일 수는 없다. 내 이미지가 회사의 이미지가 되고, 내 말이 회사의 어조가 되고, 내 습관이 회사의 패턴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작가와 대표는 나이지만, 다르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새로운 나를 알게 되었다. 조심조심 나의 이야기를 하면서 누군가와 소통하게 되었고, 나에게 위로가 되어 주었다. 작가라서 브런치에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은 지난해 나에게 가장 큰 선물이었다. 그러나 창작은 그렇지 못했다. 고스란히 내 몫의 숙제였다. 편한 친구처럼 찾아가 하소연할 수 없는, 글이라는 틀에 나를 오롯이 녹여내지 못하면, 나는 그렇게 차갑게 혼자가 되었다. 누구도 나에게 말 걸어주지 않는 빛이 들지 않는 방에 갇힌 듯했다. 그래서 작가는 창작과 짝사랑하는 이루어질 수 없는 세상에 사는 것 같다.
꾸준히 나와 만나보겠다며 매일 브런치를 찾아가겠노라 호언 장담했던 올해 초, 나는 작가도 제대로 못하면서 대표라는 이름의 무게에 또 허덕이게 되었다. 작지만 첫 매출은 첫사랑의 기억보다 더 뜨거웠다.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아닌 가슴에서 흐르는 용암 같은 그 탈것 같은 성취감은 대표를 더 대표답게 만들어 주었다. 지난 3월 이사진도 충원하고, 자본 증자도 해냈다. 그렇게 알려진 순서대로 한 계단 씩 올랐지만, 다음 계단은 없었다. 다른 회사에는 있던 다음이 우리 회사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건 대표인 내가 만들어야 하는 일이었다.
지금 그렇게 나는 다음을 만들고 있다. 작가와 대표 사이 그 어디쯤... 어쩌면 오늘처럼 브런치에서 나와 또 다른 내가 만나서 풀 죽어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나에게 또 한 번 손 내밀어 줄 희망이 되어 주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