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라고 상관없어 그냥 우리 꺼하는 거야
학교에 창업을 하겠다고 관련 서류를 제출하고 나니, 여기저기 구멍 난 서류에 추가 작성 요청 전화가 아침부터 쇄도한다. 비워둔 이유는 뭘 기입해야 할지 몰라서 차라리 비워두면 눈에 확 띄니까 놓치치 않고 도움을 주십사 하는 나의 메시지였다. 어설픈 내용을 작성하면, 내용 여부를 떠나서 그냥 지나쳐서 나중에 나중에 다시 처음부터 하라는 경우가 종종 생겨서 애를 먹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유선상으로 과도한 질문을 하면 잘 알지도 못하는 내가 한 설명을 또 잘못 이해하시고 열심히 다른 설명을 하시는 수고가 수포로 돌아가는 경우도 가끔은 있고.. 역시, 공란이 있으니 직접 전화가 와서 나에게 묻고 싶었셨겠으나, 도려 내가 여쭈어보고 바로 작성 후 제출을 완료했다.
그리고 공동설립자들과의 3회 차 정기 미팅이 있는 날이다. 그래 봐야 나 포함 3명이다. 처음에 일단 만나서 이야기나 하자라고 만난 점심이 첫 미팅이 되었고, 여차저차 어느덧 3 회차다. 그리고 재무이사가 회의록도 작성해서 공유한다. 그냥 회사 놀이 같기만 하고 정말 이게 될만한 일인지 늘 의심 속에 대표라는 사람인 나의 마음은 그랬다.
막상 서로 얼굴 보고 앉았을 때는 뜬구름 잡는 소리만 늘어놓던 것과 달리 불과 3번인데, 제법 고민한 흔적과 필요한 일들의 형태를 논의하고 하나씩 "논의 완료"라는 딱지가 회의록에 붙었다. 나는 이 회사의 대표라는 역할을 맡게 되었고, 올해까지는 1인 법인 회사로 운영을 할 방침이다. 2명의 기술이사님과, 재무이사님은 현재 국가에 녹을 먹고 계셔서 겸직은 허가가 안되기 때문에 내년에 회사로 이직하게 되면 다시 주주 형태를 조율하고 재정비가 필요할 것 같다.
창업을 한다고 하니, 벤체 하시나, 스타트업 하시냐 라는 질문을 종종 받게 된다. 그냥 네네 맞습니다.라고 얼버무려 대답을 하곤 했는데, 막상 내가 대표가 되고 보니, 우리 회사의 정체성이 뭔지 나도 궁금했다. 이름이 대표가 아닌 정말 회사를 대표하는 사람이 내가 되어야 하는데, 너무 준비 없이 큰 일을 맡았다.
단순 용어의 정의만 따르자면, "벤처"라는 말은 대한민국에서 90년대 말에 사용된 말이고, "스타트업"은 같은 년도에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사용된 말이다. 일단 처음 사용된 곳이 다르다. 그리고, 벤처기업은 벤처협회로부터 "벤처기업"으로 인정받은 기업이고, 스타트업은 창업 초기 기업 모두를 의미한다. 내가 이해한 바는 그렇다. 그리고 스타트업은 벤처기업과 다르게 기존의 투자 혹은 정부 개입과는 무관한 형태의 기업들이다.
그렇다면 우리 회사는 구분하자면 스타트업이 맞다. 그러나 스타트업이나 벤처나 다양한 형태의 " 자본투자"라는 구조가 회사 설립 전 그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우리 회사의 설립 당시 모두의 뜻이 맞았던 것은 우리는 투자받지 말고 우리 힘으로 일구어 나가자라는 하나의 모토였다. 말 그대로 창업 <스스로 경제를 창출하는 행위>하자는 것이었다.
투자 자체에 대한 부정적 뜻은 전혀 없다. 단지 빚지고 살 수 있는 아니 잠도 잘 수 없는 대범하지 못한 인격체이기에 그릇에 맞는 회사를 하자는 뜻이었다. 다행히 3명 모두 합쳐 한 사람 간도 못될 정도로 간이 작다. 지난 10년간 연구를 통해 쌓아 온 산물을 제공함으로써 연구개발자이자 대표가 차별화된 전문성을 가지고 연구자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취지 었다.
물론 다르게 해석하자면, 우리의 기술을 인정받고 그에 걸맞은 경제적 가치로 매겨 이윤 창출을 하겠다는 뜻이다.
자선사업은 매출 목표 달성하는 그날, 정말 FLEX 한번 해보고 싶다. 마음 한편에 버킷리스트로 남겨 두고 일단 매출 발생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학교에서는 향후 투자 계획에 대해 물었다. 현재는 투자받을 계획이 없다고 하니, 영 싫어하는 눈치다. 사실 처음에 나도 신랑과 투자를 놓고 다투었다. 왜 투자를 받지 않겠다는 건지, 투자받을 자신이 없다는 내면을 투자받고 싶지 않다고 외면으로 드러내는 건 아닌지.. 그런데, 신랑은
-지금까지 연구비 받아보겠다고 과제 제출하는 거랑 뭐가 다를까? 심지어 투자자들은 더 큰 이익을 보고 투자하는 건데 그 압박을 매일 받으라고? 차라리 과제는 결과 없으면 해명이라도 되지만, 투자는 한번 받으면 브레이크 없는 무한 질주야..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맞는 말이다. 과제 하나 제출할 때마다 과한 연구성과를 목표로 해서 평가자들의 마음에 들기를 바라면서도 막상 선정되고 나면 기쁨도 잠시 이 결과를 주어진 시간에 어떻게 달성하지?라는 고민부터 시작이다. 매년 연차보고서 제출 날짜도 어찌나 빨리 돌아오는지.. 우린 그것도 버거운 사람들이다. 그래도.. 투자를 안 받겠다는 건 시장에 물건도 내놓지 않고 우리는 자신 있으니 사고 싶으면 오세요라고 하는 다소 거만해 보이면서도 투자자들에게는 우리 기술을 내보일 기회를 스스로 박탈하는 것 같다.
좀 아쉬울 수 있으나, 학교에는 그렇게 말해다.
-당분간 투자는 받지 않고 회사의 매출이나 연구개발 가능한 크기가 되면 그때 진지 하게 고려해 보겠습니다.
지금 1인 회사라 저 혼자 연구개발하는 것도 무리이고, 연구원을 뽑아서 한다고 해도 전문성 부족으로 기대에 못 미칠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아닙니다.
속내는 사실 어쩔 거야, 그냥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로 창업하겠습니다! 딱 한마디였다.
사실은 나도 동의하는 바다. 투자받을 생각이었다면 훨씬 더 이전에 정말 괜찮은 프로브들이 개발되었을 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이제 다음 도약을 위해 준비 중이다. 서두를 필요 없다. 준비가 되어야 때가 와도 두렵지 않다.
미팅을 마칠 때쯤 마지막 건의 사항이 있으면 이야기하라고 하니, 대표님께서 하실 말 없냐고 물었다.
-저요? 그럼.. 왜, 기술이사님께서 늘 하시는 대박 내지 말자라고 농담처럼 하시는데, 긍정적인 표현으로 바꾸어 보면 어떨까 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밥벌이만 하자 그리고 누군가의 꽃신이 되어주자" 중박이나 소박을 내자 보다 정말 우리가 딱 필요한 만큼 벌 수 있기를 바라고, 우리의 제품이 누군가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꽃신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나를 데리고 사는 것만 알던 내가 결혼을 해서 가정의 아내가 되어 둘 중 하나로 살다가 우리의 결실인 아들이 태어나면서 아들의 엄마까지 되고 보니, 집단에서 어떤 역할을 맡는다는 것은 잠시라도 멈춰서는 안 될 전체의 일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대표라는 직함이 생겼다. 이달 말 학과인사위원회가 열린다는 메일을 전달받았다. 결과는 나도 모른다. 그러나 끝까지 밀어붙여서 꼭 우리는 창업을 할 것이다. 언젠가 우리의 뜻이 선한 영향력이 되어 작지만 다부진 기업으로 꾸준히 묵묵히 성장하는 그림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