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의 기다림이 그리움이 되지 않도록
한국에 들어와서 처음 몇 주는 호텔에서 지내야 했다. 집을 구하러 다녀야 하는데, 미국에서 보낸 자동차는 4주 후에야 한국에 도착한다고 했다. 택시를 타기에는 애매하고 걷기에도 무리인 것 같아 친정엄마에게 부탁드렸다. 새벽에 지방에서 출발하여 다섯 시간을 운전해서 오전 7시에 호텔 앞에 도착한 친정엄마는 사흘을 부동산과 구청, 마트, 상가 등을 오가며 우리의 정착을 도왔다.
친정엄마가 떠나고 서류 작업을 마친 나는 휴대폰 개통을 했다. 그 날 오후 30분 간격으로 휴대폰이 울렸다. 그 번호를 아는 사람은 남편과 친정엄마 뿐이었고, 전화를 거는 사람은 오직 친정엄마였다. 왜 자꾸 전화를 하는 거냐고 화를 냈다. 엄마는 웃으면서 말했다. “아니, 딸한테 이렇게 아무 때나 전화할 수 있는 게 너무 좋아서...” 나는 아무 말도 않고 전화를 끊었다.
오늘 남편과 딸아이와 함께 강화로 갔다. 인적이 드문 계곡 근처에서 커피를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 읍에 들렀다. 강화를 나가는 차들이 많아 잠깐 쉬어가면 좋겠다던 남편이 근처에 갈만한 곳을 찾더니 딸기 책방을 골랐다. 그리고 찾아간 그곳에서 ‘우연히’ 김금숙 작가님을 만났다. 그리고 ‘우연히’ 세상에 나오기 이틀 전 작품인 <기다림>을 만났고 ‘우연히’ 감사한 사인까지 받았다. 그리고 ‘우연히’ 전국 최초 1번 독자가 되는 영광까지 얻게 되었다. 우연히 얻은 기회를 조금 빛내보고자 <기다림> 1번 리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읽고 나니 자꾸 맘이 무겁다.
김금숙 작가의 <기다림>은 엄마의 기다림을 다룬다. 한국 피란길에 남편과 아들을 잃어버린 엄마의 70년 기다림을 딸의 목소리와 엄마의 목소리로 들려준다. 훌쩍 커버렸을 아들 아니 훌쩍 늙어버렸을 아들의 모습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거라는 90세가 넘은 엄마의 기다림. 2020년 9월 추석을 한 주 앞둔 지금 이러한 기다림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생각하다 정부의 이산가족통계시스템을 열람했다. 2020년 8월까지 133,397명. 그중 90세 이상 생존자가 25퍼센트이고 80세 이상까지 하면 65퍼센트 가까이 된다. 그리고 전월 대비 생존자가 316명 감소했다.
그리움과 기다림. 그리움과 달리 기다림이란 말은 희망을 품고 있다. 희망을 품은 기다림이란 말이 오늘은 무척이나 슬프다. 30분 간격으로 전화하던 친정엄마에게 화를 냈던 날 저녁, 친구에게 이런 얘기를 했더니 세 아이를 키우던 중년의 친구는 ‘엄마가 딸을 기다리는 건 어쩔 수 없는 거야’라고 했다. 엄마의 기다림은 어쩔 수 없는 거라고. 그 어쩔 수 없는 기다림을 지금 누군가는 하루하루가 짧아지는 순간에도 하고 있다. 그 기다림이 그리움으로 끝나지 않길 바란다. 희망을 품은 기다림이 계속될 수 있도록 정부도 북한 정부도 함께 힘써주길 기도해본다. 그리고 오늘 나처럼 ‘우연히’ <기다림>과 같은 글과 그림을 많은 사람들이 만날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