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잘 키우고 싶다
에세이 연습 과제 17 - 식물과의 교감 이야기
나는 여태껏 식물을 키운 적이 없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가 키운 식물은 다 죽었다. 죽이는 게 더 어렵다는 천 원짜리 국민 다육이 마저 버티지 못하고 내손을 떠났으니 말 다했다. 나의 집은 식물의 무덤이었다. 해가 짱짱하게 잘 드는 주택이었는데도 내가 들여온 식물의 운명에는 그늘이 드리웠다.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내가 사는 공간에서 식물이 자취를 감췄다.
의사가 우울증 극복 방법으로 식물 키우기를 제안했을 때도 내가 우울증에 걸렸다는 사실에 앞서 내 손에서 죽어가는 식물을 먼저 걱정하는 마음이 드는 것에 적잖이 충격받기도 했다. 그만큼 나는 식물을 키우는 게 두렵다. 또 죽일까 봐 그렇다.
식물과 나는 견원지간 같다. 화분 선물을 종종 받기도 하였는데, 나에게 건네질 때만 해도 멀쩡하던 정말 아무 이유도 없이 애가 시름시름 앓더니 세상을 뜨거나, 몹쓸 뿌리벌레가 알을 까 애를 질식시키거나, 물을 너무 많이 줬거나, 너무 안 줬거나, 너무 햇빛을 많이 쬐였거나, 그렇지 않았거나 한 극단의 이유 중 하나로 항상 죽음을 선택했으니 말이다. 나를 원수만큼 꼴 보기 싫어하지 않고서야 자기 목숨을 내어가면서 까지 보이콧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싸우다가 정든다고, 견원지간에도 로맨스가 있다는데, 나와 식물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존재하나 보다.
‘손을 내밀면 잡힐 것 같이 너는 곁에 있어도 언제부턴가 우리 사이에 흐르는 강을 건널 수가 없네.’
라는 노래 구절을 흥얼거리며 꽃집 앞을 무심히 지나치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1일 원예 수업이 열렸고 참여 희망자를 모집했다. 나는 이번엔 다르지 않을까 하는 조금의 희망을 갖고 참가 신청을 했고, 어느덧 내 앞에는 자그마한 풍란 하나가 놓여 있었다.
입구가 너른 볼 안에 이끼를 둘둘 말아 풍란의 뿌리가 안착할 공간을 만들고, 주변을 숯과 액세서리로 장식했다. 조심스레 풍란을 앉히고 이끼가 축축해질 만큼 물을 듬뿍 주었다. 물은 절대 자주 주면 안 되고, 이끼가 말라갈 때마다 한번씩 듬뿍 적셔 주면 된다는 선생님의 말을 새겨듣고 집으로 고이 모셔왔다.
꽃향기가 바람을 타고 멀리 전해진다 하여 붙은 이름, 풍란. 어부들이 바다에서 짙은 해무를 만나 길을 잃었을 때, 풍란 꽃향기를 맡고서 육지가 가까워졌음을 짐작하고 안심하였다는 서사가 있는 식물. 아직 꽃대를 올리고 꽃잎을 피워내 꽃향기를 뿜고 있지는 않지만 모진 해풍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조상의 DNA를 물려받아서 인지 식물의 무덤이란 오명을 쓴 이곳에서 조차 끈질긴 생명력을 뽐내고 있는 중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아직까지 살아 있기는 한 것이 어쩐지 감동스럽다.
아직은 이 아이를 반려식물로 명명하기 두려운 마음이 든다. 섣부른 결정이 섣부른 결과를 낳을까 봐 그렇다. 이 아이에게 애정을 주는 순간 또 어떤 참사가 벌어질는지... 아직까지는 그래도 죽은 식물의 봉분 정도 되는 나의 집이 식물들의 공동묘지로 진화할지도 모르겠다. 일단 올 겨울을 무사히 나는지 지켜보고 마음의 문을 열어야 겠다. 올 겨울이 고비다. 내가 반려견에 이어 반려식물과도 교감이 가능할지 말지의 여부를 결정하는 이번 겨울. 올해는 풍란의 생육 온도에 알맞게끔만 춥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