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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올리스트 한대규 Dec 12. 2023

하루키 따라 하기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

오늘, 하루키를 따라 해 봤다(‘따라 하게 되었다’가 더 맞는 표현이겠다). 며칠 전까지 읽던 책의 내용을 곱씹다 일어난 일이다. 무의식이 나도 모르는 새 그처럼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모양이다.


책 제목은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와 세계적인 지휘자 세이지 오자와의 대화를 담은 음악책이다.


『오자와 세이지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 무라카미 히루키, 세이지 오자와 | 출판사 비채


하루키 작가와 지휘자 오자와 씨에게는 여러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중에서도 아침잠이 많은 내게 일종의 충격처럼 다가온 사실은, 그들이 4-5시에 하루를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책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이차원의 종이에 인쇄된 복잡한 기호들의 집적을 가만히 응시하고 그곳에서 자신의 음악을 자아내 입체적으로 만드는 것. 그게 오자와 씨의 음악 생활에서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렇기에 아침 일찍 일어나서 혼자만의 공간에 틀어박혀 몇 시간씩 집중해서 악보를 읽는다. 나도 새벽 4시쯤 일어나 홀로 집중해서 일한다. 겨울이면 주위가 아직 캄캄하다. 여명의 조짐조차 없고 새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런 시각에 다섯 시간이고 여섯 시간이고 책상 앞에 앉아 오로지 글을 쓴다.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 』 p.19, 무라카미 하루키
이미지 출처 : publicdomainvectors.org/Public Domain


새벽 5시, 알람도 없이 눈이 떠졌다. 일본과 시차가 없으니 하루키 씨는 이미 샤워도 했고, 커피와 함께 책상에 앉아 작업을 시작했겠군, 하는 생각에 나도 부지런히 샤워를 마치고 책상에 앉았다.


….. 잠이 온다. 분명 가장 작업하기 좋은 시간 이랬는데. 나한텐 아닌가. 바이오 리듬이라는 게 있잖아. 하루 만에 어떻게 적응이 돼. 하루키는 사반세기 이상을 해오고 있다던데. 대단하다….. 나의 눈꺼풀과 그에 대한 나의 존경심은 반비례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를 좋아하고 존경하는 이유가 그가 새벽에 일어나기 때문인 것은 물론 아니다. 작업하는 시간은 사람마다 다른 거니까. 그럼에도 (내 무의식이) 그를 따라 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삶을 비범하게 살아내는 그의 능력이 갖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을 보는 그의 특별한 눈이 부러웠다.


오랜 기간 재즈바를 운영했고 책도 쓴 만큼  재즈에 박식한 건 알았지만, 클래식에도 이렇게 조예가 깊을 줄은 몰랐다. 책을 읽는 내내 과연 나는 하루키처럼 다른 분야의 정점에 있는 대가와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을까, 싶었다.


너무 고되고 괴로워서 출산의 과정에 비유되곤 하는 글쓰기라는 그 힘든 작업을 평생해온 그가 대체 어떻게 이렇게 많은 클래식음악을, 이토록 깊이 있게 감상할 수 있었던 걸까.. (역시 새벽에 일어났기 때문인가?)


아닌 게 아니라 그는 얘기한다. 음악과 글쓰기의 관계는 호혜적이라고. 글솜씨와 음악적 귀에는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무라카미 : 어쩌면 소설을 쓰다 보면 점점 자연히 귀가 좋아지는 게 아닐까 싶단 말이죠. 뒤집어서 말하자면 음악적인 귀가 없으면 글을 잘 쓸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음악을 들으면서 글 솜씨가 좋아지고, 글 솜씨가 좋아지면서 음악을 잘 들을 수 있게 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양 방향에서 상호작용으로.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 』 p.120, 무라카미 하루키


이어서 그는 글쓰기를 누구에게 따로 배운 적이 없다고 말한다. 자신의 글솜씨는 음악에게 배운 것이라는, 나로선 다소 충격적인 고백(?)을 한다.


이어서 ‘리듬’을 매개로 글과 글쓰기에 대한 설명을 하는 부분이 내게는 천재의 머릿속을 여행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수천 곡의 음악을 들은 나의 글쓰기는 왜 이 모양인 것인가, 하는 괴리감과 함께.


단어의 조합, 문장의 조합, 문단의 조합, 딱딱함과 부드러움, 무거움과 가벼움의 조합, 균형과 불균형의 조합, 문장부호의 조합, 톤의 조합에 의해 리듬이 생깁니다.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 』 p.120, 무라카미 하루키


(놀랍게도 하루키의 말에서 ’단어‘를 ’음‘으로, ‘문장부호’를  ‘악상기호‘ 치환하면 음악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얘기가 된다!)


아…! 그가 대단하다고 느꼈던 실체는 ‘연결’에 있었다. 그는 연결의 천재였던 것이다. 리듬이라는 주제로 글과 음악을 하나로 묶어냈다. 그러고 보니 이 책 역시 대화를 옮겨 적은 글임에도 리듬이 살아있었다. 대화 녹음본을 들으며 글로 정리하는 과정에서 하루키가 부여했을 리듬이 읽히기 시작했다.


이미지 출처 : Sabukaru online

하루키는 어린아이처럼 시종일관 묻는다. 둘은 음악을 들으며 음악과 음악계에 대한 이야기를 쉼 없이 나눈다. 뉴욕필 부지휘자의 월급 같은 사소한 얘기부터, 무대 뒤의 비화 같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거쳐 음악인이 가져야 할 태도와 정신과 같이 진중한 주제까지 넘나드는 입체적이고도 흥미진진한 수다다.


하루키의 질문은 때때로 오자와를 당황케 하는데, 그건 그의 질문이 오자와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관점에서 나오는 탓이었다. 나는 그 지점이 좋았다. 좋아하는 것에 대한 자기만의 탐구, 질문, 깨달음. 이 책은 90% 이상이 음악 얘기인 책이고, 제목처럼 오자와가 인터뷰이이자 주인공인(굳이 따지자면) 책이지만, 읽는 내내 하루키의 사고방식과 생각하는 습관을 엿볼 수 있었다.


이미지 출처 : peakpx


그들의 대화 속에 푹 빠져 살았다. 며칠 동안 매일 밤 둘의 대화에 동참해 고개를 끄덕이던 시간은 행복했다. 두 명의 대가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에 벅찼고, 내가 애정하는 작가가 나의 전공인 클래식음악의 팬이라는 점이 왠지 모르게 뿌듯했다.


언젠가는 나도 그가 음악을 듣듯이 글을 읽고 싶어졌다. 비단 글뿐만 아니라 눈앞에 다가오는 모든 삶의 장면들을 나만의 방식으로 읽어내고 엮어내고 싶다. 어쩌면 음악책을 다른 시각에서 읽게 된 것을 보면 그 작업은 이미 시작됐는지도 모르겠다 :)


그나저나, 나는 내일도 5시에 일어나게 될까…?


글 - 비올리스트 한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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