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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순규 May 17. 2024

시간의 기록

들어가며


지금을 기록하자


시간은 기묘한 것이지.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면,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야.

그러나 돌연 우리는 시간만을 느끼네.


호프만슈탈, 〈장미의 기사〉에서


시간은 무엇일까. 한 방향을 향해서 흘러가는 것 같지만 방향이 명확하지 않다. 누구에게나 동일한 흐름 속에서 느끼는 바는 다르다. 계속해서 흐르기 때문에 '현재'라는 것은 멈춰있는 것일까 흘러가는 동안을 뜻하는 것일까. 중학교 영어 수업 시간에서 선생님은 현재를 Present라고 하는 것은 지금이 인간에게 가장 큰 선물이기 때문이라 했다. 누군가에게 현재는 행복한 선물일 수 있으나, 다른 이는 근심의 시간일 수 있다. 이처럼 우리는 서로 다른 흐름 속에서 현재를 느끼며 체험하고 있다. 


우리에게 현재는 어떠한 시간으로 기록될까. 20세기를 격동의 시기라고 한다. 그렇다면 과거에 유래 없을 만큼 빠른 기술의 변화를 직면한 현재는 격변의 시기라고 해야 할까. 쉬워진 컴퓨터 툴로 노동의 가치가 줄어들었다. 얼마 전 등장한 AI 기술이 더욱 발전하고, 인간의 노동이 없어도 되는 일자리가 생겨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현재를 어떻게 보내고 있는가. 


흘러간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나간 과거에 그리움을 느끼고, 아쉬움에 자기 계발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현재를 기록하는 것은 중요하다. 지나간 과거를 다시 떠올리다 보면 듬성듬성 기억나지 않는 구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를 기록해보자 한다. 최근 배우고, 느끼고, 도전한 흔적을 남기는 일기와 같이 말이다. 




영혼을 잃지 않는 사용자 경험 디자이너


요즘 디자인 전공에서 UX(User eXperience) 디자인 강의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스마트폰이 등장한 시점으로부터 20년이 되어가는 시점에 사용자 경험은 시각디자인 전공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강의가 되었다.  하지만 사용자 경험 디자인은 기존의 디자인과에서 다루던 '크리에이티브'와 다른 결을 지니고 있다. 이는 사용자 경험 디자인은 가능한 다양한 사용자  모두를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에 특별함보다 보편성이 더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아드리안 쇼네시의 '영혼을 잃지 않는 디자이너 되기'는 그래픽 디자이너를 자기중심적인 일종의 강박증으로 스튜디오를 차리고 운영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하지만 그 마지막 장에서 훌륭한 디자인을 만들기 위해서 창의적인 프로세스와 프로젝트에 접근하고, 개인의 크리에이티비 철학을 가져야 할 이야기를 한다고 이야기한다. 사용자 경험 디자인과 관련한 여러 서적에서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것 중 하나는 프로젝트를 위한 업무 프로세스이다. 대표적으로 다뤄지는 프로세스는 더블 다이아몬드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보편성을 추구하는 사용자 경험 디자인에서 모두가 이용하는 더블 다이아몬드 프로세스로 개인의 크리에이티브를 구현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더 편하고 쉬운 서비스를 구축하고 경험을 유발하기 위해서 어떻게 디자인을 해야 할까. 그리고 그 디자인에 크리에이티브를 어떻게 구현해야 할까. 모든 사용자 경험 디자이너의 고민이 이 부분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영혼을 잃지 않는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시간은 지문과 같다


사람의 얼굴에서 주름은 그 사람을 나타내는 아이덴티티이자,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대변하는 지문이라고 한다. 이는 행복하여 웃음 지어 생기는 주름과 스트레스로 인상을 찌푸리며 짓는 표정에서 주름이 다르기 때문이다. 주름과 같이 시간이 흐르면서 자리 잡는 여러 가지는 한 사람의 지문과 같을 것이다. 


디자인의 스타일도 지문이 될 수 있다. 좋아하는 디자이너와 유행을 따라 하며 생기는 스타일. 혹은 어느 시대와 지역의 디자인을 좋아하여 따라가다 생기는 습관과 스타일. 나의 디자인을 보고 누군가 나의 작업임을 알아채게 될 쯤이 되면 디자인 스타일에서 나만의 지문이 형성된 순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지문은 그래픽 디자인에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아이디어를 찾고 발전시키는 프로세스, 글로 프로젝트를 정리하는 데 보이는 문체, 디자인 스타일과 검증하는 방법까지. 여러 방면에서 디자이너의 습관과 스타일이 나타난다. 하지만 사용자 경험 디자인에서 디자이너만의 지문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픽 디자인처럼 직관적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용자 경험 디자이너는 자신만의 습관과 스타일을 만들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학생 시절부터 프로 디자이너 생활을 해봤기 때문에 디자인 경력이 15년이 넘어간다. 길지는 않지만 짧지도 않다. 그렇다면 지금 나라는 디자이너는 어떠한 지문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해외 공모전을 통해서 프로젝트 이야기의 문맥이 매끄러운 것을 좋아한다. 문제를 찾고 해결책을 만들어 디자인을 하고 검증까지 하는 일련의 과정에 대한 빌드업이 스토리텔링이 되는 것을 선호한다. 주제를 찾는다면 전문적이고 깊은 지식을 탐구하기보다,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상상과 가능성을 탐구하는 데 집중한다. 여러모로 짧고 간결하며, 최근 사회나 기술 이슈에 대한 잡지식을 좋아한다. 


그렇다 보니 여러 고민 끝에 하나의 이야기가 매끄럽게 흘러가고, 이야기에 해당하는 환경과 요소, 인물과 이슈가 연결되는 순간 나는 디자인을 시작한다. 이러한 접근과 방법이 하루아침에 생긴 것은 아니다. 그렇다 보니 디자인의 스타일을 보고 나의 지문을 느끼는 일보다 프로젝트의 주제, 흐름, 디자인과 검증. 그리고 프로젝트를 정리한 문장까지 총체적인 부분에서 나의 지문이 느껴질 때가 많다. 


회사의 회전문을 넘어 학교의 교문으로 온 순간부터 디자이너로서 나만의 '지문'을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했다. 그동안 경험하고 쌓아온 여러 디자인의 지식과 노하우를 통해 UX 디자인도 충분히 재미있고, 크리에이티브한 부분을 만들 수 있을지. 



학교 이름은 그 사람의 전부를 대변하지 않는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심도 있게 논의되는 문제 중 하나는 대학 서열화가 아닐까 한다. 1960~70년대만 해도 수도권 대학이 아니어도 충분히 경쟁력 있는 지역 대학들이 있었다. 하지만 21세기가 되면서부터 수도권에 인프라가 집중되다 보니, 비수도권은 과거에 비해 경쟁력을 잃게 되었다. 그렇다 보니 대학의 간판이 그 사람을 평가하는 무거운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이는 한국 사회의 바람직한 기준에 학식이 영향을 미치는 집단주의적 가치관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어려운 시험을 뚫고 과거에 급제한 직업을 대단하다 평가하는 인식이 1000년 이상 구축되었으니까 말이다. 가까운 일본 사회는 낮은 학력에 대하여 잘못된 기준이라 면박을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낮은 학력에도 한 가지 일에 몰두하여 모노츠쿠리(物作り)의 장인 정신을 보이게 되면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일이 더러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이와는 다소 다른 면을 지니고 있다. 


한국 사회는 어릴 적부터 암기 중심의 교육을 바탕으로 한 시험으로 서열화를 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개인의 창의성을 발휘하거나 시장 개척의 영역에서 다소 약점을 드러내기도 한다. 글로벌 기업이 된 한국의 대기업 중 다수는 시장 개척보다는 새로운 제품과 기술, 트렌드를 빠르게 쫓아가 시장을 함께 선점하려는 패스트 팔로어(Fast floower)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창의성이 발휘되는 영역에서 대학의 간판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디자이너로서 나의 전문 영역에서 남들보다 경험치가 쌓여있고, 성과도 많다면 대학의 간판이 중요하진 않을 것이다. 최근 UX 디자인 분야는 프로덕트 디자인의 영역으로 넘어가며, UX와 UI를 모두 이해하며 서비스의 구성과 마케팅과 사회 흐름, 개발에 대한 간략한 지식 등 복합적인 능력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장과 기술의 변화가 다른 영역보다도 빠르다. 그래서 UX 디자인은 개인의 능력이 우선시 평가되고, 능력만큼 기회와 성과가 주어지는 능력주의(Meritocracy) 영역에 가깝다. 


그래서 UX 디자인 분야의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해 부딪치며 배우고, 야생에 가까운 경험치를 쌓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했다. 그래서 UX 디자인 전공과 연구소를 개설하면서 첫 미션을 날것 그대로 도전하는 데 집중하였다. 3년 정도 시간을 투자하면 충분히 경쟁력 있는 전문가가 등장하지 않을까 하는 바램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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