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멈추어도 괜찮아요
마당이 제일 어여쁜 건 오뉴월, 장마가 오기 전이다. 장마를 건너가는 식물들을 지켜보면서 몇 해를 보내고 나서야 장마가 시작되면 한 해가 다 간 것 같아 아쉽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며칠 동안 비가 계속 내리면 꽃잎은 멍이 들고 잎과 줄기가 녹아내리는 식물들이 생긴다. 장미 잎에 검은 반점이 생기는 것도 그즈음이고, 종소리가 들릴 것 같은 캄파눌라가 녹아내리는 것도, 제철을 만난 잡풀들이 마당을 점령하는 것도 그때다. 장마전선이 물러나면 무사히 우기를 건넌 식물들도 고개를 외로 꼬고 힘든 태를 낸다. 화분을 그늘로 옮기고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어도 별무소용이다.
시든 잎과 늘어진 줄기로 힘들다고 말할 줄 아는 종류들은 그나마 낫다. 뜨겁고 목말라도 아닌 척, 괜찮은 척하던 아이들은 어느 날 갑자기 죽는다. 선명하고 싱그러웠던 마당은 장마가 끝나고 나면 우악스럽고 질긴 초록빛 괴물 같은 형상을 띤다. 초여름의 식탁을 싱그럽게 해 주던 상추며 바질, 부추 등은 쫓기듯 꽃이 피고 세어져서 더 이상 먹을 수 없게 되어버리고, 반듯하게 자라던 꽃아마와 양귀비들도 제멋대로 휘어지고 엉켜서 흡사 버려진 마당 같은 꼴로 변해 버린다.
이사 온 후 한두 해는 이런 장마 전후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적응할 수 없었다. 계절은 한창 여름인데 마당은 어느새 황량해졌다. 4월부터 6월까지의 마당과 8월 이후의 마당은 다르다. 가을이면 꽃 진 자리에서 새로 싹이 올라오지만 어린싹들이 제대로 자라기 전에 벌써 서리가 내리고 겨울이 온다. 가을마당을 즐기려면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는 걸 몇 해나 지나고 알았을까? 그렇다. 장마가 지나고 나면 마당은 다시 시작해야 한다.
나는 해가 없으면 맥을 못 춘다. 가뭄 끝에 내리는 비가 달고 시원해서 밤마다 창문을 열고 빗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하는 호사를 누리는 것도 잠시, 장마가 시작되고 며칠이면 나는 볕이 모자라는 식물처럼 흐물거린다. 분명 낮인데 밤 같은 풍경이 이어진다.
집 안에 틀어박혀 있음에도 보통의 일상에서 멀리 떠나온 기분이 드는 건 마당에 나갈 수 없기 때문일까? 장마는 내게서 마당의 시간을 빼앗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도통 때를 짐작할 수 없는 흐린 조도, 고인 물이 빠져나갈 새가 없어 화분마다 물이 찰랑거리는 풍경, 비에 젖은 기왓장이 밀려내려 떨어지기 직전인 아슬아슬함, 꺾여버린 글라디올러스의 보라색 꽃대, 미처 익지 못하고 분홍색이 되어버린 블루베리의 열매, 비를 맞으며 마당을 뛰어다니는 참새와 까치와 고양이가 나의 장마다.
요란한 시절이다. 서둘러 피었다가 순간에 고개를 떨구고 마는 꽃들도, 나뭇가지들을 부러뜨리는 바람도, 불쑥불쑥 돋아나는 입술의 멍울만큼이나 요란하다. 비가 그친 지 십여 분도 안 지났는데 앵앵거리는 꿀벌들은 언제 모여들었으며 목덜미에 내리 꽂히는 화살 같은 햇볕은 언제 데워졌을까? 누가 밖에서 부르는 듯싶어 고개를 들면 비가 멈춘 새 구름 사이로 나온 햇살이 마당의 꽃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온갖 새들이 동시에 지저귄다. 비를 피해 숨었던 매미들까지 합세해 마당은 소란하다. 비가 그치고 갈라진 구름 사이로 말간 얼굴의 해가 나올 때마다 기억나는 문장이 있다.
비는 한 시간 남짓해서 그쳤다. 유리창을 열자 서늘하고 축축한 공기가 흘러들어왔다. 비에 씻긴 초록에서 솟구치는 냄새. 서쪽 하늘이 이상할 정도로 밝아지면서 일몰 직전의 광선을 숲에 던진다. 완전히 황혼에 가라앉아가던 나무들의 잎사귀 가장자리가 오렌지색으로 빛난다.
마쓰이에 마사시,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p.151
오스카 와일드의 말대로 휘슬러가 안개를 그리고 난 후에야 사람들이 런던의 안개를 볼 수 있게 되고, 알랭 드 보통은 고흐의 그림들을 보고 난 후에야 프로방스에 감탄한다(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
나 역시 이런 문장들을 읽고 난 후에 비 그친 후 작은 숲의 나무들 사이로 내리비치는 햇살의 거짓 없음을, 그늘 아래 빛나는 물방울들과 나뭇가지 사이로 바람이 들고 날 때마다 그림자가 흔들리는 모습이 나만의 환상이 아니었음을, 내가 더 잘 볼 수 있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지치지 않고 내리는 빗줄기가 베르가못을 녹아내리게 하는 동시에 목수국 연두색 꽃잎을 살찌우기도 한다는 걸 알게 될 즈음이면 장마가 끝난다.
장마가 끝난 하늘은 말끔하다. 언제 구름이 있기라도 했느냐는 듯 맑은 바람까지 살랑 불어온다. 그러나 태양의 열기가 아직 남아 있는 습기와 한통속이 된 마당은 한증막처럼 습하고 뜨겁다. 장마가 끝나고 나서야 그동안 비가 그치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겠다.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는 수고를 면한 것만으로도 휴가를 받은 것처럼 홀가분했던 건 비가 내리기 시작한 처음 며칠에 불과했다. 비가 잠시라도 멎을라치면 자리를 옮기고 싶었던 식물들을 살피고, 물을 머금어 축 처진 꽃과 가지들을 털어 바로 세우고, 꺾어진 줄기들을 잘랐다.
구름 사이 잠깐 나온 해가 반가워서 햇볕 속에 서 있는 시간, 장마 속의 작은 기쁨이다. 매일 좋을 수는 없지만 이 정도라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장마가 한창일 때는 아침이 와도 해가 보이지 않고 어딜 가도 형광등 불빛만 가득한 느낌이었다. 붉은 꽃이 통째로 문드러지는 베르가모트, 더 이상 붉어지지 않는 토마토, 검은 반점들이 생기기 시작하는 장미의 잎들은 말없이 빗속에 서 있다.
내 속에도 이 장마가 혹시 무한정 계속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과 불안이 자라기 시작한다. 옛날, 세상의 모든 것들이 처음이던 시절, 석기시대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영영 비가 계속되는 건 아닌지 불안하지 않았을까? 동짓날 밤, 오지 않을 것 같은 새벽을 기다리는 마음이 이랬을까? 갑자기 나타난 파란 하늘 아래서 그들은 환호했을까? 지나간 기쁨, 살아남은 감격, 그들도 나처럼 감사했을까?
장마가 끝나면 마당은 식물들이 전쟁이라도 벌인 듯 요란하다. 온갖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 화단을 뒤덮고, 제멋대로 자라난 덩굴들이 서로 엉켜서 바람이 통할 자리도 없이 빽빽하고 답답하다. 잡초를 뽑고 가지를 정리하고 녹아 스러진 꽃들을 정리해야 한다. 시간과 수고가 드는 일이다. 그러나 장마가 이렇듯 성가신 것만은 아니다. 잡초가 자라는 동안 목백일홍은 봉오리를 한껏 부풀렸고, 시들하던 로즈메리와 세이지도 생기를 되찾았다. 마당의 잔디는 1년 중 가장 아름답고 푹신하다. 물을 좋아하는 목수국, 새로 태어난 듯 싱싱하고 푸르게 단장한 채송화와 플록스가 한창이다. 버려야 할 것과 지키고 싶은 것들이 뒤섞인 장마 끝의 마당은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 닮았다.
무엇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날들이 있었다. 애써도 나아지지 않는 상황이 너무 오래갈까 봐, 나의 버티기가 그보다 먼저 끝이 날까 봐 겁이 났던 시간들이 누군들 없었을까?
마음에 먹구름이 낄 때마다 지금은 장마의 날들이라고 되뇌어본다. 시간이 날 때마다 모니터를 들여다보느라 어깨와 목이 굳고, 눈은 점점 나빠지고, 허리도 뻐근하다. 한 문장을 가지고 두어 시간을 끙끙거릴 때도 있지만 그동안에도 분명히 나아진 게 있을 것이라 믿는다. 장마는 언젠가 끝이 날 것이고, 우리들 또한 의기소침과 외로움의 시간들을 건너갈 것이다. 마음이 시간을 먹고 자란다면 장마가 끝난 후 우리는 여느 때보다 훌쩍 자라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