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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영 Oct 10. 2024

이렇게 하면 자전거 도둑놈 잡을 수 있을까요?

깨진 창문 이론

자전거 도둑맞은 적 있으신가요? 저는 국민학교 다닐 때 자전거를 세 번이나 도둑맞았습니다. 모두 제 부주의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하루는 문구점 앞 오락기에 정신이 팔렸습니다. 신나게 비디오게임을 하다가 뒤돌아보니, 세워둔 자전거가 사라졌습니다. 누군가가 그냥 슬쩍 끌고 가 버린 거지요.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자전거를 잃어버려서 새로 사준 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잃어버렸냐며 엄마한테 혼날 게 뻔하니까요.


자전거를 찾으려고 온 동네를 뒤지고 다녔지만 제 자전거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빈손으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집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훔쳐 간 놈이 나쁘다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물건 간수를 제대로 못 해서 남이 도둑질하게 만드는 너의 잘못이 크다"라며 저를 나무라셨습니다.


당시에는 이렇게 자전거를 도둑맞아도 경찰에 신고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잃어버린 자전거를 극적으로 되찾았다는 친구도 없었지요. 파출소에 찾아가서 "제 자전거 좀 찾아주세요"라고 읍소를 하더라도, 경찰 아저씨 바쁜데 꼬맹이들이 귀찮게 한다며 머리에 꿀밤을 한 대 맞았을지도 모릅니다. 자전거 도둑질을 절도 범죄로 보지 않고 철없는 아이들의 비행쯤으로 넘겼던 시절이니까요.


어느 날 제 자전거를 꼭 닮은 자전거를 중학생 형이 타고 다니는 걸 발견했습니다. 삼천리 자전거 상표 도장이 찢어진 부분도 똑같았어요. 하지만 그 자전거가 제 것이라고 당당하게 주장하더라도, 그 형이 자기 거라고 우기면 소용이 없겠지요. 자전거에 이름을 써 놓은 것도 아닌데 제 거라는 증거가 없잖아요. 괜히 나섰다가는 그 형한테 한대 얻어맞고 엉엉 울면서 집에 가야겠지요.





영국에서 근래에 자전거 도난 범죄 때문에 당국이 골머리를 앓는다고 합니다. 올해 잉글랜드와 웨일즈 경찰은 총 5만 7,905건의 자전거 절도 사건 신고받았습니다. 자전거 절도 사건 중 63%만이 경찰에 신고된다고 하니까, 실제 범죄 발생 건수는 이보다 더 많을 겁니다. 신고된 자전거 절도 사건 중에서도 단 11%의 자전거만이 주인에게 돌아올 정도로 자전거 도둑이 검거될 확률이 높지 않다고 해요. 그래서 자전거 절도는 '저위험-고수익 범죄'로 여겨지는 분위기랍니다. 고가의 자전거를 일주일에 4대만 훔쳐서 중고상에 팔아먹어도 1년에 5만 파운드(우리 돈 약 8,800만 원)라는 '비과세 고소득'을 챙길 수 있다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입니다.  


이는 단지 자전거 절도 문제로 끝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1982년 제임스 윌슨(James Q. Wilson)과 조지 켈링(George L. Kelling)이 제안한 '깨진 창문 이론(broken window theory)'에 따르면, 작은 무질서나 경미한 범죄가 방치될 때, 더 큰 범죄와 무질서로 이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자전거 절도가 처벌되지 않는 범죄로 인식되면, 범죄자들에게 이러한 행위가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일종의 '정상적'인 행동으로 보이게 되고, 범죄자들은 더 대담하게 행동하여 강력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커집니다. 실제로 영국에서 집 마당에 세워둔 자전거를 도둑들이 담장을 넘어와 훔쳐 갈 정도로 범죄 양태가 심각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의 어릴 경험을 소환해 보더라도, 동네 양아치 형들이 처음에는 자전거 도둑질로 범죄를 시작했다가, 중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커터 칼을 들고 아이들 금품을 갈취하는 깡패로 성장하고, 훗날 식칼과 쇠 파이프를 들고 설치는 조직 폭력배가 되는 사례가 종종 있지 않습니까? 따라서 바늘 도둑을 소도둑으로 키우지 않도록 당국이 자전거 절도범을 적극적으로 검거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영국에서 자전거 절도 범죄를 억제하기 위해 지역 경찰이 적극적으로 단속에 나서고, 도둑들이 장물(贓物)을 중고상에 되팔지 못하도록 자전거 제조사가 특수 마크나 식별 장치를 자전거에 부착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전과자가 분수에 맞지 않는 고가의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가 동네 사정에 밝은 지역 경찰관 눈에 띄면, 일단 의심부터 하고 멈춰 세우는 겁니다. 또한, 자전거의 여러 부위에 눈에 보이지 않는 특수 마크를 삽입하는 SelectaDNA 프로그램과 같은 DNA 마킹 시스템으로 자전거를 도둑맞은 소유자가 소유권을 입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마크는 자전거 프레임, 바퀴, 브레이크 레버와 같은 주요 부품에 삽입되며, 자외선을 쬈을 때만 보이기 때문에 도둑이 알아차리고 지우기 어렵다고 합니다. 마크가 자전거의 모든 부품에 삽입될 수 있으므로 자전거가 분해되어 부품으로 판매되는 경우에도 추적이 가능하다네요. 실제로 이러한 식별 마킹을 적용한 자전거의 도난 발생률이 0.5%로 매우 낮아졌다고 합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도 자전거 도난은 빈번하게 발생하는 절도 범죄 유형이라고 합니다. 2022년 자전거 절도 사건은 무려 1만 2,033건에 달했다고 하니까요. 검거율도 33%로 낮고, 도둑들이 절취한 자전거를 도주 목적 등의 다른 범죄 수단으로 이용하므로, 이를 방치하면 2차 범죄가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영국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지자체들이 자전거 도난 방지를 위하여 자전거 등록제를 실시하기도 했지만, 시민들의 참여가 저조한 탓에 결국 폐지되고 말았습니다. 자전거 도난을 억제하기 위해서 당국과 시민의 긴밀한 공조가 필요한 때입니다.



참고문헌:


The scourge of stolen bikes in Britain. (2024년9월30일). The Economist. https://www.economist.com/britain/2024/09/30/the-scourge-of-stolen-bikes-in-britain

Bicycle Theft Stats and Figures. (2024년8월13일). CrimeRate. https://crimerate.co.uk/bicycle-theft 

김민정. (2023년11월10일). 노트북∙휴대폰은 놔두면서…한국선 왜 '자전거 도둑' 많을까. 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06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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