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무슬림이 가장 많은 나라입니다. 2021년 기준, 무슬림은 약 2억 4,200만 명으로, 인도네시아 전체 인구의 약 87%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세계 무슬림 인구의 11.7%에 달하는 엄청난 숫자입니다. 무슬림 열 사람 중의 한 사람은 인도네시아 사람이라는 소리잖아요. 이러한 이유로 매년 사우디아라비아 메카(Mecca)로의 핫즈(Hajj) 순례 기간 인도네시아가 가장 많은 순례객 쿼터를 할당받습니다.
따라서 무슬림 정체성을 드러내는 상징물이 인도네시아 국기에 표시되거나, 국가(國歌)의 가사에 무슬림의 신앙심을 표출하는 문구가 포함되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일 수 있습니다. 영국 국기인 '유니언 잭(Union Jack)에도 십자가가 있잖아요. 그러나 빨간색과 흰색 두 가지 색상만으로 이루어진 인도네시아의 국기 '상 사카 메라 뿌티(Sang Saka Merah Putih)'에는 어떠한 종교적 상징물도 덧붙지 않습니다.
그리고 와게 루돌프 수쁘랏만이 작사, 작곡한 '인도네시아 라야'의 노랫말에도 '알라(Allah)'와 같은 이슬람 관련 표현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2절에 “다 같이 기도하자(Marilah kita mendoa)”라는 문구가 등장하지만, 이는 무슬림뿐만 아니라 기독교, 힌두교, 불교 등 다양한 종교를 믿는 사람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신앙의 실천 행위를 포괄하지요. 더욱이 현재는 공식 행사에서 국가가 주로 1절만 불리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국기와 국가에 담긴 종교적 중립성은 독립 선언 후 새 나라가 곧바로 맞이한 분열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큰 힘으로 작용합니다. 인도네시아가 무슬림이 다수인 국가이긴 하지만, 기독교(개신교, 가톨릭)와 힌두교 등 다양한 신앙을 믿고 실천하는 사람의 수도 결코 무시할 수 없습니다. 2022년 기준으로, 인도네시아의 기독교 인구는 약 2,90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1%를 차지합니다. 우리나라의 기독교 인구가 개신교와 가톨릭을 모두 합해 약 1,600만 명이니까, 인도네시아가 한국보다 훨씬 더 큰 '기독교 국가'인 셈이네요.
게다가 인도네시아의 기독교 신자들은 주로 북술라웨시(North Sulawesi), 파푸아(Papua), 말루쿠(Maluku)와 같은 특정 지방에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습니다. 특히, 파푸아 지역은 인도네시아에서 기독교 신자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로, 84.42%가 기독교 신자입니다. 그리고 암본(Ambon)을 포함한 말루쿠 제도(Maluku Islands)는 기독교 신자와 무슬림이 비슷한 비율로 분포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은 근래에도 종교 간 갈등이 종종 발생하는 민감한 지역이기도 합니다.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를 연방 체제에 편입할 목적으로 세운 동인도네시아국(NIT) 지도 (출처: 레이든 대학교 도서관)
이러한 상황에서 만약 인도네시아 국기와 국가에 샤하닷(Syahadat, 무슬림들의 신앙 고백) 같은 이슬람 중심 문구가 삽입된다면, 비무슬림 주민들은 이를 자신들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상징물로 받아들이지 못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게다가 인도네시아 무슬림 공동체 내부에는 이슬람 교리와 신조를 지나치게 앞세워 이를 타인에게 강요하려는 움직임에 극렬하게 반대하는 집단이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현지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아방안(abangan)'이라고 부르는데, 초대 대통령이었던 수카르노(Soekarno)도 그런 성향을 띤 인물 중 하나였습니다. 무슬림이라고 해서 모두가 같은 신앙적 입장을 공유하지는 않았습니다.
인도네시아의 건국자들이 이슬람 국가를 세우려 시도했더라면,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인들의 바람대로 종교 및 종족 갈등을 수습하지 못하고 수많은 나라로 갈기갈기 찢어져 버리고 말았을 겁니다. 네덜란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이 물러난 뒤 인도네시아의 독립 선언을 무시하고, 인도네시아를 재식민지화하려고 시도했거든요. 네덜란드는 기독교 인구가 많은 동인도네시아 지역에 동인도네시아국(NIT: het Indonesisch Negara Indonesia Timur)을 세우고, 이를 자신들의 연방 체제에 편입시키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기독교 신자들이 다수인 해당 지역 주민들이 유럽화된 생활방식과 신앙을 고수하기 위하여, 네덜란드의 통치에 협조적일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네덜란드의 계산은 크나큰 오산이었음이 곧 드러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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