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달프형 이야기를 먼저 하지 않을 수 없다. 달프형은 과천시를 주유하는 아저씨 길냥이시다. 겉모습은 비록 세월을 정통으로 맞은 듯 나이 들고 여기저기 상처투성이지만 눈빛만큼은 치타가 부럽지 않게 날카롭다. 온몸이 하얀 털인 녀석은 올해 초봄에 갑자기 나타났다. 늘 만나는 노랑이 밥을 주고 있는데 옆에서 자기도 빨리 밥을 달라고 했다. 캔을 하나 바쳤더니 잠시 위아래로 스캔 뜨고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옆에서 보니까 꼴이 말이 아니었다. 어디서 싸웠는지 목에는 심하게 할퀸 상처가 있고 빨간 피가 맺혀있다. 얼굴과 귀에는 피부병이 있어서인지 털이 군데군데 빠져있고 두눈에 샛노란 눈곱이 작렬했다. 상태가 심난해서 난 한숨부터 푹 났다. 이런 상태라면 무지개 다리를 건너는 날도 머지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 그때까지 밥이나 많이 먹어라... 달프형은 굶주리다 왔는지 엉덩이 뼈가 드러날 정도여서 다음날부터 만나기만 하면 고열량 캔과 영양제로 한상을 차려드렸다. 그러다가 살살 항생제 코스로 들어갔는데 과연 달프형은 만만하지가 않았다. 혓바닥으로 멜롱하고 약의 쓴맛을 보더니 흠칫하고 뒷걸음 쳐서 나를 째려보는 것이었다. "네가 내 밥에 약 탔냐?" 이런 표정으로.
그렇게 여름으로 넘어오니 우리 달프형은 다행히 살도 많이 올라오고 비참한 행색을 벗어났다. 하지만 어디 가서 싸우고 오는지 거의 나아가던 목덜미가 다시 찢어져 오기를 반복했다. 그래서 가방 봉다리에서 꾸깃꾸깃 항생제를 꺼낼라치면 달프형은 딱 일어나 갈길을 갔다. 결국 항생제 투여는 포기하고 별다른 맛이 없는 영양제를 뿌려드리기로 했다. 다행히 먹어주시었다.
달프형은 풍운아
하지만 나는 곧 '과연 달프형이 기운을 차린 것이 옳은 것인가...?' 하는 자괴감에 빠져들었다. 한 캣맘소식통에 의하면 달프형은 과천 시내 곳곳에 안 나타나는 곳이 없고 심지어 4차선 도로를 건너 1단지 밥자리에도 나타난다고 한다. 달프형은 노는 스케일이 다른 고양이었다. 상가 중심가에도 나타나고, 공원에도 나타나고, 저멀리 이주단지에도 나타난다고 한다. 아주 신이 난 것이었다. 나도 한번은 옆단지에서 일을 보고 있는데 달프형이 지나가다 잠깐 구경을 하는 것을 보았다.
사실 온몸이 하얀 고양이는 알비노라고 해서 유전적으로 열성이고 허약해 길바닥에선 거의 살아남기 힘들다. 그런 하얀 달프형이 저 연세가 되도록 살아남아 도로를 건너 도시 곳곳을 돌아다닌다니 대단하긴 대단하다. 한마디로 야수의 심장을 가지신 고양이시다.
아무쪼록 달프형! 백색의 간달프처럼 험한 세상 현명하게 살아남아야 해! 꼬박꼬박 나타나 밥 한끼 잘 잡수시고, 제발 위험한 도로는 그만 건너 다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