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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하며 처음으로 눈물이 났다

바이, 과천!

생각해보니 30년! 이거 나고 자란 고향보다 더한 세월을 보낸 곳이 바로 과천이다. 하지만 회자정리(?)라고 했던가... 머물 시간이 다하고 나면 훌훌 떠나는 게 순리다. 과천이 '전원도시'라는 본연의 정체성을 잃은 것은 이미 오래 되었다. 청사 공무원들이 알뜰살뜰하게 살림을 시작하고 아이들을 정성스레 키우던 곳이 어느새 강남과 궤를 같이하는 부동산 투기의 전당으로 변해버렸다. 이 곳에 머물며 집값상승의 단물을 맛본 사람들은 "옛날이 좋았다~~~"는 타령을 하면서도 재건축 사업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나라고 중뿔 다를 것도 없다. 마치 포모증후군에게 쫓기듯 상대적 박탈감을 갖지 않는 선에서 뭐든 돈을 남겨보려고 이리뛰고 저리뛰고 했다. 말만 들어도 간지나는 '경제적 자유'를 얻으려면 돈이 필요하고 그것은 월급통장이 아니라 부동산이나 위험자산 투자 등에서 나올 거라는 진리 때문이다. 물론 그런 드라마틱한 목표는 쉽게 달성되지 않는다.


어쨌거나 인생에서 (일반적으로) 가장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20대에서 40대까지를 함께한 과천을 떠났다. 이 모든 변화는 과연 2020 코로나 난리통 때문이었을까? 스타벅스를 가기에도 찝찝해져버린 어느날, 아파트에서의 집콕생활이 시작되었고 좁은 책상과 거실 그리고 부엌을 백만번 오가며 '아이고 참 답답하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젠 사방을 막아버린 재건축되어 올라온 다른 단지의 삐까뻔적한 건물들이 더욱 답답함을 가중시켰다. 그렇다고 과감히 제주도 같은 곳에서 새 터를 꾸릴 정도로 모험심이 강하지도 않기에 매일매일 고민이었다. 돈도 돈이고 과연 어디로 가야 제 3의 터전으로 장기간 살아갈 수 있을까?


계획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더해지고 더해져서 정신을 차려보니, 산자락이 보이는 강북의 한 동네에 앉아 짐을 정리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어차피 고향 아니면 다 타향이고, 과천을 제 2의 고향이라고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었는데 새터 만큼은 그런 애정을 가져볼만한 마음이 생긴다. 하긴 이 곳은 24살에 첫 직장을 시작했을 당시, 업무상 뻔질나게 오가며 '나중에 나이들면 이 곳에서 살아봐야지~~' 점 찍어둔 곳이기도 하다. 그땐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천둥벌거숭이였는데 뭐 믿고 그리 희망차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아마 순진하게 앞날에 꽃길만 깔려있을거라고 착각해서 였는지도 모르겠다.


신기한 것은 이사를 하면서 처음으로 눈물이 났다는 것이다. 과천을 떠나기 아쉬워서도 아니고 익숙한 삶터를 떠난다는 불안감도 전혀 아니다. 사실 그동안 나에게 이사라는 것은 좀 더 넓고 편리한 집으로 가기 위한 여정이었다. 알뜰하다 못해 궁상맞기까지 한 집주인들과 계약을 종료하는 것은 결코 서운한 일이 아니다. 근데 이번엔 왜 그랬을까? 아마도 4단지와 5단지에 두고 오는 (지금은 하늘의 별이 된) 냥이들 때문이었을까? 과천 동산에 뼈를 묻은 우리 똘이와 앵두 그리고 래미 때문이었을까? 우리 보리가 냥대장으로 활동하던 언덕 여기저기가 눈에 밟혀서였을까?


하지만 여러가지로 봤을 때 504동 오선생님과 4단지 경비아저씨 때문이 아닐까 한다. 오선생님이 갑자기 나타나셔서 내가 하던 냥이 밥셔틀을 맡아 주시겠다고 하실 땐 오히려 내가 만류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북에서 과천까지 왕복한다는 것은 솔직히 힘든 일이다. 그것도 장기적으로 말이다. 4단지 경비 아저씨도 마찬가지다. 거의 10년 가까운 세월을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시면서, 닌자처럼 눈에 띄지 않게 냥이사료를 배포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다. 다른 경비아저씨들은 로테이션으로 다른 동으로 이동하는데, 유독 이 아저씨는 어떻게 한 곳에서 붙박이로 근무하셨는지 지금 생각해보니 미스테리다.


아무튼 이런 알 수 없는 온정의 손길로 인하여 이사하며 처음으로 눈물을 흘리게 되었다. 앞으로 새로운 이 곳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모르겠지만... 무슨 냉혈한처럼 바싹 마른 마음으로 과천을 떠나던 나의 눈에 눈물이 나게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잊지 말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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