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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그녀를 막을 수 없다

나를 만든 것은 8할이 결핍이오...


엄마가 온다는 소식에 가슴이 쿵쾅거린다. 좋아서가 아니다. 그 반대다. 패륜아도 아니고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이상하다 할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인데 어쩌겠는가? 대부분의 70대 어머니들이 그러하듯 우리 모친께서도 남의 말은 절대 듣지 않고 24시간 자신의 생각대로 사신다. 지난번에 오셨을 때는 애가 시험기간이라 바빠 죽겠다는 언니를 데리고 양재 꽃시장에 가서 꽃나무들을 한아름 샀다. 그러고 나서 여동생한테 전화가 왔다. 누군가 제부네 가게 앞 화단에 꽃을 심어놓고 갔는데 혹시 엄마냐고. 엄밀히 거긴 공용화단이기에 약간 곤란한 모양이었다. 차도 없이 언제 가서 그걸 심었는지 며느리도 모를 일이다. 아니, 아무도 고맙다고 하지 않는 일을 힘겹게 하고 다니는 엄마의 결단력과 추진력이 딸로서 참 이해가 안갔다. 과연... 우리 시대 어머니들의 이런 ‘독단’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하긴 엄마의 입장에서 보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예쁜 꽃을 사다가 예쁘게 보라고 심어주었는데 도대체 왜 문제가 되지?” 하지만 이런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 “모든 것에는 그것에 맞는 때가 있다”는 사실을... 이어령 선생님의 따님이 쓴 책에서 이런 대목이 있다. 아버지로부터 피아노를 선물 받은 날에 대한 것이다. 먼지를 휘날리며 트럭이 한 대 오더니 자신이 너무도 가지고 싶었지만, 당시 집안 사정으로는 살 수 없었던 피아노가 배달되었다고 한다. 피아노를 갖게 되다니! 얼마나 좋았던지 평생 그때의 흥분이 잊히지 않는다고 한다. 나중에 피아노 100대를 사줬어도 그때의 그 기분을 능가하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말이다. 이처럼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그렇다면 엄마에겐 어떤 ‘때’가 있었을까? 그녀의 엄청났던 40대를 되돌아보자. 꽃이 다 웬 말인가? 킹맘에, 4명의 자식, 자신밖에 모르는 에고이스트 남편, 아직 결혼도 안 한 막내 시누이에 시부모까지. 참으로 버라이어티 한 구성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그 틈바구니에서 정신줄을 놓지 않고 학업을 무사히 마친 것은 의 배려가  아닐까 다. 무슨 거지 집안처럼 집은 폭탄을 맞은 듯하고, 자식은 자식대로 시부모님은 시부모님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휘몰아쳐 지내다 보니 집안에 꽃 한 송이 피울 정신이 없었다. 그때였나 보다. 엄마가 '나중에 이 되면 이쁜 꽃 가꾸면서 살아야지...' 결심한 것이. 그리고 정말 시부모님과 시동생들 모두가 집을 떠나고 뒤이어 자식들까지 모두 떠나버린 후 본인 집을 꽃으로 가꾸었다. 그리고 가꿀 만큼 가꿔서 베란다가 꽃으로 넘치게 되자, 불현듯 자식들 집도 꽃으로 장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녀의 자식들이 현재 -예전 자신이 그랬듯이- 대환장의 40대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춘기를 맞은 딸의 온갖 투정을 들어줘야 하는 짜증 나는 일상, 꼬박꼬박 돌아오는 대출금 이자납입일, 직장에서 수명을 단축하는 듯한 온갖 스트레스성 사건사고, 걸핏하면 시댁에서 걸려오는 민원상담 등으로 자식들은 ‘꽃이고 나발이고’ 볼 여유가 전혀 없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엄마는 이번 방문에도 본인이 계획한 일을 실행하고 내려가실 것이다.  


얼마 전 조카가 한 아이돌 그룹의 뮤비를 마치 혼이 빠진 사람처럼 며칠간 보더니 댄스학원에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동생은 허파에 바람 든다며 무슨 핑계를 대서든 안 보내려고 하고 있다. 자식에 관한 판단이야 제 부모가 할 것이지만,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그냥 보내줘. 하고 싶을 때 하라고 그래. 한창 공부할 때 댄스 한다고 나서면 어떡하냐?”


고 보니 내가 유독 옷에 집착하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 아닌가 싶다. 하고 싶은 것 많고 꾸미고 싶은 것 많지만 결정적으로 돈은 없는 20대... 그때 참 허접하게 입고 다녔다는 사실이 한으로 남 있다. 제대로 입고 다니지 못했나 싶다. 그때 방샤쓰가 촌발 날린다 놀려먹던 동기놈의 얼굴이 생생하다. 그놈이야 별생각 없이 던진 말이었지만 지금도 화가 난다. 당장 내가 피땀 흘려 번 돈으로 6개월 할부해서 산 비싼 옷을 보여주고 싶지만 그놈은 당최 동기모임에 나오질 않는다. 내가 저 때문에 쫙 빼입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죽었다 깨어나도 모르겠지? 아니 앞으로도 명예회복의 기회는 영영 안 올지 모른다. 참으로 어리석고 외로운 투쟁이다. 이렇듯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을 견인하는 8할은 아마도 '결핍의 힘'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그때는 지나갔고 오늘은 하루뿐이며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엄마! 우리 이제 그만 현재를 마주하며 살아 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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