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어느 뜨겁던 날 이혼신고를 하러 구청에 간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보다 많은 시간이 훌쩍 지났다. 뜨겁게 들끓던 피가 좀 가라앉아 이제는 다른 일에도 신경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얼마 전 우연히 기회가 닿아 '핵개인의 시대'를 읽었는데, 이런저런 감상이 들어 오랜만에 글을 남긴다.
이혼 소송을 하며 아이들을 데려오고자 했기 때문에 '가사 조사'라는 절차가 들어가며 소송 기간이 1년 정도 더 길어졌었다. 애초에 육아휴직을 하며 아이들을 시댁으로 데리고 내려간 남편이 그 상황에서 훨씬 유리했다. 간절히 두 아이를 데려오기를 원하면서도 혼자 두 아이를 키울 생각을 하면 앞이 캄캄했는데 실제 내가 양육권을 가져왔다면 친정어머니의 도움은 불가결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전남편이 두 아이를 키우는 지금, 부모님의 노후 생활에 내가 폐를 끼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혼을 잘했다'란 생각에 큰 영향을 끼치는 부분이다. 나와 동생을 키운 것만으로도 이미 어머니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희생을 하셨다. 지금 생각건대 손주까지 키우며 편찮으신 몸으로 새로운 부양의 의무를 지워드리지 않게 되어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책은 사람 사이의 채무 관계에 대해서 얘기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이제껏 부모가 아이를 키우고 큰 돈을 들여 결혼을 시켰기에 자신의 노후를 책임져주기를 당연히 기대해왔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멀리 사는 가족보다 가까이 사는 이웃이 더 큰 영향을 끼치며, 나아가 많은 사람들이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형태로한 집에서 살아감을 설명하고 있다. 마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서 태어난 행성도, 종족도, 나이도 다 다른 등장인물들이 가족보다 더 끈끈하게 지내다가 어느 때가 되면 다시 미련을 버리고 흩어지는 것과 같은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아래는이 책을 통틀어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다.
이혼을 겪은 나는 이 구절이 너무 크게 마음에 와닿았다. 관계를 선택할 수 있다는 건 이전의 삶을 정리할 수도,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안부를 묻는 많은 느슨한 관계들이 소중하고 고맙다. 각자 자기 삶을 잘 살아내 가면서 함께 현명해지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회가 바로 이 책의 제목인 '핵개인의 시대'라고 저자는 말한다. 제목만 봤을 때는 '사회에 만연한 개인주의를 비판하는 책인가?' 했지만 펼쳐서 읽다 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저자는 이전에 관습처럼 쌓아온 권위를 해체하고, 급변하는 AI 시대를 잘 따라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 각자는 스스로를 중심으로 일어서고, 예의를 지키며 서로 교류하는 게 중요하다고도 했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의 우리가 과거의 것과 이별하고 더 나은 내가 되고자 하는 용기를, 주변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에게 진심을 줄 수 있는 따스함을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 이전 세대가 자연스럽게 가졌던 불합리한 권위를 나도 가졌으면 하는 생각을 지금 우리대에서 끊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서로가 친절한 관심 속에 성장할 수 있기를, 그리고 그런 환경을 함께 일궈가면 좋겠다.
서로 빚이 없기에 동등한 상태면서 서로의 성장을 위해 언제라도 떠날 수 있는 사람에게는 누구라도 함부로 대할 수 없다. 오늘 내가 만난 저 사람의 찰나가 나로 인해 조금이라도 빛났으면 한다. 이 글을 읽어주는 나의 독자분께도 내 이런 마음이 가 닿기를, 우리 모두 서로를 보듬는 따스함 속에서 하루하루 더나아가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