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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Stout May 28. 2021

나의 어린 강아지 후지에 대하여

네가 케빈이라면 나는 너의 에바

    약 한 달 전, 나는 아는 분으로부터 강아지 한 마리를 받아오게 되었다. 곧 나는 강아지를 미국 집에 데려다 놓을 계획을 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이 강아지는 6월 말에 나와 미국을 떠나면, 아마 나를 제외하고는 평생 한국말을 들을 수 없는 견생을 살게 될 것이다. 강아지를 데려와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미국에 강아지 한 마리가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쥐떼의 공격으로 거의 2천만 원 가까이의 손실을 낸 미국의 내 집에 쥐를 잡을 수 있는 사냥꾼이 필요해서. 거기엔 11살의 늙은 레브라도 리트리버와 깡깡 거리는 것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시츄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난 미국에 데려가기 전까지 약 두 달 정도의 시간만 한국에서 이 강아지를 돌보면 되었다. 그리고 덕분에 나는 강아지의 발발거림과, 털 날림을 싫어하는 부모님과 함께 사는 이 집에 강아지를 데려올 수 있었다.

    이미 미국집에 있는 두 마리의 강아지와 같은 지붕에서 살아봤기 때문에 강아지를 데려오는 것에 대해 크게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주고, 물을 주고, 산책을 시키고. 집 안에 오줌을 싸면 그냥 페이퍼 타월 몇 장 덮어놓고 바닥청소제로 씻고. 할 만하지. 그 정도쯤이야. 근데 그건 남의 개를 돌볼 때의 이야기고.

    나의 강아지 후지. 나만 바라보는 나의 강아지 후지. 내가 밥을 주지 않으면 쫄쫄 굶고, 내가 밖에 데려가지 않으면 얼굴이 노래질 때까지 (얼굴이 항상 노래서 모르겠지만) 똥을 참는 나의 강아지 후지. 시도 때도 없이 밖에 나가고 싶다고 내 옷을 붙잡고 놓질 않고, 길고양이를 보고 혼비백산 놀라 내 옆에서 잠들고 싶어 하는 나의 강아지, 후지. 떨어낸 털로 '널 한 마리 더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할 만큼 털을 많이 뽑아내는 나의 강아지, 후지. 나를 너무 사랑해서 내가 다른 사람이랑 전화만 해도 목청이 터져라 짖어대며 전화를 방해하는 나의 어린 강아지 후지. 내 슬리퍼를 다 뜯어놔서 다른 슬리퍼를 꼭 사게 만드는, 예방 접종 비용은 또 어찌나 비싼지, 다달이, 그것도 근근이 찾아서 받은 외주 일로 받은 돈을 전부 쓰게 만드는 나의 어린 강아지 후지. 밖에 나가서 친구를 만나도, 혹시나 너무 심심하지 않을까, 싶어 2시간 더 빨리 집에 가고 싶게 만드는 나의 어린, 무력한 나의 강아지 후지.

    그가 나를 사랑하는지, 아니면 단순히 나를 밥 주는 사람, 똥 치워주는 사람, 양말 가지고 놀아주는 사람으로 생각하는지, 나는 알 수가 없다. 너의 짖는 목소리의 변화가 있는지, 네가 원하는 게 있을 때마다 다르게 짖는지 아닌지, 난 알 수가 없다. 물이 없나, 밥이 모자랐나, 혹시 아까 나갔을 때 똥을 끊고 와서 똥이 좀 남았나. 그냥 몸을 움직여서 알아내는 수밖에.

    <케빈에 대하여>를 생각하게 만드는 나의 강아지 후지. 후지가 케빈이라면 나는 에바다. 해줄 수 있는 걸 다 해줘도 끊임없이 짖는 너의 목소리를 들을 바엔 놀이터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애들 소리를 듣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

    후지가 나를 좋아해 주는 그 모습이 사랑이라면, 나는 후지가 날 사랑해주는 것만큼 후지를 사랑하진 않는다. 그래서 사랑한다는 마음보단 미안한 마음과 그가 내게 품은 감정에 대한 책임감이 앞선다. 모든 관계에서 내가 후지와도 같았는데, 그 반대 상황이 되어보니, 그 상대방들도 힘들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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