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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Stout Mar 12. 2024

스물 여덟의 독립

환영받지 못하는 어른의 독립에 관하여

  스물 여덟, 그러니까 스물 아홉이 되기 이틀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 이사를 하게 되었다. 예상치 못했던 모친이 만들어낸 매일 밤 끝나지 않는 눈물바다. 그렇게 스물 여덟, 아니 거의 스물 아홉의 독립이 시작되었다.


  어디부터 잘못된 것일까. 엄마와 나는 어렸을 적, 그러니까 내가 미취학 아동이었을 시절 쯔음, 굉장히 사이가 좋았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점은 내가 분리불안이 있을 정도로 엄마와 꼭 붙어있고 싶어했던 아이였다는 것일정도로 말이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 쯔음 되었을 때, 엄마는 일을 시작했다. 항상 집에 늦게 들어왔던 부친의 부재는 익숙했지만 방과 후 엄마의 부재는 낯설었다. 엄마는 매일 내가 학교에서 돌아왔을 쯔음, 그리고 학원에 가기 전 쯔음 꼭 전화를 했었다. 엄마에게 나는 강가에 내놓은 아이였고, 나는 엄마 없이는 그 무엇도 하지 못하는 무력한 새끼 짐승같은 존재였다. 

  이상하지도 않지만, 내가 기억하기로 나는 초등학교 5학년까지 친구가 없었다. 적어도 집에 같이 간다든지, 학원이 끝나고 같이 놀러간다든지 하는 그런 일을 할 또래 친구가 내겐 없었다. 대신 나는 J.R.R 톨킨이 쓴 '반지의 제왕'이나, 히틀러의 자서전인 '나의 투쟁'따위를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 책들은 실제로도 내겐 어려운 책이었고, 모르는 단어 투성이었지만 내겐 일종의 지적 과시욕이 넘쳤고, '친구가 없는 아이'라는 나의 결점(?)을 상쇄하기 위한 하나의 방책이었다. 그런 점들로 인해 나의 또래 초등학생 친구들은 더더욱 나를 멀리했다. 나는 그런 점에 대해 서운함을 느끼기도 하면서 동시에 지적 우월감으로 그들을 깔봤다. 

  '그래, 너희가 뭘 알겠어. 이런 고상한 나의 취미와 정신세계를 말야.'

  (물론 성인인 나는 그런 지적 허영심에 찌든 잼민이들을 처단하는 빌런이 되었지만) 당시 나는 그런 것들이 나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했었다. 지금 생각해보자면, 아무래도 엄마가 나를 더 이상 보호해줄 수 없었기 때문에 엄마를 대체할 수 있는 나만의 방어기제같은 것이 아니었나 싶다. 

  좌우간 초등학교 5학년 쯔음 되었을 때, 나는 이른 사춘기를 맞이했다. 나는 아이들 앞에서 나대기며 관심받는 것을 즐겼고, 더 많은 관심을 끌기 위해 모진 노력을 하기도 했었다. 관심 받지 못했던 지난 날에 대해 복수라도 하듯, 나는 복도를 뛰어다니고, 선생님들에게 대걸레 자루로 맞고, 아이들에게 '또라이'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그 상황들을 마음껏 음미했다. 

  엄마와의 관계는 점점 그렇게, 또래 친구들의 관심과 여전히 놓지 않았던 '고급진' 서적들로 대체되어갔다. 중학생이 되며 더욱 엄마의 관심이 따분하고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고삐 풀린 마차처럼, 나의 비행강도는 급발진하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들의 필기구를 훔치고, 싸움을 걸었으며, 친구들과 패싸움에 휘말리기도 했다. 그래도 일말의 양심 덕에 엄마를 학교로 불러들이는 일은 없었지만, 엄마의 속이 얼마나 터졌을지 알만도 하다. 


  본격적으로 엄마와 나 사이의 관계가 파국을 맞이하게 된 것은 내가 고등학교를 자퇴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자퇴하면서 내가 언론인이나 교수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엄마의 작은 소망은 산산히 부서졌다. 내가 정도(正道)에서 이탈한 것이 그때가 처음은 아니었지만, 부모님 말씀 잘 듣고, 공립 초, 중,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좋은 대학에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나의 엄마의 시점을 미루어 보았을 때, 나의 공립 고등학교 자퇴는 단순 도로 이탈의 수준을 넘어 맨발의 오프로드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고등학교 자퇴 이후 내 방에 쳐박혀서 무력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그 어떠한 생산적인 일 없이 시간이 흘렀다. 생산성, 긍정적인 미래를 맞이할 가능성, 인간으로서의 매력, 대인 관계 및 사회성 등 모든 것이 하향세를 찍고 있었던 와중에도 몸무게 만큼은 상향세를 보였다. 자존심이 무척이나 강했던 나는 엄마와 아빠에게 관심과 사랑을 구걸할 수 없었다. 그들이 먼저 나에게 관심을 보여주길 원했었다. 24시간 블라인드가 쳐져있던 나의 방의 블라인드를 걷어주길 바랐다. 설사 내가 그들을 적대한다 하더라도, 다 괜찮다고, 너가 나의 아들이니 난 괜찮다고, 널 사랑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고, 그렇게 말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이미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을 받은 나의 부모는 괴물이 되어버린 그들의 남식을 두려워했다. 내겐 그런 모습들 역시 나의 일부라는 인식이 있었기에 그다지 놀랍지 않았으나, "나는 엄마의 보물이야~" 따위의 말을 하던,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엄마의 손을 잡고 놓지 못했던 그 아이의 세세한 모습까지 기억하는 엄마에겐 말로 형용못할 충격이었으리라.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음마, 으엄므아. 말 못하는 아기가 할 수 있는 그 작고 사소한 그 말 한 마디. 난 지금도 이렇게 엄마, 라는 단어를 여러 차례 적고 있자면 눈물이 날 것만 같다. 그건 아무래도 내가 지난 몇 주 간 목격한 엄마의 눈물의 무게를 어림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엄마의 눈물은 마치 에일리언의 피처럼 강한 산성을 띠고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따가웠으니까. 내 눈이 젖어들었던 이유는 아무래도 그 때문인 것 같다. 에일리언 엄마. 에일리언 자식. 아마 엄마와 나는 이종의 개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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