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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아름다웠다고 말하리

영화 <소풍> 그리고 천상병의 <귀천>

이 삶의 가장 큰 상실은 죽음이 아니다

가장 큰 상실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우리 안에서 어떤 것이 죽어버리는 것이다.   <인생수업> 중에서


“다음에 다시 태어나도 네 친구 할 끼야” 

한 편의 시가 되는 우정, 어쩌면 마지막 소풍이 시작된다     

영화의 첫 장면은 빛깔 좋은 살구색 한복을 차려입은 금순이 청보리밭길을 걸어 버스를 타러 가는 장면이다. 금순은 걸어 다닐 수 있을 때 친구의 얼굴이라도 봐야겠다는 생각에 오랜 친구이자 사돈인 은심의 집을 불쑥 찾아온다.      

한평생 모은 돈을 아들 해웅의 사업 자금으로 대주고 이제 은심에게 남은 것은 사망보험금과 집 한 채뿐, 아들의 사업 실패로 뒤숭숭한 가운데 은심은 금순의 손을 잡고 집을 나와 고향으로 떠난다. 금순은 고향에 남아 밭농사로 지은 작물을 시장에 내다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데 고질적인 허리병을 앓고 있다. 파킨슨병을 앓는 은심은 약의 부작용 때문인지 자꾸만 어린 시절의 환각을 본다. 어머니가 실제로 살아있는 것 같은 환시 속에....

돈을 더 달라는 아들의 독촉에 더 이상은 안된다며 은심은 캐리어에 짐을 챙기고 통장과 인감도장까지 싸들고 고향으로 떠난다. 60년 만에 돌아간 고향에서 16살 그녀를 짝사랑했던 막걸리 양조장 주인 태호를 만나게 되고 70대의 금순, 은심, 태호는 다시 중학시절로 돌아간다. 

검은 교복, 하얀  칼라, 펑퍼짐한 스커트를 입던 시절로.... 

세상이 하나도 두렵지 않던 시절로.



<소풍>의 주인공 은심, 금순, 태호, 세 사람은 평생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남은 건 병뿐이다. 인생이 무엇인지 알만하다 싶으면 인생학교를 졸업할 시기다.   

부모 자식 간의 갈등의 기저에는 항상 돈 문제와 건강 문제가 얽혀있음을 이 영화를 통해 확인한다       

세상 모든 부모에게 자식이란 무엇일까.

자식은 기쁨의 원천이면서 고통의 원천이기도 하다.

한 생명을 품고 그 생명이 자라 스스로 자리매김하기까지 부모의 가슴은 날마다 검게 탄다

잘 키운 자식이든 그렇지 않은 자식이든 부모에게 자식은 인생의 성과물이 아니다. 잘 되건 그렇지 않건 평생 가슴 안의 못 같은 것이다.     

     

노인의 유형을 늙은이, 어르신, 액티브시니어, 선배시민으로 분류한 이도 있는데 이 중에서 선배 시민이라는 말에 공감이 간다. 생각해 보면 ‘선생’이라는 말의 어원도 ‘먼저 걷는이, 혹은 앞서 걷는 이’라는 의미를 품고 있으니 선배 시민이라는 표현이 ‘노인’의 대체어로 적합하다.     


평생 엄마 주머니 만을 바라보고 산 은심의 아들은 사업 실패로 돈을 막을 수 없자 엄마의 사망보험금을 계산하고 극단적으로 엄마가 돌아가시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다.  한쪽 다리가 불편한 금순의 아들은 떡볶이 장사를 하는 아내를 도우며 산다. 고향마을이 리조트 예정 부지로 병합된다는 소문이 흉흉한 가운데 금순의 아들이 바라는 것 또한 엄마의 집을 처분하고 그 돈으로 아파트에서 살아보는 것이다.     


태호의 횟집에서 리조트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모임이 열리고.. 은심은 여전히 그곳에 살고 있는 어린 시절의 동창들을 만난다. 70대가 아닌 10대의 모습을 그곳에서 찾는다. 청자는 자식에게 버려져 요양원에 있다. 버려졌다는 두려움과 모멸감은 공격성으로 나타나고 친구들이 사 온 케이크를 허겁지겁 맨손으로 퍼서 먹는 모습에 금순, 은심, 태호는 시선을 떨구고 만다.   

뇌종양이라는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태호는 금순, 은심과 함께 인생의 마지막을 찬란하게 보낸다.  

   

바닷가. 파도가 밀려오고 밀려간다.

밀려갈 것이면서 밀려오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인생도 그러하다.       

    


歸天 /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노을 진 하늘 기슭에서 구름이 손짓하면

하늘로 돌아가는 날, 

이 세상 소풍을 끝내는 날

우리는 그곳에서

아름다웠노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은심은 돈 1억을 찾아 아버지의 뒤를 이어 막걸리 양조장을 하는 태호의 딸에게 전달하고

금순이가 달력 뒷면에 쓴 시 <해당화>를 보고 자신은 <소풍>이란 제목으로 시를 쓴다.

     

“금순아 우리 소풍 가자. 김밥도 싸고...”     

소풍 가기 전 금순과 은심은 집안 곳곳을 정리한다. 마루를 닦고 가방에 꼭 필요한 것만을 받고.... 허리가 아파도 수술이 불가능한 상태, 수술이 가능하다 해도 수술비도 버거운 금순은 인생을 스스로 정리하는 것도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금순과 은심은 백팩에 김밥을 싸서 중학 시절에 오르던 절벽으로 향한다.

중간 쉼터에서 김밥을 먹으며 아주 오래전 태호가 사진을 찍어주던 장면을 회상한다

태호는 이미 세상에 없고. 이생에서의 마지막 식사로 손수 만든 김밥을 친구와 나눠 먹는 일도 행복한 마무리라고 생각한다.

절벽에선 두 사람

손을 꼭 잡고....     

다음 생에서도 니 친구할거라는 금순의 말을 마지막으로.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가르쳐주는 가장 놀라운 배움 중 하나는

삶은 불치병을 진단받는 순간에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로 그때 진정한 삶이 시작된다.

죽음이란 실체를 인정하는 순간, 삶이라는 실체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자신이 아직 살아있고, 지금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하고, 자신에게 있는 것은 지금 이 삶뿐임을 깨닫는다. 죽음을 앞둔 이들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모든 날들을 최대한으로 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바다를 본 것이 언제였습니까? 아침의 냄새를 맡아본 것은? 맨발로 풀밭을 걸어본 것은? 파란 하늘을 올려다본 것은?

이것은 다시 얻지 못할지도 모르는 경험들이다.... 눈을 뜨는 매일 아침, 당신은 살아갈 수 있는 또 다른 하루를 선물 받은 것이다. 이번 생과 같은 생을 또 얻지는 못한다. 당신은 이 생에서처럼, 이런 방식으로 이런 환경에서, 이런 부모, 아이들, 가족과 또다시 세상을 경험하지 못한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바다와 하늘과 별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지금 그들을 보러 가십시오.

『인생수업』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P 260-261          


       

많은 결혼식에 가서 춤을 추면

많은 장례식에 가서 울게 된다.

많은 시작의 순간에 있었다면

그것들이 끝나는 순간에도 있게 될 것이다.

당신에게 친구기 많다면 그만큼의

헤어짐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자신이 느끼는 상실이 크다고 생각된다면

삶에서 그만큼 많은 것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많은 실수를 했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산 것보다 좋은 것이다

별에 이를 수 없는 것은 불행이 아니다

불행한 것은 이를 수 없는

별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     

-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          

 


가장 큰 상실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우리 안에서 어떤 것이 죽어버리는 것이라는데

나는  ‘아직 죽지 않은 사람'처럼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인생학교에서 소풍 갈 날이 언젠가는 다가올 터인데

그 가방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 뒤돌아보며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세 친구의 모습, 경륜, 탁월한 연기력, 자연스러움을 갖춘 세 명의  배우는 젊은 날, 안방극장과 영화계의 아이콘이었다. 실화 같은 스토리, 리얼리티를 느끼게 하는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

그들의 모습이 남의 일 같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이제 나도 흐르는 세월 속에 세월의 옷을 많이 압구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소풍은 자연스럽지 못했다. 단 한마디 제대로 된 유언 하나 남기지 못한 그들,

곧 돌아올 것처럼 모든 것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안경과 타자기와 책들과 화장대 위의 소품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양잠점에서 도착한 여러 벌의 정장들...

아버지의 양복.. 입을 사람 없는 옷이 벽에 걸려있는 모습도 스산했다.     

오랫동안 치우지 못한 아버지의 구두.     

이생에서 제대로 된 소풍 한 번 누리지 못하고  무엇이 그리 바쁘셨던 것일까.     

영화 <소풍>을 보며 생각한다.

이곳에서의 소풍을 제대로 즐기고 누려야 한다고. 후회 없이, 주어진 생에 감사하면서.........

허둥지둥 떠나는 날이 오기 전에... / 려원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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