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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늘 Mar 26. 2022

필리스틴에서 뉴요커까지

영국의 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아버지인 레슬리 스티븐은 케임브리지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젊은 나이에 케임브리지 교수로 임용된 당대의 지식인이었다. 콘힐 매거진(Cornhill Magazine)의 에디터와 영국 인명사전(Dictionary of National Biography)의 편집장으로 활동하였고, 철학, 정치, 종교, 문예 등 다방면에서 왕성히 활동했다.


하지만 울프의 아버지 스티븐은 딸에게  자신은 그저 그런 이류 지성인에 불과했음을 고백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문학 비평 능력은 날카롭고 명징했지만, 미술이나 음악과 같은 다른 분야에서는 스스로를 필리스틴 사람(무교양 속물 주의자)이라고 이를 만큼 무지했다고 한다. 울프는 아버지가 케임브리지에서 받은 주입식 교육이 그를 정신적 불구로 만드는데 일조했다고 이야기한다. (스티븐은 암기와 빠른 구두 답변을 요하는 트라이포스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고 케임브리지를 졸업하고, 케임브리지의 교수로 임용된 후에는 학생들에게 학위를 따기 전까지 아무것도 즐기지 말고 시험과 책에만 매달리라는 조언을 했다.) [1]




6년 전 뉴욕의 현대미술관 (MoMA, Museum of Modern Art)를 방문했을 때의 당혹감이 떠오른다. 웬 자전거 바퀴 하나가 전시되어 있고, 3개의 열과 3개의 횡을 이룬 9개의 점이 찍힌 그림 하며, 당최 무엇을 그렸는지 알 수 없는 그림들이 줄줄이 벽에 걸려있었다. 어설픈 내 그림을 몰래 가져다 두어도, 아니 어쩌면 내가 쓰고 있는 선글라스를 구석에 놓아두어도, 관광객들이 감상해주지 않을까 하는 발칙한 생각을 하며 빠르게 MoMA를 나왔다.


공학을 공부하는 내겐 여러모로 현대 미술이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실용적이고 구체적이어야 하는 공학과 달리, 현대미술은 실용적이지 않고 추상적이기 그지없다고 툴툴대며 기념품샵에서 엽서 몇 개를 집어온 기억이 있다. 6년 전이나 지금이나 미술에 대한 내 관점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나는 울프의 아버지처럼 필리스틴(무교양 속물 주의자)인 셈이다. 비록 케임브리지에 다니고 있지는 않지만.




뉴욕에 사는 것의 장점 중에 하나는 친구들이 종종 찾아온다는 점이다. 그들은 뉴욕 여행의 들뜸과 함께 우리집 문을 두드리곤 한다. 이번 봄방학을 맞아 시카고에서 친구가 찾아왔다. 덕분에 오랜만에 학교 주위를 벗어나 친구와 함께 뉴욕 군데군데를 살펴볼 수 있었다. 미술관과 갤러리를 좋아하는 친구덕에 처음 듣는 갤러리 몇군데를 들리게 되었다. Pace Gallery도 그렇게 방문하게 된 곳 중 하나다.


갤러리를 들어서니 벽에 걸린 사진은 죄다 바다 사진이다. 심지어 몇 개의 사진은 한 프레 임안에 9개의 바다 사진이 담겨있고, 바다에는 제각기 다른 사람들이 제각기 다른 포즈로 유영하고 있다. 싱크로나이즈 하는 사람도 있고, 연인으로 추정되는 두 사람은 키스를 나누고 있다. 해변가에 앉아 바닷가의 지평선을 바라보며 함께 사진을 찍는 커플 사진 옆에는, 그 커플이 찍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셀피가 찍은 날짜와 시간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낮의 바다, 오후의 그림자가 드리운 바다, 해가 저무는 바다 사진이 걸려있고, 의도는 모르겠지만 흑백으로 윤곽이 도드라지게 찍은 바다와 사람들이 담겨 있는 프레임도 보인다. 전시관을 빙 도는 데는 십 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내가 찍은 바다 사진도 끼워두면 아무도 모르겠군이라는 생각이 슬며시 고개를 들려는 순간, 나는 내 안의 모순덩어리를 발견하게 된다.


내가 싫어하는 행위 중 하나는 "잘 알지 못하면서 삐딱한 시각으로 (사람이든 학문이든 그 무엇이든) 바라보기"인데 내 모습이 딱 그러했다. 도시 중에 도시라고 불리는 뉴욕의 갤러리의 한 공간을 차지하는 사진들인데, 내 시선을 삐딱하다 못해 뒤틀린 게 아닐까. 그래서 잠시 휴대폰을 꺼내 들어 사진작가가 누군지를 찾아보았다.


찾아보니 Richard Misrach라는 미국 사진작가의 전시전이었고, 해당 사진들은 20년 동안 똑같은 하와이 호텔 발코니에서 찍은 해변가 사진들이라고 한다. 리처드 미즈락은 풍경사진을 주로 찍어왔고 그중에서도 사막 사진을 찍으며 환경문제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프레임에 담아왔다고.


굳이 흑백으로 하와이 바닷가를 담은 것은 우리의 눈으로 보는 하와이 바닷가와 또 다른 느낌을 주고 싶었던 것일까.

셀피를 찍는 커플들이 호텔 발코니에서 내려오는 사이 사라질까 노심초사했겠군.

발코니에서 싱크로나이징을 하는 커플들을 발견하고 얼마나 기뻤을까. 그래서 이 순간은 조형물로까지 표현한걸까.

이렇게 하와이 바닷가를 부유하는 사람을 가운데에 두고 사진을 찍은 건 자연과 어우러지는 인간의 모습을 담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광활한 바다를 부유하는 한낱 점 같은 존재로 묘사하고 싶었던 걸까?


단순히 작가에 대해 몇 줄 읽었는데 바다 사진들이 또 다르게 보인다.




공부를 하다 보면, 심지어 공학 공부를 하는데도 이론에 매몰된 나를 발견하곤 한다. 이론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은 채, 그냥 수식 그대로를 외워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지식은 시험을 치르고 나면 곧 사라진다. 작품 감상도 비슷하다. 작품을 감상할 때 작품에 담긴 작가의 경험을 이해하지 않고 피상적인 부분만 바라보면, 전시관을 나서는 순간 작품에 대한 기억은 곧 사라진다.


뉴욕은 마음을 열면 수많은 사람들의 경험을 다양한 형태로 마주할 수 있는 곳이다. 훗날 뉴욕을 떠나게 될 때, 뉴욕에 대한 기억을 얼마나 간직할 수 있을지는 지금 내가 얼마나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에 달리지 않았을까.


뉴욕이 조금은 좋아졌다.


Reference

[1] 생각의 탄생,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에코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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