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 HAN Apr 25. 2022

이 주의 시들-귀가

돌아왔어.

안녕하십니까, 제이한입니다. 귀가를 주제로 한 이주의 베스트 시간이네요.

귀가, 자기가 사는 집으로 돌아온다는 말이죠. 특별한 일정이 있는 날이 아닌 한, 보통 사람의 하루 일과는 대개 귀가로 마무리됩니다. 사회적인 자신과 개인적인 자신을 나누는 경계선이기도 하고요.


이 귀가라는 표현을 탐구하다보면 자연스레 알게되는 사실이 있습니다. 집이라는 장소가 생각보다 훨씬 더 사람의 긴장을 풀어준다는 것, 많고 많은 행복들 중에서 적잖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그밖에도 여러 가지를 깨닫지요.


그래서 이번 주제는 그 사실들이 어떤 방식으로 담겼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폈습니다. 과연 어떤 글들이 베스트에 뽑혔을까요.


함께 보시죠.



1. 맬말몰님의 '귀가'


https://m.fmkorea.com/4513133616

//////////////


달아

네 작은 발바닥 닿는 곳 마다 

정강이까지 진흙이 차오르고


희뿌연 안개가 눈앞을 가리는

그런 시기가 너에게 찾아오면

돌아오라


달아

끝없이 걷고 걸어 

밝은 볕이 드는 언덕에

좋은 집, 좋은 벗 하나 두었다면

그래도 가끔은 돌아오라


달아

살다 살다

후회되는 지난날을 되짚다

삶의 끝자락 한켠에 내가 보이면 

그때라도 어김없이 돌아오라


내 여태 그래왔던 것처럼

마지막 숨 내쉴 때 까지

너를 있는 힘껏 안아주리라


////////////

시평: 귀가의 화자가 꼭 '돌아오는' 쪽일 필요는 없습니다. 돌아오는 걸 기다리는 사람도 얼마든지 화자가 될 수 있지요.


이 글의 화자는 달에게 갖은 사유를 붙여서 돌아오라고 권합니다. 내용에 반하는 말일수도 있지만, 사실 화자의 말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달은 이유가 없어도 화자가 있는 집으로 돌아오니까요.


그리고 화자 역시도 이유를 중요히 여기진 않을 겁니다. 꽉 안아줄 수 있는 달이 오기만 한다면, 이유쯤이야 뭘 갖다붙여도 될테니.


잘 읽었습니다.




2. 센스온더벤치님의 '가로등'


https://m.fmkorea.com/4528856451

//////////////


가로등


너는 왜

오늘도 환히 밝은 것이냐


퇴근길에서조차

어둠을 앗아가는 낯빛,


매일 그 자리 그 시각에

우두커니 빛나는 너는


나 말고도 수없이 많은 이들의

어둠을 빼앗았을 터


고개 숙인 자는 앞이 아닌

밑을 보고 간다


단 하루 만이라도

잔인한 그림자를 지워다오


한 줄기 어둠으로

축 늘어진 모가지를 어루만져다오


너는 부디

항상 밝지 말거라


어두워져 가는 게 아니라

밝아 올 수 있도록


//////////////

시평: 갑작스럽고 인위적인 빛은 밤의 어둠을 음미하는 사람들에겐 껄끄러울 수도 있겠습니다. 어둠을 가까이 두는 사람의 속을 다 알 순 없지만, 화자가 가로등을 꺼리는 원인은 쉽게 짐작이 가는군요.


자신의 그림자가 빛을 받아 외톨이로 남겨지는 것이 싫었던 거겠죠. 주변의 어둠만 몰아내서 그림자를 강조하는 가로등 빛보단 천천히 세상을 밝혀주는 아침 해가 화자의 마음을 더 환하게 해주지 않을까 싶네요.


잘 읽었습니다.



3. 달그밤님의 '귀가'


https://m.fmkorea.com/4531103588

/////////////////


하얀 민들레를 날렸다


붉은 노을을 타고


민들레는 날아 어디로 갈까


하얀 민들레를 날린다


무거운 추억은 지우고


가벼운 그리움만 달아서


집으로 가는 길


스쳐 지나간 민들레


적막한 발걸음


이제서야 민들레는 뿌리를 내릴 것 같다


///////////////

시평: 집은 왜 집처럼 느껴질까요. 내가 돈을 주고 계약한 거주지라서? 매일 돌아와 정이 붙은 곳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취향에 맞는 곳을 골라서?


지내다보니 마음에 들었든, 마음에 들어서 집으로 삼았든 본질은 절대 변치 않죠. 집은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런고로 집은 자기 마음에 달린 것이죠.


바꿔 말하면 처음 가는 곳이라도 거길 집이라고 느낀다면, 그 행동은 귀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의 민들레처럼요.


마음의 고향이 되는 데에는 꼭 긴 시간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뿌리를 내릴 용기만 있으면 충분하지요.


잘 읽었습니다.


//////////////


이번 주 베스트는 어떠셨나요. 그리운 감정을 자극하고 외로움을 증폭시키는 한편으로 따스한 마음을 불어넣는 시어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요새 집에 있어도 집처럼 안 느껴질 때가 종종 있어서 고민이네요. 아마 외로워서 그런가 봐요.


다음 주에도 좋은 작품들과 함께 찾아뵙겠습니다.

모두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작가의 이전글 이 주의 시들-업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