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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hmitz cabrel Feb 28. 2021

12   베니스의 밤

<공중을 선회하는 여행>, 이탈리아 베니스




그날 밤 베니스의 물은 너무 비릿했고, 티 없이 캄캄했으며,
그만큼 두려웠기 때문이다.





M은 잔뜩 취해있었다. 보트 바닥에 주저앉거나 난간을 붙잡을 정도는 아니었고, 청승맞게 별만 올려다볼 정도였다. 보트 주인이 볼품없는 페트병 와인을 꺼내들었을 때 A는 M의 화색이 돌았던 것을 기억했다. 

오늘 밤 M의 얼굴은 붉어질 것이다.      





보트는 오래된 집들 사이에 펼쳐진 검은 물길을 지나갔다. M은 가장 밝은 가로등 밑의 잘생긴 남녀가 웃고 있는 명품 광고 간판을 보았을 때  지금 이 순간이 꿈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어쩌면 이 상황이 L모사 놀이공원에 있는 신밧드의 모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날개 달린 사자상을 보았을 때 특히 그렇게 느꼈다. A는 군데군데 벌건색으로 물든 상점들을 바라보고, 그 상점들을 찍어대는 M을 바라보았다. 


오래된 호텔들과 가게들이 A의 곁을 스쳤지나갔다. M의 화색은 이미 팔과 다리까지 번져나갔다. 보트 주인은 한국인이었다. 몇 년 전부터 베니스에서 한인 민박을 운영한다고 했다. 보트는 수없이 가던 같은 물길을 따라 세 사람을 베니스의 외곽으로 데려갔다.       




보트 주인은 말했다. 더 가면 위험하지만, 이 정도는 괜찮습니다. 보트 주인은 보트를 멈추었다. 밤과 바다뿐이었다. 보트는 출렁거렸고, M은 넘어질까, A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베니스에 도착해서 처음부터 느꼈던 물의 향을 자신도 모르게 들이마셨다. 물은 본분을 따라 흘렀다. 물은 같은 것을 품은 그들의 몸으로 들어가 냄새를 퍼뜨렸다. 간간히 켜진 가로등 사이로 관광객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M은 비릿하고 벅찬, 그래서 헛구역질이 나는 이미 몸에 베어버린 그 냄새를 먹었다. M은 베니스가 너무 어둡다고 생각했고, A는 베니스가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보트 주인은 어둡고 아름다운 베니스를 사랑했다.      





보트 주인이 말했다. 시간이 다 되었어요. 보트는 엔진소리를 내며 베니스 안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A는 고개를 돌려 뒤에 남은 밤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밤이 베니스를 낳았을 것이라고 상상했다. 저 암흑의 도시를 낳은 것은 분명 밤이다. M은 웃는 얼굴로 보트 주인에게 인사했다. A는 보트 주인과 악수를 했다. 그리고 말했다. 감사합니다.      


보트 주인은 M이 확실히 취했다고 생각했다. 웃고 있는 M의 표정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일은 아주 흔한 일이었다. 그가 직접 담근 와인을 주면 사람들은 자신에 관한 모든 일을 잊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모든 것을 기억해냈다. 보트 주인은 텅 빈 페트병을 들고 집으로 걸어갔다. 다리를 건너며 다시 한번 자신의 문장을 떠올렸다. 베니스는 행복의 도시가 아니다. 





A는 호텔로 돌아가는 기차에서 M이 전형적인 주정을 하지 않을까 했지만, M은 내일이면 까먹을 생각을 하며 졸았다. 베니스에 호텔을 잡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A의 머릿속을 스쳤다. 이탈리아에서의 첫날 밤이었다. 모든 밤을 이렇게 보낼 수는 없었다. M은 A의 어깨에 기대 코를 스치는 물 냄새에 얼굴을 간간이 찌푸릴 뿐이었다. 그날 밤 베니스의 물은 너무 비릿했고, 티 없이 캄캄했으며, 그만큼 두려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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