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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hmitz cabrel Apr 19. 2021

14   버려진 집

<공중을 선회하는 여행2>, 홍콩


겁이 많은 게 특기일 수 있다.
    
 “Fear is a super power." 
- 닥터후 시즌8 에피4 클라라     

클라라의 말을 믿는다. 
다만 이 힘의 방향이, 겨냥하는 그곳이 어디인지가 문제다.                



홍콩

 


나는 여행지에 대해 아는 게 없다. 장소의 명칭, 교통수단, 명소의 이름, 밥집, 카페, 이동 시간 등 (확실 혹은 불확실한) 정보는 얻을 수 있지만 여행지의 땅을 밟기 전에는 그곳의 냄새를, 색채와 진동을, 또는 공기를 감각할 수 없다.      


여행지에 찾아가서 지도를 접고 아무 방향으로 걷는 걸 좋아한다. 목적지에서 다른 목적지로 갈 때도, 목적지에서 아무 곳으로 뻗어갈 때도 그렇다. 지도에 뜨지 않는 길 혹은 들판을 가로질러 걷곤 했다. 멋대로 자라있는 자연과 부서진 석판들, 우주선이 착륙한 흔적 같은 정체불명의 공터는 나를 세계와 맞닿게 했다. 인적이 드문 헝클어진 장소에서야 나는 세계에 빠져들 수 있었고 이해할 수 있었다.   

    

겁나지 않았고, 두렵지 않았고 신이 났다. 심장 고동 소리가 또렷이 들리는 순간이었다.   


홍콩



걷다 보면 버려진 집들이 꼭 있었다. 허리에 손을 얹고 이곳은 이제 누구의 어수선하고 산만한 정원인가! 물었다. 곤충들과 식물들인가 무심히 풀 뜯는 동물들인가 아니면 잠시 세계를 이해했다는 과대망상에 빠진 방문자인가. 통째로 떨어진 창문, 다리가 부서져 넘어진 가구, 뜯어진 벽을 기어오르다 못해 뒤덮은 마법과 같은 나무들. 이들은 누군가 생활을 영위했던 공간을 단지 세월로 뒤덮고 있다. 그곳은 미지의 공간으로 복귀하여 낯선 걸음을 마주하고 있을 따름이다.   



홍콩



그러나 낯선 걸음을 했을 때가 대체 언제인가 싶은 것이 요새 나의 생각이다. 지도 바깥을 헤매던 일이 이미 예전, 또 예전 같다.   모르는 장소에 관해서라면 겁이 없었던 내가 지금은 무섬을 탄다. 선 없는 지도에 발 디디는 것이 두렵다. 내 생활이, 세계가 점점 좁아진다. 길이 아닌 곳에, 무너진 콘크리트에, 머뭇대며 고개를 돌리는 나 자신이 황망하고 불안하다. 그래서 그때마다 버려진 집을 떠올린다. 나는 계속해서 버려진 집을 발견해야 한다.  무엇이었고, 무엇도 될 수 있는 낯모르는 것에 나를 열어야 한다. 서툴고 불편하게 다가서야 한다. 그래야 살아갈 수 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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