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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chmitz cabrel Sep 01. 2020

02   오후 5시의 해변

<공중을 선회하는 여행>, 제주 우도


제주 우도 서빈백사해변



“다정했던 사람이여 나를 잊었나

 벌써 나를 잊어버렸나

 그리움만 남겨놓고 나를 잊었나”

 -그리움만 쌓이네, 여진






P는 우쿨렐레를 치고 있었다.


70년대 한국 여가수의 노래였다.


늦여름의 해변에는 겨우 몇 팀의 가족 여행객들뿐이었다.


우리는 3시간 째, 섬을 둘러볼 생각도 않고 고운 모래 위에 앉아있었다.






P의 밀짚모자가 벗겨지지 않을 만큼의 미풍이 불자

얕은 물을 누비던 여행객들이 떠났다.


얼마 뒤, 어린 형제 둘과 부모가 걸어 들어왔다.


그들의 손에는 공기가 가득한 튜브, 모래놀이 삽이 든 원색의 바구니, 돗자리가 들려있었다.


우쿨렐레를 서툴게 치는 여자와 그 옆에 누운 여자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는 해변에서 

가족은 조용히 자리를 폈다.



형은 자신의 아빠가 퍼주는 모래를 쥐고 뛰었다.


동생은 엄마를 따라 물에 몸을 띄웠다.


잔잔한 바다와 더운 공기가 아이들의 소리까지 잡아먹었는지

뒹굴며 깔깔대는 아이들에도 해변은 고요했다.






여름의 해는 관대하므로 서서히 몸을 감췄다.


깜박 잠이 들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방금 들었던 선잠이 이 세상 것이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 옆의 P도, 모래 위를 뛰는 작은 발도,


힘차게 물살을 가르는 아이 엄마의 손도,


그것을 바라보는 이도.





참 좋으면서도 안타까웠다.


오후 5시의 해변이.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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