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chmitz cabrel Sep 08. 2020

05   아직 거기 있니, Warwick

<공중을 선회하는 여행> , 호주



호주에 잠시 머무는 동안 처음 혼자 하는 여행이었다.


그릇에 저녁용 카레를 담던 홈스테이 주인은 마을 이름을 듣더니, 대체 거기가 어디냐고 물었다.


나는 그곳으로 가는 버스가 있더라고만 대답했다.


사실 버스터미널의 꽂힌 팜플렛을 뽑기처럼 골라 정한 여행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다음날, 버스 안에는 나를 포함해서 중년의 여성, 그보다 나이가 많은 양복을 입은 남자 노인 그리고 버스 기사, 넷뿐이었다.


터미널에 도착하자 중년 여성과 남자 노인은 빠르게 사라졌고, 버스 기사는 터미널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나는 지도를 펼쳤다.



마을 관광안내소의 하나뿐인 직원은 반짝거리는 금빛 도금 단추가 달린 흰 니트 조끼를 입고 있었다.

머리가 하얗게 센 그는 돋보기 안경을 쓴 채로 물었다.


“머물 곳은 정했니?”

“그걸 물어보려고 했어요.”


그는 오래되어 숙박비가 저렴한 호텔을 소개했고, 그곳에 전화까지 걸어주었다.


아까부터 그가 워낙 신기하다는 눈으로 보길래 물었다.


“여행을 오는 사람이 있나요?”


그는 대답했다.


“가끔.”







넓은 길가에 선 호텔은 나름 운치가 있었다. 

화장실은 공용이었고, 난방시설은 없었다.


맘에 들었던 것은 삐걱거리는 나무 바닥과 벨벳으로 된 이불, 방에 들어오는 햇볕.

그리고 방에서 창문을 통해 넘어갈 수 있는 빛 좋은 테라스.



나갈 채비를 하는데 호텔 주인이 올라와 내게 한국인이냐고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영화 매표소같이 생긴 좁은 프론트에 내려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더니 대뜸 나에게 지도를 그려주었다.


“여기 한국 여자애가 살아. 만나 볼래?”


나는 얼떨결에 고맙다는 인사를 했고, 밖으로 나왔다.





마을의 길은 넓었다. 말 두 마리가 끄는 마차 두 대가 나란히 달릴 수 있을 정도였다.

띄엄띄엄 있는 집 안에서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지만, 밖을 걸어 다니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나는 얼마 안 있어 풀과 꽃이 심심하게 자란 마당이 있는 집 앞에 섰다.

그리고 한국인이라는 그녀를 만났다.


“여기 온 한국인 처음 봐. 그것도 혼자서.”


생머리를 늘어뜨린 그녀는 호주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그녀와 한국의 어느 도시에서 왔는지, 호주의 어디서 거주했었는지를 이야기하다 그날이 그녀의 생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녁 6시에 다시 올 수 있어? 오늘 한국인 친구들하고 파티를 할거야.”


그녀 말고도 2명의 친구가 다른 집에 더 살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그렇게 그날 처음 본 사람의 생일 파티에 초대받고는 그 집을 나왔다. 그리고 그녀의 생일 선물을 사야 한다는 생각에 시내로 나갔다.  큰 길로 나와 학교처럼 생긴 건물 옆의 공터를 가로질렀고, 드디어 사람들, 아이들의 소리를 들었다.






운동장에는 –운동장이라기보다는 초원- 아무도 없었고, 오히려 말들이 있는 들판에서 아이들의 작은 머리들을 발견했다.


한 아이가 나를 보았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에게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아이들은 나를 향해 소리쳤다. 학교 선생님의 말도 겨우 알아듣던 나에게 아이들의 발음을 제대로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기도 했고, 도시에서 간혹 손가락질 당하는 일도 있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겁이 나서 나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시내에 있는 마트는 내가 봤던 어떤 마트보다 거대했다. 흰 바닥과 천장으로 된 실내에 기성품들이 끊임없이 쌓여있었다.


하지만 당장 선물로 살만한 것을 찾을 수는 없었다. 소설책 하나를 사긴 했는데, 주지는 못했다. 생일파티에서는 그녀의 친구 두 명이 준비해온 파스타와 수제 치즈 케이크, 맥주와 진빔을 머리가 아플 때까지 먹었다. 그녀들은 돈을 벌기 위해 호주에 와 있었고, 집으로 가기를 바랐다.


“내년에 돌아갈 거야. 여기는 너무 외로워.”


아마도 또래였던 우리는 한참을 깔깔대고 웃었으나, 이야기들이 전부 생각나지는 않는다. 다만 그들은 함께 있었으나 외로웠고, 언젠가는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며, 우리가 고국에서 다시 모인다면 얼마나 신기할까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만은 기억한다.



그날 밤 우리는 모두 취해있었다. 호텔에 어떻게 돌아왔는지, 늦은 밤 나는 얇은 벨벳 이불 속으로 들어가서 오들오들 떨다 잠이 들었다. 다른 여행객들이 채비하는 소리가 잠을 깨웠지만, 술의 힘이었는지 다시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창문으로 아침해가 들어왔다. 일어나 앉았는데, 창문 옆 테라스에서 한 투숙객이 와이파이를 연결하려고 노력하며 노트북을 하늘에 치켜들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두통이 너무 심했지만 체크아웃 시간이 다 되어서 마구잡이로 씻고는 호텔에서 나왔다. 감기에 걸린 것 같았다.



무작정 시내로 나가서 맥도날드를 찾았다. 기다리는 사람이 줄을 지어있었다. 

어제 조용하던 마을이 맞나 싶었다.  


문이 열린 중국집에서 별 맛이 안나는 면요리를 먹고, 부은 눈으로 마을을 배회하다 작은 바자회가 열린 것을 발견했다. 내가 살만한 것은 퀼트 작업으로 만들어진 손수건 정도였다. 


손수건과 함께 시계를 파는 할머니에게서 손목시계도 하나 샀다. 가는 줄에 반짝거리는 큐빅이 박힌 시계였다. 할머니는 보라색 주머니에 그것을 넣어주었다.



나는 주머니를 쥐고 어제에 태어났던 그녀의 집으로 갔다. 그녀는 값싼 시계에도 웃어주었다.


“인연이 된다면 또 보면 좋겠다.”




터미널로 돌아오자 때마침 버스가 치익- 소리를 내며 정차했다. 그리고 카메라를 목에 건 젊은 여행자 한 명이 내렸다.


버스 기사는 또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여행자는 지도를 펼쳤다. 서성거리던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우리는 서로 이방인임을 알아보았다. 카메라를 들고 있었고, 다른 승객들처럼 총총거리며 사라질만한 목적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출발하기까지 10분 정도의 시간이 있었다. 나는 터미널 옆에 있는 작은 성당에 들어갔다. 방금 도착한 여행자도 어쩐지 성당으로 발을 떼었다. 우리는 멀리 떨어져서 앉았다. 시간이 되자 나는 일어섰고, 그와 짧은 목례를 주고 받았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홈스테이로 돌아왔다. 이 여행은 호주에서의 마지막 여행이 되었다.







여행을 갔다온 주말에는 내내 잠을 잤다. 눈을 비비며 저녁을 먹으러 내려간 홈스테이 주인이 물었다.


“여행은 어땠어?”


나는 설명할 말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곳은 나에게 너무 낯설고도 친숙했다. 

가끔은 무서웠고 가끔은 따뜻했다. 그래서 마치 몽롱한 꿈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꿈을 다른 여행자에게 넘겨주고 돌아온 것이다.



나는 또래의 한국 여자와 다시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와의 만남을 포함한 그 낯선 마을에서 있었던 순간들이 가끔 나에게 떠오른다.



잊을 수 없는 꿈처럼.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순간인 것처럼. 

아마도 그곳은 그대로 남겨져 있을 것이기 때문에.





-end




매거진의 이전글 04   잃어버린 구두 한 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