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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라라 Sep 27. 2021

할머니와 이별할때 우리는 어른이 된다 영화 <미나리>


만약에 길 가다가 처음보는 아져씨가 아빠 친구라고 따라오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되지?



ㅡ 도망가야돼요



그래 니 아빠는 친구가 없어. 할머니도 친구가 없어. 절대 절대 따라가면 안된다. 뭐라고 해야되지?



ㅡ 살려주세요 하고 도망가야되요



사람살려요! 라고 하면서 길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도망가야된다 알겠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전, 어린시절 나는 몸집이 작고 잔병치레가 잦았었다. 할머니는 늘 내가 안 좋은 일을 당하거나 유괴를 당할까봐 걱정하셨다. 누구든 말을 걸면 절대 따라가지 말라고 매일 신신당부를 하셨다. 사람 살려요! 라고 크게 외치라고 강조하실때는 옆집에서 들릴정도로 큰 목소리로 길게 외치라고 하셨다. 할머니가 먼저 사람살려요! 를 큰소리로 외치고 따라하고 하는 식이었다. 늦은밤 느닺없이 사람살려요! 사람살려요! 를 몇번이고 할머니의 요청에 따라 연습하며 외치곤 했었다.



경찰서에 가면 할머니집 전화번호로 바로 전화를 해야된다?


할머니 집 전화번호가 뭐지?



칠구삼에 구공칠오!



그래 잘했어 우리 아라는 참 똑똑해.



십수년이 지난 지금도 할머니가 기억시킨 그 전화번호는 도저히 잊혀지지가 않는다. 누구의 전화번호도 기억하지 않고, 내 핸드폰 번호마저 바꾸고 나면 잊어버리는데도 칠구삼에 구공칠오는 도무지 잊혀지지가 않는다.



주말이 오면 아빠는 나와 동생을 차 뒷자석에 태우고 할머니 댁에 가곤 했다. 그러다가 어떤 이유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지만 아빠가 일때문에 바빠지게 되어서 한동안 우리는 할머니댁에서 살게 되었다. 할머니는 이태원에 살았는데 그래서 우리는 할머니를 이태원 할머니 라고 불렀다. 할머니는 사실 친할머니의 언니, 이모할머니 였기 때문이다. 친할머니는 일본에 살고 계셨기 때문에 일본 할머니라고 불렀다. 할머니는 어린시절 시집을 오셨는데 할아버지가 신혼때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자식이 없었다. 그 뒤에 재혼을 하지않고 쭉 혼자 지내셨다. 나에겐 친할머니나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없고 오직 이태원 할머니에 대한 기억만 있다.



할머니집에 놀러가면 텔레비젼을 보고 연습했다며 차음해보는 경양식 돈까스도 만들어주시고 잘하시는 이북식 콩나물밥도 만들어주셨다. 밥을 다 먹고나면 과일이나 곶감을 입어 밀어넣어주시면서 계속 배가 고프진않냐고 걱정을 하셨다. 할머니집 옥상에서는 한쪽에는 남산타워가 반대쪽에는 하얏트 호텔이 보였다. 어린 시절 나는 교회 십자가 대신 하얏트 호텔의 불빛을 보며 아빠가 빨리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게 해달라고 빌었다. 하얏트와 아빠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지만 그냥 그 불빛이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인것 같다. 할머니는 밤 늦게까지 영화를 같이 보며 놀아주셨다. 액션영화를 첩보영화 라고 부르시며 총을 든 여자가 화면에 나올 때마다 저 여자가 스파이다. 라고 말했다. 테레비는 할머니의 유일한 친구다. 라고도. 영화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신기했던건 밤늦게 함께 영화를 보고 잠이 들었는데도 언제나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밥을 차려주셨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따금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보여주셨다. 알이 큰 다이아몬드 반지. 밍크 목도리. 모피코트. 오래된 적금 통장 같은것들. 고작해야 여섯일곱 살이었던 내가 봤을때 그게 무슨 가치가 있는지 알리가 없었는데도 자꾸 그것들을 보여주셨었다. 아라야. 너는 아무 걱정말고 공부만 하면 된다. 할머니가 너 물려줄 것들을 다 준비해 놨다. 너가 공부만 잘하면 유학도 보내주고, 할머니가 죽고나면 이 집도 네 것이고, 시집갈때 받은 이 반지랑 보석들도 다 너한테 주고 갈거야. 아이고 할머니가 우리 아라 대학에 가는건 보고 죽어야 할텐데.



그말을 들을때마다 나는 그런것들은 필요없으니 그냥 할머니가 안돌아가시고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런말은 하지못했고 그저 알겠어요 할머니 라고 대답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할아버지에게 받았던 다이아반지는, 그걸 끼고 있는 모습을 본적이 한번도 없었다. 아주 소중한 것을 보는것처럼 꺼내서 보고 다시 장롱속에 넣어두셨다. 나는 아주 어렸지만 어쩐지 마음이 아팠다. 할머니는 집도 있고 산도 있고 땅도 있다고 하셨지만 집은 세를 주고 작은집에 혼자 사셨고, 교회를 다니는것 말고는 아주 검소한 생활을 하시는 분이었다. 할머니가 유일하게 사모으는건 화분이었다. 할머니 집의 작은 거실에는 아주 많은 화분들이 있었다. 거의 식물원이 아닌가 싶을정도로 소파 주변을 빼곡히 감싸고 있는 여러종류의 꽃과 나무들. 할머니는 밥을 먹고 나면 그 많은 화분들에게 하나하나 물을 주고 잎사귀를 닦아내고는 하셨다.



그리고 어느날 아빠는 할머니가 치매에 걸리셨다고 말했다.



치매. 알츠하이머. 할머니가 치매에 걸렸다는건 나는 전혀 몰랐다. 그래서 할머니는 집을 떠나서 우리와 함께 살게 됐다. 그리고 나는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고 집에 있는 시간은 점점 줄어갔다. 이따금 할머니를 보면 머리가 남자처럼 짧아진 채로 여전히 테레비를 보며 웃고 계셨다. 아빠는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다니셨다.  할머니가 치매에 걸리셔서 나를 알아보지 못할거라고 말했다. 할머니가 나를 알아보지 못할까. 할머니가 나를 다른 이름으로 불렀었나. 그건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단지 너무 짧아진 머리가 마음이 아팠다. 할머니는 점점 앙상하게 말라갔고 내 기억은 점점 흐려져갔다. 어째서인지 슬픈일들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때의 감정만이 남는다. 아마도 그게 내 유일한 장점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대학생이 되었다.



내가 대학생이 되었을때는 할머니도,  할머니가 물려주겠다고 말했던 다이아반지도 식물이 가득찼던 작은집도 그 통장들도 산들도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할머니는 내가 대학생이 되기 오래전에 돌아가셨다. 근데 그런것들은 상관없으니까



할머니 나 대학생이 됐어요. 라고 말해보고 싶었다.



할머니 덕분에 살면서 나쁜일을 당하지도 않았고 유괴도 당하지 않았고 경찰서에 갈 일도 없었어요. 나는 대학교에서 글쓰는걸 배웠어요. 그래서 지금 이제서야 할머니에 대한 글을 써요.



어른이 된뒤에 문득 칠구삼에 구공칠오로 전화를 걸어본 적이 있어요. 그 번호로 누가 전화를 받아줄까 기대하면서요. 그번호는 없는 번호라고 나왔어요. 근데 할머니랑 통화를 할수 있다면 그렇게 말하고 싶었어요. 나는 무사히 어른이 되었다고.



그러니까 이제 더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되요. 라고.




나는 지금 이태원에 살고 있다.



남산타워를 올려다면 이따금 너무 많은 감정들이 든다. 경리단길 언덕에 있던 할머니의 집. 아빠가 우리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갈때면 할머니는 우리가 모두 차에 탄 뒤에 자동차를 붙잡고 기도를 하셨다. 주님, 으로 시작되는 기도는 이 가여운 가족을 굽어살피소서로 시작해 사고가 나지않고 무사히 집에 가게 해달라는 내용과 아멘으로 끝이 났다. 그리고 차를 타고 떠나며 등뒤를 돌아보면 창문 너머에는 할머니가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있다. 우리가 사라질때까지 손을 흔들고 계셨다. 그래서 나도 창문으로 몸을 돌리고 할머니가 점이 되어 사라질때까지 그 모습을 바라봤다. 그리고 나는 세상 모든 할머니가 그런 작은 점이 되어 죽을때까지 마음속에 남아 있기때문에



우리가 좋은 어른으로 자랄 수 있다고 믿는다.






+ 영화 미나리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어른이 된다. 아이가 가장 먼저 겪는 죽음은 할머니다. 아이가 가장 먼저 보는 죽음의 공포. 가장 먼저 겪는 이별은 언제나 할머니 할아버지 일수 밖에 없다. 그래서 할머니는 절대 손자를 혼내지 않는다. 장난을 치다 소변을 마시게되도 재밌었으니 내손자를 혼내지 말라고 말한다. 아이는 할머니의 사랑을 받고 몸이 낫고 어른이 된다. 심장병으로 오래살지 못할거라고 판정받았던 손자가 기적같이 심장이 낫고 윤여정을 붙잡기위에 달리는 장면이 나는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내 할머니가 생각이 났다. 이미 20만명이 넘게 본 영화, 이미 영화제에서 수상을 한 영화에 대해 구구절절 분석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건 나보다 더 유식한 사람들이 이미 했을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는 할머니에게 미안해졌다. 그리고 할머니에 대해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가족에 대해, 할머니에 대해 떠올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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