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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라라 Apr 10. 2021

<소설>슬플때면 물고기가 보이는 여자애 이야기

<소설> 물고기



어떤 사람들은 우울할때 눈 앞에 개미가 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내 경우는 좀 달랐다. 나는 물고기를 봤다. 물고기. 왜인지는 모르겠다. 다음생에는 꼭 물고기로 태어나서 과거도 미래도 생각하지 않고 살아야지. 그런 생각을 많이 해서였을까. 슬플때면 물고기 라는 단어가 눈 앞에서 떠다녔다. 지느러미 같은게 벽과 천장 사이에서 돋아났다 사라지는 상상을 했다. 그러다가 아주 많은 물고기들이 방 안에 가득 차고 나는 그 물고기들을 위해 원없이 울곤 하는 그런 상상들 말이다. 이제 다 울어서 괜찮다고 하면 물고기들은 사라졌다. 심각한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한번은 어떤 남자애한테 그런말을 한적도 있다. 나는 너를 보면 물고기가 생각난다고. 남자애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 나는 할말이 없어졌다. 사실은. 정말로. 너무 슬퍼서 물고기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수천번 정도 해본 사람을 만나보고 싶었다. 그 남자애는 자꾸 나한테 거짓말을 했다. 나는 다 속아넘어갔다. 언젠가 글속에서 복수하겠다는 생각만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나서는 뭘 써야겠다는 생각도 사라졌다. 나를 연적이라고 믿고 죽도록 미워했던 여자애들은 쉽게 다른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서 날 잊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복수는 먼 훗날이 아닌 지금에 해야하는 것이구나 생각했다.


 먼 훗날에는 모두가 관계없는 사람이 된다. 치가 떨리게 사무치는 배신감도 결국에는 다 말라버린다. 의연해지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게 된다. 지금은 또 지금 미워해야할 사람이. 지금 용서해야 할 사람이 흘러넘치니까.

그때 나는 영화관 앞에서 팝콘을 들고 서서 물고기를 생각했다. 남자애가 자리를 비운 사이면 어김없이 물고기가 나타났다. 물고기와 나인 세상은 어쩐지 편했다. 물고기가 나를 위로해주려 나타난걸로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에는 너무 많은 물고기들이 나타났다. 피라냐떼처럼 물고기들은 생각을 다 갉아먹았다.

남자애는 극장에서 손을 잡으려는듯이 뻗다가 허벅지를 더듬었다. 나는 그 애의 손이 어디까지 가는지 궁금했다. 그 손의 방향은 내가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어디까지 가고 싶은건지 깨달았을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바람에 한쪽팔걸이에 올려둔 팝콘이 우수수 떨어졌다. 꼭 벚꽃잎이 지는 것 같았다. 남자애는 놀란듯이 올려다봤다. 돌아보지않고 극장문을 나섰다. 태어나서 해본 첫데이트였는데.  주머니속에는 그애한테 주려고 밤새쓴 편지가 들어있었다. 편지를 세게 쥐어서 구겨버렸다. 집에 오는 길에는 무수한 물고기들이 하늘을 헤엄치고 있었다.


그 남자애가 며칠 뒤에 다른 여자애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을 보는건 그리 놀랄일도 아니었다. 이번에도 그 손은 어디로 가는걸까 궁금했다. 다시 며칠뒤에 남자애는 문자를 하나 보냈다. 보고싶어. 라고 씌여있었다. 보고싶다는 말은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이기적인 말이구나. 그때 알았다. 나는 나도 보고싶어. 라고 답장하지 않았다. 그 남자애가 나오는 글을 수십개 썼을뿐이다. 보고싶어를 만지고 싶어의 동의어로 쓰는것에 분노하면서 동의했다.


어른이 되면서 눈 앞의 물고기는 사라져갔다. 보고싶다는 말에 능숙하게 나도 보고싶어라고 말할수도 있게 되었고 보고싶어와 만지고싶어를 어느정도 구분할 수 있게되었다. 극장에서 가만히 손을 잡아주는 다정한 사람도 만날수 있었다. 그러다 누군가가 문득 생각난듯이 거짓말을 하면 그 연애가 끝났고 나는 다시 혼자가 됐다.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들때면 글을 썼다. 내게 상처를 준 사람들이 물고기처럼 내 주위를 떠돌며 내가 쓴 글을 사진을 지켜보는걸 지켜봤다. 재밌고 시시한 일이었다. 아침에 눈을 뜰때면 혼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물고기가 보고싶었다. 그많은 물고기들은 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어느날 몸을 내려다보면 문득 내 손에 비늘이 돋아나는게 보일것 같았다.



+2016년에 쓴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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