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예술은 그 자체로 평가받을 수 있는가?

타르(2022)


리디아 타르는 여성이며 레즈비언이다. 최근의 정치적 올바름을 중요시하는 시대에 그녀는 소수자이기에 어쩌면 가장 적합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는 오히려 최근 운동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지 않고 오히려 반 PC적인 행보를 보인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과거에도 훌륭한 여성들이 많았고 지금 여성들은 오히려 더 좋은 조건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고 답한다. 그리고 그녀는 유명한 지휘자인 플라시도 도밍고가 예전에 머물렀던 방에서 잠을 잔다. 하지만 그런 모습이 그녀의 어시스턴트에게는 옳게 보이지 않는다. 도밍고는 성추행을 저질렀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올바름이 우선시 되는 사회에서 예술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줄리아드 수업에서 타르는 바흐의 음악을 이야기한다. 맥스라는 한 학생은 자신은 바흐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그 이유는 음악적인 이유가 아니다. 맥스는 자신의 유색인종과 성정체성에 기초해 바흐의 여성편력 과거를 비판한다. 이에 타르는 자신은 레즈비언이고 인간 베토벤은 잘 모르겠지만 그의 음악에서는 감동을 느낀다고 고백한다. 그럼에도 맥스는 자신의 주장을 고집하고 대신 에드가드 바레즈는 좋다고 말한다. 이에 타르는 바레즈가 "재즈가 유대인들에게 착취당한 흑인들의 상품"이라고 말했는데 여전히 그에 대한 평가가 유효하냐고 질문한다. 이런 질문 속에 그는 답하지 못하고 자리를 떠난다. 예술과 예술가의 사생활은 양립하지 못한 채 계속해서 그 선을 넘는다.


계속해서 예술을 예술로만 평가하고 싶은 타르에게는 시련이 찾아온다. 그녀에게 의문의 한 소포가 도착한다. 페미니스트의 아이콘으로 여겨지는 비타 색빌 웨스트의 책이다. 여성이지만 페미니즘을 하지 않는 그녀에게 무언의 경고다. 또한, 그녀는 공원을 산책하던 중 사이렌 소리와 함께 여성의 비명소리를 듣는다. 그 타르는 가운데에서 도망치지만 사이렌 소리는 그녀가 집에 도착한 이후에도 그녀의 귓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시대적 요구를 거부하는 타르에게 페미니즘에 대한 요구는 사이렌소리처럼 그리고 벽장 속 울리는 메트로놈 소리처럼 점점 더 다가온다.


 타르에게 음악은 음악 그 자체로만 여겨져야 한다. 타르는 새로운 첼리스트를 뽑던 중에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민감한 러시아인 소피를 만나게 된다. 이런 모습이 타르의 가치관과는 다르지만 타르는 소피를 뽑는다. 하지만 타르가 그녀를 선택한 이유는 그녀의 정치적 올바름이 아닌 소피의 음악 실력 때문이었다. 또한 타르는 관례대로면 오디션 없이 오케스트라 내부에서 가장 오래된 첼리스트를 솔로 첼로스트로 뽑아야 하지만 오디션을 본다. 타르는 그동안의 경력이나 그 사람이 누구인지보다 음악 그 하나를 기준으로 평가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이런 그녀의 행동은 점점 더 그녀를 아웃사이더로 만들고 타르는 결국 시대를 이기지 못하고 배척당한다. 그녀는 어느 한 골방에 갇힌 체 TV를 보다 눈물을 흘린다. TV 속 지휘자는 음악을 마친 뒤 이렇게 이야기한다.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서 플렛, 코드 그리고 음악 업계에 대해서 알아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음악이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니까요" 그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다.


그녀는 결국 뉴욕을 떠난다. 동남아 국가에 도착해 새로운 시작을 한다. 그러던 중 타르는 피곤함에 마사지샵을 찾는다. 하지만 그곳에서 목격한 건 번호를 부여받은 여성들이 타르를 둘러싼 채 선택되기를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마치 오케스트라에서 지휘자로써 자신이 다시 선택해야 하는 상황과 5번 여성이 눈을 치켜뜨고 타르를 바라보는 모습은 과거에 첼리스트 고시아를 뽑아야 했음에도 그녀의 주관대로 오디션을 진행했던 모습이 겹쳐지며 타르는 기시감에 구역질을 한다.


그녀는 다시 무대에 서지만 거장의 음악이 아닌 게임 OST 연주에 오른다. 그녀에게 음악은 여전히 음악 그 자체로 평가받아야 한다. 거장이 작곡한 곡이 아니라고 해도 작곡자가 사생활이 깨끗하지 않아도 음악과는 관계가 없다. 그녀는 그것이 심지어 게임 OST라고 할지라도 지휘가로서 예술가로서 악보에 작곡가가 표현하려고 했던 것을 충실히 표현할 뿐이다. 그것이 타르가 음악을 대하는 방식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하지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