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고시와 도박의 공통점

혜옥이(2022)

혜옥이 2022


나는 가끔 복권을 산다. 6개의 번호를 고등학교 시절 OMR 카드에 정답을 채워가듯 적어 내려간다. 그러다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고시와 복권은 비슷한 점이 있는데 열심히 적었다고 반드시 정답이 되지는 않는다는 점 그리고 헛된 희망을 품게 한다는 점이다. 복권은 항상 아쉽게 숫자 1~2 차이로 몇 개의 번호가 빗나가간다. 나는 오늘도 숫자를 맞춰보며 내가 찍은 숫자가 1만 높았으면 수백수천만 원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후회하고 다음엔 되겠지 라는 마음에 다음을 기약하며 5천 원짜리 복권을 구긴다.


여전히 수많은 학생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고시를 준비한다. 좁은 합격문에 비해 수많은 지원자를 생각하면 고시는 자신의 20, 30대를 걸고 하는 도박이다. 지원자의 수준과 수가 워낙 많고 높은 탓에 한 두문제로 합격이 갈리기도 한다. 합격의 목전에서 탈락한 지원자는 마치 복권을 사 듯 다음에는 되겠지 라는 마음에 또 다른 1년을 건다. 기회비용의 오류는 여기서 발생한다. 합격을 하지 못하면 잃어버린 시간은 보상받지 못한다. 


영화 혜옥이는 이런 고시생의 현실을 나타냈다. 혜옥이가 아르바이트하는 하는 고깃집은 최고의 한돈만을 판매한다고 메시지를 걸어 놨다. 그런 이 가게에 어느 날 한 손님이 계속 최고급을 가지고 오라며 혜옥이가 가지고 오는 고기는 최고가 아니라며 쓰레기통에 버린다. 혜옥이는 손님을 이해할 수 없다. 멀쩡한 고기를 가져다줘도 자기 마음대로 고기를 버리는 이상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할 뿐이다. 그렇게 고기들은 쓰레기통에 모였고 혜옥이는 그걸 다시 하나하나 주워 담는다. 


고기는 마치 고시 수험생과 같았다. 최고를 가지고 오라며 멀쩡한 고기를 버리는 손님 그런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수 차례 고기를 가지고 왔지만 혜옥이는 끝내 손님의 기준에 통과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후 발견되는 고기 포장지에는 칠레산 목살이라는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자신이 가져다준 고기가 최고라고 믿었었던 혜옥이는 자신이 가져다준 고기가 수입산 고기였다는 점에 스스로 충격받는다. 마치 그동안 자신은 고시에 합격할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의 믿음이 무너진 것처럼, 쓰레기통에 모여있는 고기들은 그녀가 헛된 희망에 잃어버린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어머니의 요구는 계속됐다. 어머니는 원래 혜옥이의 이름이었던 라헬에서 혜옥으로 개명을 신청한다. 이름은 부모가 자식에게 부여하는 첫 번째 기대다. 자신의 딸은 지혜롭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마음은 딸에게 다른 압박을 준다. 그리고 그런 기대는 오히려 자식에게 악영향을 주었다. 괜히 바꾼 이름 때문에 시험에서 혜옥이는 문제가 생기고 2차 시험을 망친다. 그리고 혜옥이는 혜옥이라고 쓰여 있는 붓글씨를 찢고 이제 라헬이로서 자신만의 삶을 살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고시를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지원하러 간다.


혜옥이가 떠난 자취방은 쓰레기로 가득 차 있었다. 다른 모녀와 들어온 중계인은 처음 혜옥이가 이 방에 들어왔을 때처럼 이 방에서 살던 사람들이 전부 합격을 해서 나갔다는 거짓과 함께 창 밖을 보여주며 사람을 현옥 한다. 그렇게 계속해서 사람들은 자신이 쓰레기가 가득 찬 방에 있다는 사실을 잊은 채 창 밖만을 보며 헛된 희망을 품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잃어버려야 깨닫는 평범함의 소중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