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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의 추락

추락의 해부 (2024) 영화 평론

 해부란 한 생물의 육체를 해체하며 과거의 흔적을 찾는 일이다. 나신으로 누워있는 인간은 하나의 고깃덩어리처럼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철판 위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영화는 해부실에서의 사뮈엘과 법정에서 산드라의 해부를 관객들로 참관하게 하고, 추락의 과정을 목격하게 한다. 


영화를 다양한 각도로 볼 수 있지만 나는 더 쉽게 이를 보기 위해서 마치 조각을 내듯 영화를 네 가지 키워드로 정리하려고 한다. 추락, 삼각형, 해부, 부부


추락墜落  

1.    명사 높은 곳에서 떨어짐.  

2.    명사 위신이나 가치 따위가 떨어짐  

 영화에서 추락은 사전의 정의와 같이 두 가지의 추락 곧, 남편 사뮈엘의 물리적인 추락과 아내 산드라의 사회적인 추락을 의미한다. 남편의 물리적인 추락은 어느 날 갑자기 그가 있던 3층 방에서 떨어져 가장 낮은 눈이 쌓인 마당으로 떨어진다. 그 추락에 대해서는 아내의 타살인지 혹은 그의 자살인지 의견이 갈리는데 그 과정에서 아내의 타살이 가장 의심받는다. 처음 산드라는 팔뚝의 멍에 대해 자신의 실수라고 말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아래로 곤두박질치는 추락의 순간처럼 그녀의 거짓말들은 하나 둘 밝혀진다. 그녀의 추락은 근본적으로는 남편으로 와의 갈등으로부터 시작되었지만 가속도를 더한 건 그녀의 거짓이라는 점에서 추락의 속도를 더한다. 마치 첫 장면에서 계단에 하나 둘 부딪히며 떨어지는 강아지 스눕의 장난감 공처럼 그녀의 추락은 유명 작가인 자신의 삶을 기자와 방송국의 가십거리로 만든다.


삼각형三角形  

1.    명사 세 개의 선분으로 둘러싸인 평면 도형.  

2.    명사 세 개의 각이 있는 모양.  

 설원 위에 지어진 3층으로 된 삼각형의 산장 그 꼭대기에 있던 건 남편 사뮈엘이다. 그는 그곳에서 큰 소리로 음악을 틀고 그 탓에 아래층에 있던 산드라와 한 여대생의 대화를 어렵게 한다. 산드라와 아들 다니엘이 함께 연주하는 피아노와 다르게 수직적으로 내려오는 음악은 폭력적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곧이어 그가 어떤 이유로 3층에서 지상으로 곤두박질치게 되자 가정의 위기는 찾아온다. 이는 삼각형의 특징에서 나타난다. 삼각형은 세 개의 점만으로도 균형을 얻는다. 하지만 그만큼 한 점이라도 사라지는 순간 그 균형은 무너진다. 처음의 균형은 사뮈엘과 산드라와 다니엘이 유지했지만 그 균형이 무너지자 그 공간에는 산드라의 변호사 뱅샹이 들어온다. 산드라가 법정에서 추락하자 베르제르가 집에 들어와 다니엘과 함께 다시 균형을 유지한다. 영화는 한 집 안에서 세 명의 인물을 위치시키며 끝없는 균형을 유지시킴으로써 역설적으로 추락과 붕괴의 순간을 포착한다.


해부解剖

1          생물체의 일부나 전부를 갈라 헤쳐 그 내부 구조와 각 부분 사이의 관련 및 병인(病因), 사인(死因) 따위를 조사하는 일.      

2          사물의 조리를 자세히 분석하여 연구함.      

 해부의 과정은 필연적으로 대상의 붕괴를 관찰해야 한다. 피부에 칼을 대어 살을 가르고 톱과 망치로 뼈를 부수고 개복을 해야 한다. 그런 과정을 따르다 보면 외형적으로 아름다웠던 모습은 사라지고 깊은 곳에 숨겨져 있었던 추악한 면까지 드러내게 된다. 남편 사뮈엘의 해부에서는 그가 추락이전에 그의 머리가 무언가에 가격 되었음을 이야기한다. 그녀의 해부는 법정에서 이뤄진다. 그녀가 그동안 다니엘에게 보여주지 않은 것들이 법정에서는 그와 다른 사람들과 언론들에게 까지도 공개된다. 진실을 알기 위한 해부의 과정은 필연적이지만, 그 대상이 된 그녀는 타인의 앞에 추악하게 파해쳐진다.


부부夫婦

          남편과 아내를 아울러 이르는 말.  

남편은 사뮈엘은 가정의 일 때문에 산드라에게 불만이 많다. 그녀가 작가로서 커리어를 이어갈 때 자신은 아이를 돌보고 집수리에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마저도 자신의 실수로 아들 다니엘이 4살 때 시신경을 크게 다치는 일이 발생하자 자신을 심하게 자책한다. 반면 아내 산드라는 외도까지 일삼으며 가정보다 자신의 삶에 더 중요한 가치를 둔다. 그런데 이야기는 다소 어색하다. 보편적인 이야기라면 남편이 가정보다 자신의 일에 더 열중하고 아내가 가정과 아이를 챙기는 탓에 자신의 일의 열중하지 못하는 것으로 진행돼야 한다. 이 영화 속 산드라는 아내보다 남편이라는 호칭이 더 어울리는 인물이다. 그녀의 외도의 상대가 다른 남성이 아닌 자신과 같은 여성이라는 점, 담배를 피우거나 부부관계에서도 주도권을 가진 그녀는 부부싸움의 순간에서도 폭력적으로 행동하고 남편 사뮈엘은 자신 스스로를 자해할 뿐이다. 영화는 여성과 남성을 역할을 전환하고 순간을 재현했다. 균형을 이야기하는 사뮈엘과 자신도 이미 가사에 참여한다는 산드라, 부부라는 단어는 그 순서를 바꿔도 같은 의미를 가진다. 그런데 그 순간에 어색함이나 부당함을 느꼈다면, 부당함은 그 이전의 상황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감독의 메시지다. 


 모든 사건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간 산드라 그녀는 2층방의 침대 위에서 어떤 노랫소리도 없는 고요한 환경에서 잠을 청한다. 남편 사뮈엘추락은 가부장제의 추락이다. 자신보다 가부장적인 아내 산드라에게 대한 불만으로 일어난 사건은 끝내 그추락으로 이어진다. 마치 미러링을 하듯, 일어나는 상황과 사건들은 기존의 가부장제도의 부당함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그렇게 누구보다 균형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사뮈엘은 삼각형의 가장 높은 꼭짓점에서 추락한다. 그의 추락으로 무너질 같았던 가정은 오히려 조용한 공간에서 평온하게 잠을 취하는 산드라의 모습을 통해 안정감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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