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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창의 시대에서 캐논처럼 사랑했던 이들에게

영화 클래식 (2003) 영화 평론

 장마 같은 과거 한국의 우울한 사회 속에서도 작은 개인들은 서로를 사랑했다. 내리는 비가 사람들을 갈라 세워도 그들은 작은 우산 아래서 타인의 눈을 피해 서로를 껴 앉았다. 하지만 빗줄기는 그칠 줄을 몰랐고 큰 강줄기를 넘을 수 없는 인간은 끝내 사회와 시대가 흐르는 대로 따라 흘러가야먄 했다. 세월은 지났고 사회는 변했지만 여전히 하늘에서는 비가 내린다. 다행인 건 이제 연인들은 우산 없이도 비 속에서  함께 한다. 

 시대가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 우리는 그것을 클래식이라고 부른다. 


 영화는 두 개의 삼각관계가 나타난다. 과거 시점으로 나오는 주희와 준하 그리고 태수의 삼각관계가 있고, 현재시점으로 전개되는 지혜 수경 그리고 상민의 삼각관계가 있다. 이 두 개의 삼각관계는 공통점과 차이점이 확실하게 나타난다. 공통점에는 각 인물이 상대방을 대신해서 편지를 쓰며, 처음에는 자신의 사랑을 부정하다 끝내 자신의 사랑을 인정한다는 점이 같다. 

 

 하지만 사랑이 이뤄지는 방식에 있어서는 차이점이 있다. 과거 시점에서 일어나는 관계에서는 주인공의 사랑을 친구가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태수는 주희와 약혼 관계에 있고 그녀에 대한 마음도 가지고 있지만 그는 준하를 방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바보처럼 자신을 눈을 가리고 준하에게 의존해 달리는 것처럼 그는 친구인 준하를 믿고 따른다. 오히려 준하를 방해하는 건 사회와 환경이었다. 아무런 출신도 아닌 수원 촌놈인 준하는 주희 조부에게 인정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비 속에서 우산을 써 그들만의 작은 공간을 만들듯 주희와 몰래 사랑을 이어간다. 하지만 주희의 집 앞에서 우산을 내리고 비를 맞으며 서로의 사랑을 인정받으려 하자 다시금 난관에 부딪힌다. 그의 병문안이 발각되고, 편지가 반송되는 탓에 다시금 들킨다. 그렇게 큰 강줄기를 넘지 못하는 작은 개인은 끝내 군에 소집되며 만남은 끝이 난다. 주희와 준하의 사랑은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한다. 세월과 시대 속에서 서로가 원하는 걸 얻지 못하고 그대로 흘러가버리는 작은 개인들이 있을 뿐이다. 


 반면, 현대의 삼각관계는 인물 간의 갈등이 사랑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상민을 좋아하는 수경은 자신의 친한 친구인 지혜가 상민을 좋아한다는 걸 깨닫는다. 그러자, 그녀와 상민의 관계를 방해하기 위해 그녀를 집으로 보내려고 하거나, 선물을 바꾸는 등 여러 수를 사용하며 그의 사랑을 독차지하려 한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은 막을 수 없으며 오히려 하늘에서 내리는 비마저 그들의 사랑을 돕는다. 상민이 소나기에 우산이 없이 교정을 걷는 지혜를 보고 함께 비를 맞으며 학교를 걷는다. 지혜는 그가 우산이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는데, 그 사실을 알게 되자 지혜도 우산을 손에 든 체 비를 맞으며 그에게 간다. 그러자 상민은 지혜에게 우산이 있는데도 왜 비를 맞았는지 묻자, 지혜는 우산이 있어도 비를 맞는 사람은 나 혼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게 상민과 지혜는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이 영화의 독특한 점은 영화의 배역에 있다. 어머니 주희와 그리고 딸 지혜 역을 손예진 배우가 맡았다. 어머니와 딸이 닮았다는 이유로 한 명의 배우를 사용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보다 더 많은 이유가 있어 보인다. 어머니인 주희가 현재 시점에서는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마치 주희와 지혜가 시간을 넘어 하나로 이어진 인물처럼 느껴지게 된다. 

 그리고 주희가 사랑했던 준하와 지혜가 사랑하는 상민은 부자 관계라는 점에서 주희와 준하의 사랑이 결국 이뤄지도록 했다. 지혜는 상민과 함께 어머니 주희가 준하와 같이 있었던 곳을 걷는다. 주희와 준하가 이곳에 있었을 때는 비가 쏟아졌지만, 지혜와 상민에게는 맑은 하늘이 함께 했다. 주희의 이야기를 들은 상민은 자신이 하고 있던 목걸이를 푼다. 그 목걸이는 주희가 준하에게 준 것과 같다. 


클래식

 이제 자신도 늙어버렸다고 말하는 주희에게  준하는 여전히 예쁘다고 말한다. 사실, 준하는 앞이 보이지 않는다. 아이가 카페에 있던 피아노 조각을 옮겼지만 준하는 그걸 모르고 피아노 조각이 있었던 곳을 바라보며 주희의 고등학교 연주회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제야 주희는 준하가 눈이 멀었음을 알고 슬픔의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준하는 울지 않는다. 앞이 보이지 않는 준하의 기억 속에는 여전히 아름다웠던 그 시절의 그녀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준하의 기억 속 주희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클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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