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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엽편소설_1

 덜커덩 거리는 수레소리가 요란하다. 새벽 바다를 따라 길게 줄 지어 있는 비좁은 어시장 골목. 그 골목을 따라 한 남자는 오래된 수레를 연신 밀고 나갔다. 파도 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 새벽, 골목길을 따라 연신 덜커덩 거리는 수레 소리는 메아리를 울리며 퍼져나갔다. 얼마나 수레를 밀고 왔을까 검은빛을 띠었던 하늘이 붉은색과 푸른색이 다 섞이지 못한 채 걸려있을 무렵, 수레는 어떤 회색빛 외벽 건물 앞에 멈춰 섰다. 그 건물은 이 층 창문에 반으로 잘린 페트병이 줄에 매달려 일 층까지 늘어져 있었다. 남자는 주머니에 손을 깊게 넣더니 구겨진 지폐들을 꺼내 세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천 원짜리 세 장과 오천 원 한 장을 돈보다 주름진 손으로 연신 펴서 매달려 있는 페트병에 넣었다. 그리고 이 층 창문을 향해 말했다. "형님 얼음 한 각" 잘 안 들릴까 봐 한 번 더 창문을 향해 말했다. "한 각 형님 한 각" 그제야 페트병은 다시 이 층으로 올라가고 다시 돌아온 페트병에는 오백 원짜리 동전 하나가 남아있었다. 오백 원 동전을 다시 주머니에 깊게 넣고 그는 수레를 긴 호스 그저께로 밀었다.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며 건물 외벽에 나와있는 호스에서 얼음이 쏟아져 나왔다. 그는 조금이라도 흘릴까 봐 몸으로 얼음이 튀는 걸 막으며 수레에 얼음을 넣었다. 그리고 다시 왔던 골목길을 따라서 수레를 다시 밀고 나갔다.


 수레는 승호수산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가게 앞에서 멈춰 섰다. 자갈 같이 조각난 얼음은 나무로 된 가게 좌판에 뿌려졌다. 그리고 그 위에 그날 들어온 생선을 올려놓았다. 그 옆에는 붉은 홍게도 얼음 속에 파 묻혀 붉은빛을 유지했다. 그 앞에는 흰색 스티로폼 박스에 검은색 마카로 '제철 홍게 1kg 18000원'이라고 적어서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제야 그는 좌판 뒤에 있는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바라본 시계는 11시를 조금 넘긴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예전 같았다면 얼음이 녹는 것이 무색하게 관광객들로 북적여야 하는 골목이었음에도 올 해는 유난히 더운 여름과 손님의 부제가 그의 얼굴을 덮고 있는 마스크보다 그를 더 답답하게 했다. 그리고  얼음은 무색하게도 녹아내려갔다. 그렇게 하루는 데칼코마니처럼 다시 그가 수레를 이끌고 가던 아침의 붉은색과 푸른색의 하늘로 변해갔다. 아침에 가득했던 얼음은 좌판의 모서리 끝에 모인 물방울이 되어 뚝뚝 떨어졌다. 그의 하루는 얼음과 함께 시작하고 얼음이 녹음으로써 그의 하루일과도 끝이 났다.


 하루가 저물고 돌아온 집, 바닷바람이 창문을 타고 들어온 방에는 조업을 나가는 배에서 나오는 빛으로 방은 밝혀지고 있었다. 아이의 머리 위에는 땀인지 바닷물인지 모르는 물방울이 맺혀있는 채로 잠이 들어있다. 그는 아이가 잠이 깨지 않게 조심스레 짐을 내려놓고 아이의 이마 위 물방울을 훔쳤다. 그의 손에는 바닷냄새와 차가움이 서려있다. 한 방울 두 방울 닦아 내는 손은 어느새 점점 따뜻해져 간다. 그의 손도 언젠가는 녹고 있는 얼음처럼 물러질 것이다. 하지만 그의 손이 따듯해질 때면 그 아이는 어느새 자라 그의 자리를 대신해줄 것이다. 매일 얼음은 녹아 사라지지만 다음날이 되면 새로운 얼음이 좌판을 가득 메꾸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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