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합니다 저는 그렇게 디테일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들어간 첫 직장은 소규모의 독립광고대행사였다.
깐깐한 여자팀장 아래서 기초부터 배워나가며 야근을 밥먹듯이 하던 시절이다.
지금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책상아래 우드보드를 깔고 쪽잠을 자며 일을 배우던 시절이다.
대리를 달고 3년 차즈음에 외국계 대행사로 직장을 옮기게 되었다.
광고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어느 광고주를 담당하느냐에 대한 부심이 있다.
이직한 곳에서는 그야말로 글로벌한 브랜드들을 담당할 수 있었고
그 이유만으로도 모든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큰 의미도 아닌데 말이다.
이직한 곳에서도 사수는 여자팀장이었고 그분의 디테일 또한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디렉션을 주셨다.
옆팀의 팀원들도 혀를 찰 정도였으니 지금 생각하면 잘 버텨낸 내가 스스로 대견할 정도이다.
그러한 과정을 거치고 차장이 되었고 나를 가르치던 팀장들은 하나 둘 회사를 떠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치열한 경쟁을 통해 자연스럽게 나는 팀장의 자리에 올라 팀원들과 협업을 시작했다.
팀장이 되어 처음 준비하는 경쟁프레젠테이션은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수능을 앞둔 학생들이 천재지변을 기원하는 심정처럼 출근길에 교통사고가 심하지 않게 나주길 바랬던 기억도 있다. 긴장되고 긴장되어 그러한 생각까지 들었던 모양이다.
대행사는 보통 각 팀당 1년에 많으면 7번~10번 정도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한다.
팀장이 되면 자신의 아이디어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팀원들이 낸 여러 아이디어들을 콘셉트에 맞게 정리해 내는 능력도 있어야 한다.
반복되는 팀회의를 하고 준비한 프레젠테이션을 마치면 결과와 상관없이 팀원들과 회식을 하며 스트레스를 풀어냈다.
그때 바로 아래의 아트디렉터가 술 한잔 한 김에 한마디 한다 '팀장님은 어떻게 그렇게 디테일하게 디렉션을 주세요?'
회의 때마다 왜 그리 깐깐하게 구냐고 한마디 먹이는 건지 칭찬인지 모르겠지만 내 생각엔 전자일 확률이 100%다. 그 연차엔 나도 그렇게 생각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여러 해를 회사에서 업무를 하며 지내다 보니 나도 '내가 정말 티테일한 사람이구나' '꼼꼼한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살았다. 3년 전 목공을 취미로 시작하기 전까지는...
3년 전 코로나로 재택근무도 많아지고 업무도 많이 한가해질 무렵에 그동안 관심을 가지고 있던 목공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 저녁 7시에서 10시까지 2년을 배우고 3년째인데 나무를 만지고 다듬고 깎고 파내고 조립하는 과정이 집중할 수 있어 시간을 보내기에 아주 좋다.
그런데 목공을 하며 깨달았다. 나의 꼼꼼함은 허상이었다는 것을,
나무는 정확한 재단에서부터 그 작업이 시작된다. 그리고 나무에 정확하게 긋는 칼금과 디테일한 톱질과 끌질이 생명이다.
한 치의 오차라도 나면 조립의 과정으로 넘어가지 못한다.
톱질이 바르지 않으면 이미 그 목재는 재생불가이다. 꼼꼼하고 디테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과정인 것이다.
'아 나는 덤벙대고 대충대충 하는 사람이었구나'라는 걸 느꼈다.
낯선 작업에서 오는 괴리감 때문인가?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나 스스로 생각해 보면 나는 그렇게 꼼꼼한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회사에서 프로젝트 미팅을 할 때면 디테일해 보이려고 자료를 많이 찾아가고 이런저런 부연설명으로 아이디어를 정리해 냈지만 그것은 나의 허술함을 감추려고 했던 나만의 방식이었던 것이다.
그 시절 나에게 가르침을 주셨던 나의 사수와 팀장들은 나의 덜렁됨을 알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드니 그분들께 미안함 마음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도 나의 팀원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면 그들도 눈치를 채고 뒤에서 나를 안주삼아 톡을 날리며 나의 자리를 넘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