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유 3_『호메로스에서 돈 키호테까지』_ 윌리엄 L. 랭어_푸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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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만났으나 우연한 만남으로 그치지 않을 책이다. 설레어 구입한지는 꽤 되었는데 막상 펼친 것은 며칠 전이다. 첫 챕터인 <호메로스 새로 읽는 법>을 읽고 매료되어 올 겨울 방학 <나 홀로 북 클럽> 첫 번째 책으로 정했다.
= 나 홀로 북 클럽 =
1. 정해진 시간
2. 일정한 분량
3. 낭독이나 음독
4. 필사
5. 세 문단 글 쓰기
이 책은 해당 분야의 저명한 연구자들이 쓴 열일곱 개의 에세이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한 두 명의 저자가 쓴 세계사 개설서를 읽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즐거움을 준다.
'호메로스', '소크라테스'에 이어 오늘은 '알렉산드로스'를 읽었다. 이 에세이는, 브라운 대학교의 고전학 교수였으며 알렉산드로스에 관한 여러 연구 논저를 저술한 C. A. 로빈슨 2세의 글이다. 저자는, 알렉산드로스라는 인물의 일생을 영화처럼 실감 나게 그려내는 동시에 각 시기마다 그가 했을 법한 질문을 짚어낸다. 이와 같은 저술 방식은 독자로 하여금 알렉산드로스의 고심을 당사자적인 문제로 받아들이게 하고, 그의 선택이 초래한 세계사적 의의를 맥락 안에서 받아들이도록 도와준다.
알렉산드로스는 20세의 나이에 부친의 왕국, 군대, 아시아 원정 계획, 그리고 코린토스 동맹군 지휘의 임무를 떠맡게 되었다. 이 정복 과정을 통해 알렉산드로스는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태도를 갖게 된다. 야만인(그리스인이 아닌 사람들)에 대해서 그리스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었던 알렉산드로스가, '모든 사람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새로운 관점은 여러 가지 난관과 불운, 그에 따른 궁여지책으로 인해 '새로운 사상'으로 자리매김해 나간다. 알렉산드로스의 '세계 개념'은 그의 정치 행위를 통해 구체화되고, 이후 제논, 스토아 철학, 사도 바울, 로마 제국, 그리스도교의 로마 정복으로 변주되며 증폭되었다. 그 모든 것이 알렉산드로스가 의도하거나 꿈꾼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의 비범한 삶이 남긴 업적인 것은 분명하다.
알렉산드로스는 13세 때부터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을 받았다. 이 감수성 예민한 사춘기의 3년 동안에 그의 예리한 정신은 철저히 그리스적인 특징을 갖게 되었고, 한편 로맨틱한 상상력으로 인해 그는 호메로스, 그리고 자신의 조상이라고 여겼던 헤라클레스 및 아킬레우스에 대해 애정을 품게 되었다.
<알렉산드로스가 이룩한 두 세계> p.74
아시아 원정 출발 무렵, 출정 준비는 그야말로 완벽에 가까웠다. 알렉산드로스는 먼 훗날 나폴레옹이 그랬던 것처럼, 예술가·시인·철학자, 그리고 역사가 등을 대동했다. 또한 측량 기사·기술자·지리학자·수로학자·지질학자·식물학자 등의 과학자들이 아시아의 각종 풍물을 탐구하기 위해 함께 떠났다. 그들은 후에 추출된 표본들을 본국에 있던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가져다주었으며, 이로써 더욱 정밀한 과학적 분석이 가능해졌다. p.77
이러한 사상을 구체화시키고, 그의 세계 국가 내부에 공동의 유대를 창출하는 일이야말로 알렉산드로스가 떠맡은 임무 가운데 가장 어려운 임무였다. 이를 위해 처음 얼마 동안 그는 도시를 건설하는 일에 주력했다. ... 헬레니즘(또는 그리스 문화)의 ‘섬’이라고 할 이 도시들로부터, 알렉산드로스가 희망했듯이, 그리스의 지식이 확산되어 제국의 백성 모두를 통합시키는 데 기여한 것이다. 아시아 지역으로의 그리스 문화 전파는 결과적으로 알렉산드로스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업적이 되었다. p.92
알렉산드로스가 원정 주력군을 야만인 병사들에게 기꺼이 내맡긴 것은, 바야흐로 급속히 형성되어 전 세계에 펼쳐지고 있던 새로운 사상이 구체화된 대표적인 사례였다. 그리고 그 정책의 동기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알렉산드로스의 절실한 필요성 때문이었다. p.93
관습과 혈통의 혼합에 기반을 둔 새로운 생활 방식이 확산되고 있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이러한 새로운 태도는 그의 제국건설을 추진하고 결속시키는 힘이 되었다. p.94
알렉산드로스는 제국 내에서의 공동 협력을, 그리고 국가 공동체-여기서는 모든 국민이 臣民이 아닌 동료가 되어야 했다-내에서의 단결과 화합을 기원했다. 이 기원은 인류 정신사에서 혁명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 사상은 맨 먼저 제논(기원전 335경~263경)에 의해 채택되었는데, 그가 설파한 스토아 철학은 바로 인류가 형제임을 가르쳤던 것이다. 그 사상은 그 후 사도 바울에 의해 채택되었다. p.95
알렉산드로스 제국 이후에 등장한 새로운 왕국들은 300년에 걸쳐 마케도니아인과 그리스인에 의해 서양적인 방식으로 통치되었다. 그것은 로마가 등장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헬레니즘 시대-알렉산드로스 사망 후 헬레니즘이 그리스 바깥 지역에 받아들여진 특별한 수백 년 간을 우리는 이렇게 부른다-의 가장 놀라운 사실은, 알렉산드로스의 정복을 통해 거대한 세계의 문이 활짝 열렸으며, 또한 이 세계가 하나로 통합되었다는 점이다.
비록 범인류적 연대와 같은 알렉산드로스의 꿈은 차후 매우 서서히 뿌리를 내렸지만, 그의 ‘세계’ 개념은 즉각 수용되었다. 헬레니즘 시대 사람들은 점점 더 자신이 세계 사회의 구성원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 이 문화는 평민층의 급속한 성장을 이뤄냈고, 오리엔탈리즘과의 긴밀한 접촉을 통해 많은 영향을 입었다. 세계가 통합되었음을 생생하게 입증하는 대표적인 사례를 우리는 신약성서가 그리스어로 쓰여진 데서 확인할 수 있다. p.101
로마에 문명을 가져다주고, 로마의 세계 국가 창출에 기여하고, 나아가 그리스도교로 하여금 로마를 정복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은 바로 이 헬레니즘 시대의 문화였다. 강력한 역사적 힘만이 그러한 국가를 창출할 수 있다. 바로 그것이 알렉산드로스의 업적이었다. p.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