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몽교실 3_ 평범해 보이는 것들 속에 들어 있는 아픔과 힘듦
종업식 날이다. 이별 의식은 마지막 등교일이었던 어제 치렀다. 오늘 온라인 수업은 엔딩 크레디트 느낌으로 담담하게 마무리해야지, 아이들이 다 나가면 빈 회의실에 잠시 머물다 나와야지, 마치 텅 빈 교실에 앉아 구석구석 둘러보는 것처럼,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상황이 뜻대로 전개되지 않았다. 마지막 인사를 했는데도 아무도 안 나가더니 훌쩍거리는 아이들이 한두 명씩 늘어났다. 이런저런 장난(?)을 시도하다가 다 같이 카운팅하고 동시에 나가기로 했다. 그렇게 zero를 외치고 나서 몇 초가 지난 뒤, ‘회의 종료’ 버튼을 눌렀다. 화면에 빼곡했던 아이들 얼굴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망망대해에 떠 있는 배에 아이들만 남겨두고 떠나온 느낌이었지만 이건 나만의 착각이다,라고 다독였다.
몇몇 어머니로부터 인사 문자가 와서 간단하게 답장을 보내고 있는데 장문의 톡이 도착했다. M의 어머니다.
선생님, 먼저 긴 글이 될 것 같아 미리 양해 말씀드립니다.
노출된 첫 문장이 심상치 않다. 민원인가? 민원까진 아니어도 서운하거나 아쉬웠던 말씀을 하시려나? 동학년 회의 시각이 다가오고 있는 데다 오전 중에 챙기거나 처리해야 할 일들이 있어서 얼른 확인했다. 다행히 바로 처리해야 할 급한 용건은 아니었다. 그러나 짧은 틈에 답장을 쓰기는 어려울 것 같아 카톡 창을 닫았다. 출근할 때의 예상과 달리 분주한 하루를 보내고 평소보다 조금 늦게 귀가했다.
저녁을 먹고 나서 소파에 앉아 다시 카톡 창을 열었다. 천천히 읽어 내려가는데 마음이 아프다. 마음이 너무 아픈데 왜 그런지 몰라서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 나는 이런 것에 감정이입이 그리 잘 되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좀 냉담한 편에 가까운데 이상하게 마음이 요동치고 있었다. 그런 내가 당황스러워서 곰곰이 생각을 뒤적거렸다. 그리고 그 갈피에서 M의 에피소드 2개, M의 어머니 에피소드 몇 개 그리고 복직하던 무렵의 나를 발견했다. 한 번씩 담글 때마다 예상치 못한 무늬가 생겨나는 마블링 그림처럼 이제야 ‘깨달아지는’ 것들이 생겨났다.
M은 아픈 손가락이 아니었다. 흥과 유머가 많고, 말과 눈물은 그보다 더 많은 열 살이었지만, 손이 많이 가는 녀석도 아니었다. 아이와 관련한 몇 가지 인상적인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무난한 가정'이라 여겨 깊게 생각하지 않았고, '엉뚱하고 재미있는 해프닝' 정도로 여겼었다. 어머니 관련 에피소드도 몇 건 있었지만 그 또한 몇 초 동안의 의아함과 희미한 성가심 정도의 기억이었다. 안내 문자를 안 읽으시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 너무 심적으로 부담이 컸는데 선생님께서 누구에게나 그러셨겠지만 M을 정말 잘 챙겨 주시고 관심 있게 지켜봐 주셔서 잘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미처 신경 쓰지 못했을 때도... 어쩌면 저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시면서 잘 파악해주시고 보듬어 주셔서 M이 많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까불고 관종에 말도 못 하게 밉상일 때도 있지만 정말로 선생님 덕분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관심받고 싶은 막내를 예쁘게 봐주셔서 정말 말로 다 표현 못할 만큼 감사했습니다. ...
이사, 취업, 코로나 상황, 잦은 온라인 수업, 아이의 잔병치레, 아이의 기질, 엄마로서의 심적 부담과 죄책감을 적으면서 감사 인사를 전하는, (조금 길고 자세하다는 점만 제외하면) 전형적인 학년말 학부모 문자였다.
어찌 보면 특별할 것 없는 '아이 키우는 한 엄마'의 이야기에 지나치게 감정이입이 된 것은,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여기고 지나갔던 일들이 비로소 해석되었기 때문이다. ‘몰라봤다는, 알아주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었다. ‘우리 아이를 특별히 예뻐해 주어서’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그러셨겠지만’ 감사하다고 말하는 M 어머니께, ‘사실은 손길을 거의 못 주었어요’라고 고백해야 할 것 같았다. 후회나 죄책감 같은 감정은 아니었다. 시간을 돌려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M은 다른 아픈 손가락들에게 밀릴 것이다. 그러나 눈길은 몇 번 더 머물 것이고, 스치는 눈길에도 관심이 꾹꾹 눌러 담겼을 것이다. 아쉬움이 마음 한 가닥을 미세하게 건드리고 있었다.
아이와 어머니가 하나의 이야기로 다가오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평범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특별한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를 불러냈다. 복직하던 해 아무도 없는 어두컴컴한 복도를 걸어 나올 때 왈칵 솟던 눈물, (축구공에 맞아) 자동차 뒷유리가 다 부서졌는데도 멈출 마음의 여유가 없어 그냥 달리던 퇴근길, 아직 문 열지 않은 어린이집 앞에 오누이를 세워놓고 출근하던 아침, 밤새 열이 났던 아이를 해열제 먹여 교문 앞 횡단보도에 내려놓고 미처 눈길도 다 주지 못하고 핸들을 꺾던 나, 고속도로를 달리며 아이에게 입혀 보낸 트레이닝복이 너무 허술하다는 생각을 하다가 금세 잊은 나, 나이스 인증서 비밀번호를 아이들 애칭으로 조합해서 만들고 그걸 꾹꾹 누르면서 시작하던 하루하루, 어느 날 정신 차려 보니 딸아이가 입고 다니는 핑크 점퍼 소매 끝이 땟국물로 반질반질해져 있던 그해 겨울... 같은 것들.
'관종 짓'이라는 제목으로 연작 일기를 써오던 M, 담임이 보낸 문자를 차분히 읽을 여유가 없어 일단 질문이나 전화부터 했던 어머니, 평범해 보여서 특별히 더 관심을 보이지 못했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평범해 보이는 것들 속에 들어 있는 아픔과 힘듦을(내 것을 포함해서). 다시 보기로 틀어놓은 ‘풍류대장’에서 소리꾼 김주리가 '한계령'을 부르고 있다.
M은 노래를 즐겨(시도 때도 없이?) 불렀다. 어느 수학 시간, 양팔 저울로 무게 재기 수업을 하고 있을 때였다. 분동을 올릴 때마다 기우뚱거리는 저울 수평을 잡느라 고요한 교실에 갑자기 또랑또랑 구성진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긴가민가하면서어~ 부대찌개 살아온~"
당연히 아이들은 웃음을 터뜨렸고, 나도 웃었다. 그날 저녁, M은 일기에 이렇게 썼다.
2021년 11월 25일 목요일
제목: 학교에 갔다(two)
오늘은 어떤 관종 짓을 할까. 관종 마스터 넌 어떻게 생각해? 나는 수학 시간의 저울을 사용하니까 그때 하자. 저울이 오락가락함. 내 차례다.
긴가민가하면서~ 부대찌개 살아온~
친구들은 푸헤헤. 나도 선생님도 푸헤헤. 어떻야. 내 웃김이.
반응 좋으면 3편(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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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간의 -> 수학 시간에
부대찌개 살아온 -> 부대끼며 살아온
어떻야 -> 어떻냐
떠올릴 때마다 웃음이 났던 이 에피소드가 이젠 짠하다. 삶이란 이런 것이구나.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도시의 야경이 아름답다고 해서 그 각각의 불빛이 머무는 공간들이 그 순간 모두 평온한 것은 아니다. 평범하고 무난해 보이는 것 속에 내가 알아보지 못하는 아픔과 슬픔, 힘듦이 담겨 있다. 타인의 감정이나 상황을 다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내가 모르는 세상이, 아픔과 힘듦이 그 속에 있을 거라고 짐작하는 것만으로도 바라보는 눈빛은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어떤 이들은 그 눈빛만으로도 충분할지 모른다. 내가 그러하듯 말이다. 손길을 줄 수 없어서 일부러 냉담을 가장하기도 하고 그러다 무심함이 습관이 되어 버린 내가, 나에게, 다정한 눈길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