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다른, 그러나 남과 같은
남자들의 샤넬백
여자인데도 유독 매니쉬 한 스타일을 좋아하는 저에게 샤넬은 그다지 끌려본 적 없는 브랜드였습니다.
어느 날 나 혼자 산다에서 송민호 님의 샤넬백 룩을 본 후, 한 동안 머릿속에 그 백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남자가 메고 있는 빅 사이즈의 샤넬 백. 그토록 묘한 조합이라니! 검은색 샤넬 멕시 19백. 그게 갖고 싶었습니다. 1099만원.
남과 다른, 그러나 남과 같은
유독 샤넬에 집착하는 사람들. 비싼 백은 얼마든지 많은데, 왜 하필 샤넬일까. 오픈 런을 하고 대기표를 받아야 하는 대우를 받으면서?
결혼식에 가면 다 똑같은 샤넬을 메고 있는 것도 기이해 보였습니다. 교복 같은 느낌. 직장인들 수준에서 가장 있어 보면서도, 월급 모으면 가능한 수준의 브랜드가 샤넬이구나. 유행 같은 거구나. 싶었습니다.
'다 허풍이야.'라고 생각했던 저였는데. 어느새 강렬히 원하고 있었지요. '난 그 가방의 디자인이 맘에 드는 거야. 샤넬이 아니라.'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큰 검은색 가방은 널리고 널려있는걸요.
결국 마주하고 말았습니다. 남들과 다른 스타일을 원했다고는 하지만, 결국 남들과 다를 바 없이 그 브랜드를 갖고 싶어 하는 저를요.
샤넬을 안 사는 걸까, 못 사는 걸까
그렇게 못 버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게 잘 버는 것도 아닌 직장인. 천 만원쯤이야 모을 수는 있지만,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직장인.
순식간에 현실이 가슴으로 파고들었습니다. 못 사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오히려 홀가분해짐을 느꼈어요. 더 이상 그 판에 들어가지 않을 작정이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 중 얼마나 많은 물건들이 이런 식일까. 얼마 전 백화점에서 산 비싼 옷. ‘오래 입을 거니까.'라며 합리화했지만, 결국 입을 때마다 괜히 비싸게 샀나 싶은 후회가 더 컸죠. 이건 안 살 수도 있는 것으로 분류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못 사는 것은 지워내고, 안 사는 것으로 비워냈지요.
남들과 다른 척하면서도, 남들은 하나쯤 갖고 있는 물건. 결국 제가 구매하고 싶었던 것은 나만의 취향이 아니라 모두의 취향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