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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노우맨 Jun 06. 2023

미니 스커트 입으면 안 되나요?

여자 엔지니어가 인정받기 위해 참은 것

미니 스커트는 좀 그래요.


엔지니어로 출근했던 첫날, 선배의 지적이었습니다. '그런 옷은 회사에 적절하지 않아요.' 그때 느꼈던 그 당혹감, 민망함, 반항심. 


도대체 이게 왜? 치마 정장이긴 해도 일할 땐 방진복으로 갈아 입을텐데. 왜 복장이 문제라고 하는지 받아들이질 못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사회생활이란 이런 것이구나 느꼈어요. 내가 누군가의 기준에 엇나가지 않았는지 살피지 않으면, 가십거리로 전락하기 쉽다는 것도요.



고분고분 말 들을 줄 몰랐던 저는 반항심에 80년대 차림으로 스타일을 바꿨습니다. 대학 시절 흑인 음악 동아리에서 하고 다녔던 것처럼요. 


소심한 반항이었습니다. 하지 말라는 말에 대들지는 못하겠고, 선배가 원하는 대로 맞춰주기는 싫은. '그래, 미니 스커트가 안 되는 거라면 힙합으로 입지 뭐.' 


히피펌으로 빠글빠글 파마를 했고, 조던 신발에 큰 청바지와 후드를 입고도 고객을 만났습니다. 여자 같은 티만 내지 않으면 되는 거였으니 그 외의 차림은 그 다지 지적받지 않았어요.


그렇게 입사 첫날 저는 좋아했던 한 가지, 옷차림을 포기했습니다.

  



ㅇㅇ씨가 예쁘잖아


2년쯤 지나 스페셜 보너스를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당시 전 돈에 무디었고 일 욕심만 많았기에, 그다지 고마워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았습니다.


보너스를 받은 다음날 회식 자리에 늦게 도착했습니다. 방진복을 오랜 시간 입어 머리가 잔뜩 눌리고 화장도 안한 채 도착한 제 모습을 보고 상무님은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이야 쟤는 방진복을 그렇게 오래 입고 있었는데도, 어쩜 저렇게 예쁘냐.'라고요. ‘뭐 예쁘다니까 좋은 거지..?’ 뭔지 모르겠는 기분으로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한참 자리가 무르익던 때 저에게 상무님이 '내가 왜 너한테 그 보너스를 줬는지 알아?'라고 사람들 앞에서 물었습니다.


전 겸손한 척, 다른 사람들에게 실례가 되지 않을 만한 답변이 뭘까, 머리를 굴리고 있었죠. 제 대답을 듣기도 전 그가 말했습니다. 'ㅇㅇ씨가 예쁘잖아.'


프로페셔널한 척해봤자 고작 28살 남짓. 원래도 다분히 참는 성격인 저는 감정을 표현할 줄 몰랐습니다.


술자리에서 아무렇지 않게 제 허벅지를 툭툭 치는 상사에게도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는 어린 나이였어요.


그 어떤 성희롱과 성차별에도 무뎌지는 것. 당시 할 수 있는 건 스스로 상처받고 견뎌내는 것뿐이었습니다.



형이라고 부를게


그까짓 성희롱과 성차별 따위에는 상처도 받지 않을 정도로 단단해진 31살. 소심하고 개인주의적인 본래 성격을 적당히 감추는데 익숙해졌습니다. 일도 잘 해내고 있는 적당한 연차.


일을 끝내고 동갑내기 남자 후배와 밥을 먹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아직도 잊지 못하는 그 말. '형이라고 부를게.‘ 다른 여자 엔지니어들과는 다르다면서 말이죠.


’형‘이라는 말. 그 친구 나름대로는 저를 인정해주는 단어였습니다. 실력과 성별에 차별두지 않겠다라는. 윗사람이 나를 인정해 주는 것보다, 같이 일하는 후배가 나를 믿고 따를 때 느껴지는 성취감과 고마움은 정말 차원이 다른 것이었습니다.



결국 집중해야 하는 것은


아직도 무엇이 '공평한 성'인지에 대한 정답은 모르겠습니다. 성차별, 성희롱에 대한 기준은 너무 다르고, 그런 기분을 느끼는 때는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옵니다. 반면 제가 여자이기에 이득을 취했던 것들도 많았겠지요. 이득이니 눈치채지 못했을 뿐.


다만 제가 알게 된 것은, 바꿀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매우 분명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진정 집중하고 노력해야 할 것은 '나'라는 것이었습니다. 나의 태도, 나의 실력, 나의 인성.


김연아 선수가 얘기했습니다. '금메달 보다 값진 은메달을 얻었다.'라고요. 그 자리를 얻든 얻지 못하든, 얻지 못한 이유가 실력이든 성차별이든. 그 무엇에도 의연해질 정도로 스스로에게 떳떳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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