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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성화 May 31. 2024

확대가족 안에서 저는 보통의 며느리일 뿐입니다.

어쩌다 보니 어버이날 유공 표창! 그러기에 세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지난 5월 1일,

어쩌다 보니 어버이날 유공 표창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2024. 5. 1 군수님께서 대신 전달해 주셨습니다.

추천해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상을 받게 될 거라고는 기대조차 안 했기에 까마득히 잊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수상하기 며칠 전에 상을 받게 될 거라는 걸 알게 되었고 급 부끄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누구보다 제 자신이 저를 가장 잘 알잖아요!


‘효부(孝婦)’라는 단어를 떠올리고 입에 담을 수도 없는데, 어떻게 내가 어버이날 유공 표창을 받게 되었을까 고민이 깊었습니다.

특히 양가 가족들에게는 더더욱 제 입으로 말을 꺼내기가 낯 뜨겁더라고요. 그래서 조용히 혼자 수상만 하고 왔습니다. 그런데 군청에서 저를 본 남편의 지인이 남편에게 연락해 남편의 귀에도 금세 들어갔고요. 뒤늦게 수상 소식을 듣고 축하해 주시는 분들께 축하받는 순간에도 너무 부끄럽고 멋쩍었습니다. 그만큼 이 상은 정말 어려운 상 같아요. 다른 상이 었다면 그저 기쁘게 받았을 텐데요.


표창(表彰)
어떤 일에 좋은 성과를 내었거나 훌륭한 행실을 한 데 대하여 세상에 널리 알려 칭찬함. 또는 그것에 대하여 명예로운 증서나 메달 따위를 줌.

효부(孝婦)
시부모를 잘 섬기는 며느리.



처음엔 그저 부끄러운 마음에 숨고 싶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는 상의 의미를 되짚어보게 되더라고요.

제가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장례를 집에서 치렀던 것 같아요. 친할머니와 친할아버지 두 분 모두 노환으로 누워계시다 집에서 돌아가셨고 동네 할아버지께서 염을 해 주셨던 광경이 어렴풋이 생각나요. 꽃상여가 나갔던 장면도 사진처럼 머릿속에 있어요. 어렸을 때 큰집과 우리 집이 길을 사이에 두고 옆으로 나란히 있었는데요. 큰댁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사셨고 큰엄마와 엄마가 할아버지, 할머니를 친딸인 고모들보다도 훨씬 더 딸처럼 지극정성으로 모셨습니다. 이런 건 어린아이의 눈으로 봐도 알 수 있지요. 첫째 며느리인 큰엄마께서 효부상을 받으셨는데 당시 사진 속의 큰엄마는 한복을 입고 계셨어요. 그래서 효부상 하면 '결혼한 지도 꽤 오래되고 20년~40년처럼 오랜 세월 동안 시부모를 봉양한 며느리'라는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그에 반해 저는 이제 겨우 40대 초반이고 결혼해서 같이 산지도 10년이 조금 넘었을 뿐입니다. 예전 부모님 세대들은 정말이지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셨지만 요즘은 모시고 사는 게 아니라 오히려 도움을 받고 살지요.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결혼하기 전 상견례 자리에서 시아버지 될 분이 같이 살자고 하셨는데 말씀처럼 자연스럽게 그리 되었습니다.

요즘, 같이 사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싶지만 또 한편으로는 못 살 이유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10년 남짓이 되었네요. 시부모님께서는 떡방앗간을 운영하시면서 농사도 같이 지으시기 때문에 우리 집은 1년 내내 항상 바쁩니다. 남들이 왜 너희 집은 매일 바쁘냐고 고개를 갸우뚱하는데 살아보니 정말 1년 내내 쉴 틈이 없습니다. 코로나 이후 그나마 좀 느슨해졌다고 해야 하나요?

주업인 떡방앗간일 만으로도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허리 한번 제대로 못 피고 일하시는 날이 많으십니다. 부모님은 부모님대로 정말 너무너무 바쁘십니다. 저희 또한 저희대로 평일엔 본업에 충실하고, 주말에는 시부모님 일과 농사일을 도와드려야 하니 힘들고 지치기도 합니다.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주말이 간절할 때가 종종 있어요. 친정도 자주 못 가서 속상하고 서운할 때도 있고요.




결혼하고 아이 셋을 연년생으로 낳았는데요. 남편과 저는 둘 다 아이들을 좋아합니다. 친정엄마가 들으면 놀라시겠지만 남편과 저는 많이 낳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피임은 생각 안 해봤어요. 말로만 듣던 육아가 보통 일이 아니라서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낳았지 싶은데 그때만 해도 별 생각이 없었어요. 아이들이 귀엽고 사랑스러우니까 고만고만한 삼 형제 육아가 힘듦보다는 즐거움이 더 컸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저를 두고 하는 말인가 봐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마구마구 솟구쳐서 삼 형제를 데리고 뭔가를 할 때가 제일 재밌고 행복했습니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식사를 해야 했고 졸려도 쪽잠조차 잘 수 없는 데다 화장실도 문을 열어놓고 볼일을 봐야 했던 시기가 남들보다 길었음에도 우울하거나 삶의 질이 떨어진다고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 몸이 고되어 피곤했지만 마음은 행복했으니까요. 잠자는 시간을 빼고 온통 육아의 시간이었던 때에도 틈틈이 놀아주고 살림하고 독서와 자기 계발까지 꾸준히 했었습니다. 이때가 정말 좋았습니다. 에너지가 넘쳐서 피곤한 줄 모르고 매일매일 쌩쌩했었어요. 젊음이 그래서 좋은가 봅니다.

일곱 식구가 같이 생활하다 보니 매일매일 하는데도 빨래와 설거지는 늘 산더미였어요. 세탁기를 하루에 3-4번 돌리는 건 기본이고요. 식사 때마다 뭘 만들어도 항상 한 냄비, 한솥 이렇게 해야 하니까요.

다른 집들에 비해 식구가 많다 뿐이지 사는 건 남들과 똑같았습니다.

그래서 굳이 칭찬받을만한 일을 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아이 셋을 낳고 육아를 도맡아 하면서 고만고만한 아이 셋을 데리고 동네 산책을 다니면 할머니들께서 볼 때마다 칭찬을 해 주셨습니다. 보면 볼수록 장하다고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한 명도 어렵다고 하는데 아들을 어떻게 셋을 낳았느냐고. 매일매일 소고기를 먹느냐, 사골국을 먹느냐 아니면 인삼을 먹느냐고 물어보시는 어르신들도 계셨습니다. 몸도 작고 늘씬한데 어쩜 아이 셋을 크고 건강하게 잘 키웠냐고요. 셋 다 잘생기고 똘똘해 보이는 게 새댁이 참 대단하다고요.


겸손해서가 아니러 정말 딱히 한 게 없습니다. 그냥 남들처럼 똑같이 하루하루를 살아낼 뿐이에요. 그런데 뜻밖의 칭찬을 계속 받았습니다. 숨을 쉬듯이, 밥을 먹듯이요.


날마다 시부모님 봉양하느라 애쓴다.

같이 한집에서 사는 것만으로도 효부다.

OO할아배, 할매는 같이 살아서 매일 뜨신 밥 먹고 좋겠네 그려.

아이들 인사 잘하고, 어른들 잘 따라서 얼매나 이쁜지 몰라.

OO아배는 장가 잘 갔어. 요즘 시골에서 누가 살려고 그러겠어. OO어매니까 사는 거야.

동네 할배, 할마이들한테도 살갑게 잘하고 요즘에 누가 그렇게 해

없어. 진짜 없어!


제가 동네 어르신들께 자주 들으며 지내는 말들입니다.

너무 과분하게 칭찬을 듣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느 날은 이래도 되나? 싶었습니다.




우리 집은 우리 부부와 아이들, 그리고 시부모님까지 일곱 식구가 한집에서 복작거리며 사는 온전한 확대가족입니다. 우리 동네에서 3대가 사는 집은 우리 집이 유일하고요. 현재 29개 마을이 있는 우리면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들지요.

확대 가족(擴大家族)
부부, 자녀 외에 조부모 등이 함께 사는 가족.


이렇게 살려고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살다 보니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3대가 같이 사는 집이 되었습니다. 아버님 친구분들도 아버님을 부러워하고 저를 칭찬해 주십니다. 손주를 보고 싶어도 아기가 안 생겨 결혼을 했어도 손주가 없다. 아들며느리가 딸 하나 놓고 더 이상 안 생겨 못 낳았다. 아니면 안 낳으려고 해서 손주가 없다. 결혼도 안 하려고 해서 속상하고 답답하다. 등등등. 시골에 살아도 저희 집처럼 살아가는 집이 드문 게 지금의 현실입니다. 시아버지 친구분들을 어쩌다 마주하면 말씀하시기를..


네 아부지가 며느리 칭찬을 얼마나 하는지 모른다. 며느리는 모를 거다.


말주변이 없으시고 대면해서 말씀하시는 게 서투셔서 그런지 지금껏 한집에 같이 살면서도 아버님한테 고생한다. 애쓴다. 잘하고 있다. 등 이런 표현을 한 번도 직접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아버님 친구 분들께서 듣기 좋으라고 그냥 둘러대신 얘기 같지도 않았습니다.

10년 넘게 한솥밥 먹으면서 살고 있으니 아버님과 어머님이 어떤 분들이신지 잘 알다마다요.


본래 자식 자랑은 해도 며느리, 사위 자랑은 하기 어려운 법인데 아버님께서는 대놓고 자랑하시지는 않아도 친구들 모임에서는 은근 운을 띄우시는가 봅니다.


부족한 며느리, 내세울 거 없는데도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님!

친정 아빠도 마찬가지지만 시아버지께서도 겉보다는 속으로 많이 예뻐해 주시고 정을 주시는 분이라는 걸 결혼하고 10년이 넘어서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속상하고 서운하기도 했습니다.


정말 특별히 더 잘해드리는 것도 없고 잘난 것도 없는 며느리인데 아버님 성에는 조금이라도 차있나 봅니다.

2024. 5. 26(일)

지난주 모내기 한 날 오전 참을 먹으면서 오후 참으로는 김밥을 드시고 싶다고 하셔서 부랴부랴 장을 봐다가 김밥을 쌌습니다.


김밥 전문점에서 편하게 사다가 드릴 수도 있었는데 저도 모르게 마트로 향하고 있더군요.


이날 오후에 비가 예상보다 일찍 쏟아져서 모내기를 중단하고 참을 드시러 집으로 들어오셨을 땐 이미 모두 비 맞은 생쥐처럼 흠뻑 젖은 상태였습니다. 요즘 기온도 왔다 갔다 해서 싸늘하기도 했고요. 감기몸살 안 걸리면 진짜 다행이지 싶었습니다.


밖에서 이렇게 고생하며 일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김밥 싸는 건 일도 아니지요. 그냥 한 줄씩 사다 드리는 건 너무 성의 없어 보이기도 하고요. 따뜻한 밥으로 금방 싸서 뜨끈뜨끈한 콩나물국과 함께 드렸습니다.

안 그래도 비 맞아 싸늘했는데 따뜻한 콩나물국이 속을 따듯하게 뎁혀주었습니다.

모를 심어주신  아저씨께서도 김밥을 좋아하시는데 직접 싼 김밥이라 하니 표정이 아주 밝아지셨습니다. ㅎ


방앗간 며느리, 업을 바꿔야겠어


하시며 매우 흡족해하셨고 아주 맛있게 잘 드셔주셔서 저도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요. 우리 식구들도 모두 너무너무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여럿이 먹어서 더 맛있게 느껴졌었나 봐요. 제가 쌌는데도 맛있어서 많이 먹었고 또 싸고 또 싸서 먹었습니다.




저도 제가 시골에서 시부모님과 함께 살아가게 될 줄은 전혀 예상 못했습니다.

주위에 친구들도 저처럼 사는 친구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요즘 흐름이잖아요. 친정에서는 2남 2녀 중 셋째인데 오빠, 언니, 남동생도 모두 핵가족이지요. 저만 3대가 어우러져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기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사는게 남들 눈에는 돋보이나봐요. 과거에 흔한 모습이었을때는 당연했던게 지금은 독특한 모습이 되었습니다.


요즘 세상에 시류에 역행하여 3대가 같이 살고, 다들 도시로 나가서 사는데 고령의 어르신들만 계시는 시골에서 인공지능의 편리한 환경을 누리는 대신 다소 불편하게(?) 살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살까요?

남들처럼 시대흐름에 맞게 보편적으로 사는 게 정답일까요? 그러면 행복할까요?


앞으로 26년 후인 2050년에는 1인 가구와 2인 가구는 뚜렷해지고 3인 이상의 다인 가구는 찾아보기 어려울 거라는 통계를 얼마 전 TV에서 보았습니다. 설거지를 하면서 잠깐 본거지만 교과서에서나 등장하는 “확대가족”이라는 단어를 지금 태어나는 아기들은 알까요? 태어나 마주하는 현실이 1인 가구와 2인 가구일 텐데 과연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공감할 수는 있을까요?

지금도 개인주의가 팽팽한데, 여럿이 어우러져 살면서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고 공감하고 나누는 것을 알까요? 사람들과 부딪히며 소통하는 과정에서 배우고 깨닫는 걸 과연 경험할 수 있을까요?

사람보다 반려 동물들에게 더 호감을 주고 애지중지하며 돌보는 Z세대들과 α(알파)세대 그리고 계속해서 이어질 다음 세대들은 하나뿐인 지구에서 잘 살아갈 수 있을까요? 이런 우려가 괜한 것이고 오히려 더 잘 살아갈까요?


지금의 삶을 굳이 고집한 적은 없지만 지금처럼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 편에서만 봐도 그렇습니다. 전교생이 60명도 되지 않는 초등학교에서도 아이들의 꿈은 자라고 있고 학교 가는 걸 아주 즐거워하고 행복해합니다. 닭장 같은 곳에서 갇혀 지내는 것이 아니라 쉬는 시간에도 언제나 충분히 신나게 뛰어놀 수 있고 지역의 자원을 활용해서 학교와 연계해 마을학교 활동도 하고요. 경제적인 부담 없이 축구, 탁구, 배드민턴 등 체육 활동에도 다양하게 참여하고 있는데요. 초등 남자아이들이다 보니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정말 최적화된 곳이라 생각합니다.


옆집 엄마, 옆집 아이가 없어 비교 대상이 아예 없으니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자신감, 자존감은 항상 하늘을 찌릅니다. 공부 좀 못하면 어떻습니까, 못한다는 걸 인지했을 때 시작해도 늦지 않습니다.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엄마들끼리 모여 고급정보인 것처럼 속닥속닥 하는 것도 싫어서 시골에 머물러있는 이유도 있습니다만, 저는 지금의 삶에 대체적으로 만족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목적은 결국 같지 않을까요? 행복하기 위해서, 행복을 찾아서 현재 삶에 충실하는 것.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이것 말고 더 큰 목적이 있을까요?


저는 내로라하는 학벌도 없고 명함을 내놓을만한 경력도 없습니다. 잘 나가는 스펙이 밖에 나가서 남들에게 자랑거리는 될 수 있지만 정작 부모들의 진짜 마음엔 헛헛함만 남기지요. 똑똑한 자식과 똑똑한 며느리를 둬서 1년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하는 부모의 얘기를 들어보면 전혀 부럽지가 않아요. 쓸쓸해 보이고 외로워 보여 안타깝지요. 부모님이 정작 원하는 건 이런 게 아니니까요. 얼굴 자주 보고 맛있는 거 같이 먹고 화목하게 지내는 것, 형제자매 간에 의좋게 지내고 그저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 사는 것 이런 거잖아요.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 순리대로 살뿐이지 그 어떠한 것도 보태지 않았습니다. 그냥 저는 엄마아빠한테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딸, 시부모님한테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남들과 같은 보통의 며느리일 뿐입니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고 3대가 같이 사는 집이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기 어려운 세상이다보니 다르게 보일 뿐입니다. 살아가는 모습을 칭찬해 주시고 예쁘게 봐 주시는 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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