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책은 어떤가?
오늘 세 아이들이 모두 다른 곳으로 소풍을 갔다.
삼형제는 소풍 갈 설렘에 잠을 설쳤고 나는 새벽 3시에 일어나 김밥을 싸야 한다는 긴장에 잠을 설쳤다.
평소에는 학교 급식을 먹지만 소풍 날에는 엄마가 싸주는 김밥을 기대하는 아이들 덕분에 나도 수제 김밥을 먹게 되는 날이다.
요즘 흔한 게 김밥인데 산 것도 맛있지만 이상하게 집에서 싼 김밥이 더 맛있다.
평소보다 훨씬 더 일찍 일어나야 하는 게 부담되어 그렇지 일단 이 한 몸 수고하면 온 식구가 즐겁다.
김밥을 좋아하시는 아버님, 어머님도 새벽에 미소를 지으시면서 떡방앗간으로 출근하셨다. 아이들이 소풍 가는 날에는 늘 김밥과 콩나물국을 갖다 드린다.
셋 다 아직까지는 어려서 가능한지도 모르겠으나, 배달이 되지 않는 곳에 사는 우리 아이들은 엄마가 해주는 요리에 엄지척을 잘해주곤 한다. 이 맛에 오늘도 기꺼이 새벽에 일어났다.
배달이 되지 않아서 배달앱이 무용지물인 곳에 살지만 불편한 생각보다는 배달 음식의 유혹에 빠지지 않아서 다행이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아이들도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나에게 주문하지 배달앱에 주문하지 않는다. ㅎ 배달비용을 쓸 일이 없고 배달 용기로 인한 쓰레기가 나오지 않아서 좋다. 건강을 먼저 생각하는 습관 덕분에 평소 우리집에서는 야식 문화 자체가 없다. 시골이라 답답할 때도 있지만 지금 살고 있는 곳이어서 가능하다 생각하니 불평이 감사로 여겨질 때가 더 많다.
최근에 있었던 "광천 K-김밥페스티벌"에서도 김밥을 맛본 아이들이
김밥은 역시 엄마 김밥이 최고지!
라고 말하는 걸 보면서 아직 바깥 음식에 덜 길들여진 우리 아이들에게 엄마로서 해줄 수 있는 건강한 김밥을 싸줘야지 싶었다. 마침 소풍이라 잘 됐다. 그래서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더 색다른 김밥으로 준비했다.
지난 6월에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회오리 김밥'을 알게 되어 저장해 놓은 게 있었는데...
아래 동영상 좀 보세요!
https://youtube.com/watch?v=jv-vBkfsvGU&si=YhZMCvxGJroew4Dp
무지개처럼 색감도 예쁘고 야채도 많이 들어간 김밥이라서 이거다 싶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아이들 역시 눈으로 먹는 것과 입으로 먹는 것, 둘 다 즐기기를 원한다.
할머니 입맛인 나는 오리지널 김밥이 언제나 더 맛있기는 하지만 오늘은 더 즐겁고, 더 건강하게 먹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해봤다.
계란, 부추, 흙당근, 단무지, 적양배추, 김밥 햄, 맛살, 어묵, 우엉 이렇게 준비를 했다. 재료 중 김밥 햄, 맛살, 어묵은 뜨거운 물에 데쳐서 몸에 해로운 첨가물을 최대한 뺐다. 모든 재료를 채썰기 해야 하고 식구가 많아서 많은 양을 준비하다 보니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걸렸다.
삼형제는 김밥 외에 유부초밥과 치킨너겟도 주문했는데, 김밥 재료 준비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아서 하마터면 치킨너겟은 못 싸줄 뻔했다. 다행히 남편이 구워준 덕분에 미션 완수했다.
유부초밥도 소 불고기를 넣어서 해주다 보니 평소보다 시간이 더 걸렸는데 계획한 대로 다 해서 얼마나 뿌듯하던지...
삼형제의 두툼한 소풍 가방이 활짝 웃고 있었다.
학교 급식이 자연스러운 요즘 아이들에게 소풍날에만 해줄 수 있는 엄마 도시락이 힘들지만 깊은 여운을 준다.
엄마가 싸준 엄마 도시락!
우리 엄마는 어떻게
도시락을 매일 7개씩 싸셨을까?
1년 중 봄에 한 번, 가을에 한 번 딱 두 번 싸는 도시락을 즐거우면서도 힘들다고 하는 나인데...
울엄마는 없는 반찬에 얼마나 하루하루가 고민이 깊으셨을까?
단 하루도 늦잠 한 번을 자본 적이 없던 그 시대의 울 엄마들은 얼마나 아침 단잠이 그리우셨을까?
며느리, 아내, 엄마로 살면서 기 한번 제대로 못 피고 사셨던 우리 엄마들은 얼마나 하루하루가 어려우셨을까?
지금의 우리들은 '뻥'차고 나오면 그만인데 엄마는 안 그러셨다. 못했다.
결혼을 해서 나도 보기 드물게 시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고 두 살 어린 남편도 남편이기에 존중을 하고는 있지만 나는 내가 제일 소중하다.
나의 우선순위가 밀리면 폭발한다. 시댁에 살아도 정정당당하게 내 권리를 갖고 살려고 노력한다. 100%는 아니지만 그래도.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엄마니까 무조건이란 없다. 힘들면 아이들에게 힘들다고 말한다. 집안일도 같이 하자고 요구한다. 강제 명령이 아니라 하도록 설득을 시킨다. 집안 살림으로 인한 용돈은 없다. 한 지붕 아래 사는 식구니까 그렇게 하는 게 맞고, 같이 살고 있으면 자기 밥값은 해야 하는 거라고.
삼형제가 등교하고 나서 나도 서둘러 소풍을 갔다.
아이들이 소풍을 가는 날에는 나도 소풍을 가는 게 맞지 않을까?
김밥은 내가 쌌는데 남 좋은 일만 시킬 수는 없으니까.ㅋㅋ
나도 아이들만큼이나 설렌다.
좋아하는 것을 즐길 수 있는 하루여서. 그것도 평일에.
지난 5월 1일에는 아이들을 소풍 보내고 기차로 조금 멀리 갔다 왔다.
'스타필드 수원' 건물 안에 있는 별마당도서관으로.
도서관이라서 가보고 싶었다.
기대가 너무 컸을까?
우주같은 웅장한 도서관을 상상했는데, 생각만큼 웅장하지 않았다.
여러 블로그에서 본 것만큼 입이 떡 벌어질 정도는 아니었다.
블로그 화면에서 본 게 다였다.
스타필드 안에 있다 보니 쇼핑몰 한쪽에 서있는 그런 것? 큰 건 분명한데 왠지 작아 보였다.
사람 손이 닿지 않는 저 수많은 책들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저렇게 많은 책들 중에서 내가 갖고 있는 책들은 뭐가 있나 숨은 그림 찾기 하듯 놀이만 한 것 같다.
우리가 간 날이 '근로자의 날'이라 그랬는지는 몰라도, 밥을 먹으려고 해도, 차를 마시려고 해도 대기가 없는 곳이 없어서 도저히 먹기가 어려웠다.
가까스로 점심을 먹기는 했는데 가격과 맛을 떠나 허기를 달랬다는 거에 만족해야만 했다. 테이블 쟁탈전을 하듯 매의 눈으로 다 먹어가는 사람들을 빤히 관찰하는 사람들. 그러한 사람들이 눈빛으로 쏘는 레이저를 받으며 불편하게 먹었던 우리. 도떼기시장이 따로 없었다. 우리는 기차로 갔지만 자차로 온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6시간 무료주차'라는 말이 30분 무료와 뭐가 다른가 싶었다.
그런 와중에 이런 광경도 눈에 띄었다.
이날은 갔다 왔다는 것으로 족했다.
복합쇼핑시설 안에 이런 도서관을 마련했을 땐 다 이유가 있을 테니 다음에 또 가게 되면 그땐 다르지 않을까 다시 한번 더 기대를 하며…
오늘은 원래 가던 홍성군청소년수련관 안에 있는 글마루 작은도서관에 갔다 왔다. 역시 가던 곳이 제일 편안했다.
하루 종일 내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글쓰기 한 것으로 작년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참 고마운 도서관이다.
오늘도 다섯 권 정도의 책을 가져가서 읽고 쓰고 기록하면서 나에게 시간을 주었다. 이곳에 있으면 집안 살림, 일, 식구들 다 잊고 책읽기와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어서 너무너무 좋다.
책은 진정 좋은 친구다.
요즘 반려견, 반려묘, 반려 식물 많고 많은데 나는 책과 평생 반려(伴侶) 하고 싶다.
반려책 어떤가? 읽는 것뿐만 아니라 소장하는 것도 좋아하고 그냥 수집하는 것 자체를 좋아하기도 하고, 읽으면 더 좋고... 그냥 함께 해서 좋은 반려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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