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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터 스테이션 Jun 07. 2023

[창세기] 주일학교에서 배운 창세기 창조순서는 틀렸다?

성경의 "창세기"에서 주는 인사이트

우리가 배운 창세기의 창조순서는 틀렸다?


 어릴 때, 주일학교를 다니며, 또는 여름 성경 학교를 통해, 기독교에서 말하는 창조론에 대해 배운 적이 있을 것이다. 세상이 창조되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에 대한 내용을 성경에서는 ’ 창세기‘라는 장으로 가장 먼저 소개를 하고 있다.  어떻게 이 세상이 만들어졌는지, 하나님이 어떻게 세상의 규칙과 룰을 정했는지를 알려주는 장이다. 여기에는 물질의 창조순서를 1장 1절부터 하나씩 나열하고 있다. 창세기 1장을 잘 보면, 시간 순서대로 1일부터 7일까지 신이라는 존재가 세상 만물을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볼 수 있다. 1장 1절부터 보면 2장 3절까지 보면, 창조순서가 다음과 같음을 알 수 있다.


1일 차 : 빛을 창조 | 빛과 어둠을 분리 → 아침/밤을 구분

2일 차 : 물과 궁창을 창조 | 궁창 → 하늘과 땅을 구분

3일 차 : 열매, 채소, 나무 창조 | 물과 땅을 구분 → 땅과 바다 구분

4일 차 : 광명체 (해/달/별) 창조 | 계절과 절기 구분

5일 차 : 새와 물고기의 창조

6일 차 : 땅의 생물과 사람의 창조

7일 차 : 모든 일을 마침 | 휴식 (안식)


 7일에는 모든 것을 창조하고 안식했다고 되어 있기에, 기독교에서는 7번째 날인 주일에 휴식을 취하고, 나머지를 일하는 식의 시간의 패턴을 정해 놓았다. 성경에 대한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이라면, 위와 같은 창조 순서를 잘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2장부터 시작된다. 2장 4절부터 구절을 읽어보면 아래와 같은 말이 적혀있다.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신이 땅과 하늘을 만들던 날에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앞에서 실컷 창조가 된 이력을 말하고 나서, 2장 4절부터 다시 태초에 창조가 된 때를 다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2장 24절까지 읽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2장 7절 → 흙으로 사람을 창조(아담)

2장 8,9절 → 에덴동산 창설/ 선악과

2장 10절 → 에덴동산에서 시작하는 강을 창조

2장 19절 → 흙으로 각종 동물들을 창조

2장 20절 → 하와를 창조


 이질감이 느껴지는가? 앞서 1장에서 말한 창조순서와는 다르게,  먼저 아무것도 없는 땅에 안개만 가득 있다가, 흙으로 사람을 창조하고, 그다음 에덴동산을 만들었다. 그리고 동산 안에 식물을 만들고, (우리가 잘 아는 선악과도 여기에 등장한다) 바다의 기원인 4개의 강을 창조한다. 그리고 이후에, 동물을 동산에 두었는데, 이는 1장에서 말한 3일 차에 식물, 6일 차에 동물, 사람을 만들었다는 순서와는 맞지 않는다. (심지어 고대 성경에는 구절과 장에 대한 구분이 없었기에, 1장과 2장을 구분하지 않고 쭉 읽는다면, 충분히 혼동할 수 있는 내용이다.)


 50구절 되는 문장 안에, 서로 다른 창조순서를 가진 창조의 내력을 넣는 것이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로 하여금, 신을 믿게 하는 데에 도움이 될까? 만약 성경이 1장이 찢어져 발견되지 않고, 2장 4절부터 쓰였다고 하면,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창조순서를 바꾸어 말했을까? 왜 이런 구조로 성경은 창조의 내력을 설명하고 있을까? 고고학자들에 의하면, 성경의 창세기의 경우 여러 중동 지방의 신화들을 모아 묶어 ’ 모세‘라는 사람에 의해 정리되었다고 한다. 그럼 ’ 모세‘라는 사람이 이를 집필할 때, 어떤 부분을 염두하였기에, 하나님을 설명하는 가장 첫 번째 “창세기”라는 장에서 이런 창조 이력에 대해 기술하였을까?   




관계성에 대한 창조


 창세기의 1장은 여지없는 ‘물질’에 대한 창조가 맞다. 그럼 왜 2장에서는 창조에 대한 순서를 다시 말하며 창세기를 기술하였을까? 잘 보면, 기술하는 방식도 조금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1장이 시간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는 것에 반해, 2장은 여러 부가적인 요소들을 설명하며 기술이 되어있다. 사실 이렇게 기술한 것에는 창세기의 2장을 구조적으로 뜯어보면 알 수 있다. 2장의 창조순서는 '물질'어떻게 되었는가가 아닌, 어떤 '관계'를 가지고 세상이 창조되었는가에 대한, '관계성'에 대한 창조를 나타내고 있다. 이를 3파트로 분해해서 해석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1.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 

 2장에 7절을 보면, 사람을 창조한 부분이 나온다.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만들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여기서는 하나님이 숨을 불어넣어 사람을 창조하였다고 기술되어있는데, 사람이 생령(살아 있는 영적인 존재)이 되었다고 표현한다. 이는 가장 먼저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가 성립됨을 뜻한다. 생령이라는 표현이 굉장히 많은 뜻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사람에 영혼이 들어가 ‘자의식’이 시작됐음을 의미하며, 또 사람의 ‘믿음‘이라는 속성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신이 없다고 믿는 것도, 하나의 믿음이다. / 기독교가 아닌 사람은 이를 믿음의 속성과 사람의 관계로 해석하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2장 9절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하나님이 그 땅에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 좋은 나무가 나게 하니, 동산 가운데이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여기서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를 인격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장치가 나온다. 바로 '선악과'라는 장치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로봇처럼 통제하고 컨트롤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로써, 동등하게 대하겠다는 의미이다. 이는 하나의 계약으로도 볼 수 있다.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가 창조되면서, 하나님은 이 관계를 '선악과'라는 규칙으로 유지하려고 한 것이다.



2) 자연과 사람과의 관계

 2장 10절부터는 바다의 근원이 되는 4개의 강의 이름과 2장 15절, 19,20절에는 동식물을 최초의 사람, 아담이 이름을 붙이는 것을 볼 수 있다. 누군가의 이름을 붙이는 것은 다른 객체와 구분하여 인식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이는 자연과 사람의 관계가 성립됨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자연을 창조하여, 사람에게 만물을 다스리는 권한을 주었는데, 2장에서 이를 이름을 붙이는 것으로 표현하였다.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만들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그리고 여기서도 이 자연과 사람의 관계를 '선악과'라는 장치를 이용해, 사람과 자연에 대한 규칙(사람이 자연을 다스리는)을 이어갈 수 있게 하였다. 2장 17절에는 아래와 같은 구절이 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이 구절은 지켜야 할 규칙에 대해, 계약을 어겼을 시 일어나는 일에 대한 경고를 뜻한다. 선악과만 먹지 않는다면, 앞서 세워진 여러 관계들이 잘 유지될 것이라는 뜻이다.



3) 사람과 사람의 관계

마지막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창조이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2장 21절부터 나오는 인류 최초의 마취수술(?)은 혼자 있는 아담에게 다른 돕는 사람을 창조하여, 삶을 같이 살아갈 수 있게 하와를 만든 사건이다. 여기 21절부터 24절까지 내용은 남성과 여성(다스리고 돕는 관계)의 관계뿐 아니라, 가정 공동체에 대한 관계도 말하고 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부모와의 독립과, 남성-여성의 하나 됨에서, 가정, 인류의 가장 작은 단위의 공동체를 정의한 것이다. 그리고 이를 역시 “선악과”라는 규칙으로 관계의 약속을 하였는데, 이는 바로 뒤, 3장의 내용에서 이 계약이 뱀에 의해 파괴가 되면서 성경 창세기가 모든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다.


 성경의 서사의 가장 중요한 핵심을 물질의 창조를 먼저 설명한 뒤, 관계에 대한 창조를 설명하며 시작하고 있다. (물질이 없다면 관계성도 성립될 수 없다. 물질은 우리가 무언가를 인식하는 가장 중요한 기본적인 개념이다) 그리고 이 관계가 뱀으로 인해 깨졌으며, 이를 통해 신은 우리와의 관계가 깨진 상태를 두고 죄(원죄)라고 표현하고 있다. “죄”는 히브리원어를 뜯어보면, “과녁에 벗어난 상태”를 뜻한다. 즉 신과의 관계가 끊어져 (선악과로 설정한 계약이 파기되어) 하나님이 만든 질서와 방향을 벗어난 상태를 '죄'라고 부르는 것이다. 성경은 신과의 관계가 깨진 죄의 상태로 인해 사람들이 우리가 말하는 범죄, (시기, 질투, 사기, 살인 등…)가 발생하도록 내버려 두었다고 말하고 있다.  (원인과 결과를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다. 기독교 성경에서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죄인이 아닌, 죄가 있기 때문에 죄에 관련된 행위들을 할 뿐이라고 설명한다.)


…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로마서 1장 28절)


 그리고 이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하나님이 보낸 사람이 신약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라고 성경은 설명한다. 예수의 재 계약서(선악과로 깨진 관계에 대한 회복)을 예수의 피로 이미 다시 썼기 때문에, 사람이 이를 믿으면, 그 관계가 회복될 수 있다는 내용이 성경 신약을 관통하는 내용이다. 그래서 구약에서 신이 세운 규칙과 그 계약을 깬 사람의 상태, 그 상태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역사들을 ”유대인“들을 통해 설명하고 있으며, 신약에서는 이 계약을 다시 쓰러 온 예수와, 십자가에서 계약의 회복, 계약의 전파를 위해 크리스천이 해야 될 바를 설명하고 있다. 성경의 이런 관계성에 대한 맥락을 알고 읽으면, 여러 가지 사건들과 계명들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주기도문이다. 이는 그냥 예배 때 외워서 기도하라는 것이 아닌, 사람과 신의 관계, 사람과 자연의 관계,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해 기도하라는 예수의 지침이다.)


 이번 창세기의 내용을 통해 이런 관계성에 대해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아래 스스로에 대한 질문으로 이번 발제를 마친다. 내가 성경을 믿는 사람으로서, 신과 나, 자연과 나, 사람과 나의 관계에 대해 얼마나 회복하려 노력하고 있는가? 나의 가치들이 여러 관계회복에 어떤 도움이 될까? 내가 누군가에게 던지는 말과 행동이 관계의 회복을 위한 행동인가? 관계를 파괴하는 행동인가? 나는 건강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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