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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쿠쌤 Apr 01. 2024

밤마다 큐브 퍼즐을 맞추는 엄마

x손 엄마가 금손 아들을 키울 때

아, 이게 아니던가.

가족들이 모두 잠든 늦은 밤, 동영상을 되감아보며 큐브를 다시 잡아본다. 큐브 퍼즐 맞추기. 요즘 생긴 나의 새로운 취미라고나 할까? 



큐브, 바둑, 그리고 로봇


올해 초등학생이 된 아들은 얼마 전부터 학교 '방과 후 수업'을 시작했다. 비교적 남자아이의 색이 잘 드러나는 바둑, 로봇교실, 그리고 컴퓨터까지, 딸아이는 별로 관심이 없어했던 수업들이 대부분이다. 새삼 남녀의 차이에 대해 깨닫게 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관건은, 아들이 선택한 수업 대부분이 순도 100% 문과생 엄마의 눈에는 낯설게만 보인다는 것이다. 지금껏 제대로 접해보지 못했던, 아니 관심조차 없던 큐브, 바둑 그리고 로봇이라니! 매주 아이의 방과 후 수업 교재와 책을 챙겨주며 흘깃 살펴보는 수업 내용은 무척 기초적이기는 하나, 솔직히 말해 생경하다. 바꿔 말해, 자의적으로는 평생, 절대 배우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과목이라고 하면 지나친 확대일까.


어릴 적, 내 아버지는 바둑을 참 좋아하셨다. 집에 계실 때면 바둑 TV를 BGM삼아 틀어놓으셨고 틈만 나면 남자친척 어른들과 대국을 하셨던 기억이다. 딸만 둘인 우리 집은 둘 다 취미가 없기도 했고 아버지도 딱히 가르쳐주시지 않았기에 고급 나무로 된 맞춤형 바둑판과 바둑알은 그저 색다른 장난감처럼 치부되었다.


큐브는 또 어떤가. 알록달록 예쁜 색의 큐브를 보면 눈길이 가긴 했고 큐브 대회에 나가는 친구들이 대단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정작 내가 해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작년 <세계 스피드 큐브 대회>에서 루빅스 큐브 세계 신기록을 세운 한국계 미국인의 소식이 뉴스에 나왔을 때도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칠 정도였으니까. 


마지막으로 로봇이라... 나와는 가장 거리가 먼 영역이라고 표현한다면 적절하려나. 천성적으로 손으로 조립하고 맞추는 것을 좋아하는 아들은, 다행히(?) 남편을 닮아서 어릴 때부터 레고를 참 좋아했다. 나 어릴 적, 그러니까 라떼는 그저 비싼 블록이어서 아주 늦게 겨우 접했던 레고. 남편도 비슷한 기억이 있는지 아이들 레고를 고를 때면 본인이 더 신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더니 작년부터는 모터가 작동하여 움직이는 로봇을 조립하는 것에 굉장한 흥미를 보이는 중이다. 


블록이건 로봇이건 지금도 문과생 엄마가 이해하지 못한 부분 하나가 있다.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을 금세 부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아들의 모습이다. 나 같으면 그렇게 만드는 노력이 아까워서라도 얼마간 전시라도 해두고 천천히 작품을 음미할 듯한데 아들을 달랐다. 아들과 쏙 닮은 남편은 그 심정을 십분 이해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핵심부품으로 새로운 작품을 창조하고 만드는 즐거움이 훨씬 크다고. 음... 그런가 보다. 


 


X손 엄마가 금손 아들을 키울 때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언어를 배우는 일. 어린 시절부터 내가 가장 즐겨하고 잘하던 일 중 하나다. 시간이 날 때면 여전히 지금도 가장 많이 하는 활동이다. 반대로 소위 손으로 하는 대부분의 일, 즉 손재주 하나는 여간 신통치가 않다. 바느질, 종이접기, 공예 등이 포함된 미술이나 실과 시간은 학창 시절 가장 싫어하는 시간이었다. 잘 못하니 재미도 없었고 타고난 실력이 없으면 더 많은 노력을 했어야 하나 그러질 못했다. 손으로 하는 일은 그저 요리하고 메이크업을 괜찮게 하고 사는 것에 감사하는 중이다. 동시에 디지털 디바이스나 스마트 폰에 무한한 감사를 표하면서 말이다.


이런 내가 금손 아들을 키운다. 시댁 식구들은 손재주가 다들 좋아서 어머니는 직접 옷을 만드시기도 하고, 시누이는 조카들 인형도 직접 만들어 선물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남편의 손재주도 만만치 않아서 자타공인 나의 친정식구들 사이에서 최고의 맥가이버(?)로 인정받고 있다. 


손재주의 극심한 격차가 있는 두 사람이 가정을 이루어 종자개량(?)을 할 수 있으니 진심으로 다행인 일이다. 아직 초등학교 저학년인 아이들이지만 엄마보다 손으로 하는 일에 흥미도 많고 집중력도 높다. 자연스레 나와는 관심사가 확연히 다르다. 딸아이도 딸아이지만 성별의 차이까지 더해진 아들의 경우 나와는 취향도 관심도 잘하는 것도 놀라울 정도로 아주 다르다. 



아들 덕분에 인간과 삶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다


좀 거창한 표현인 것 같지만, 금손 아들 덕분에 인간과 삶에 대한 나의 이해가 한층 깊어지고 지경이 넓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나와 성향이 많이 다른, 손재주 많은 아이를 키우는 일이 그리 특별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아들 때문에 새로운 영역이나 대상에 관심을 갖게 되는 일은 참 설레는 일임에 틀림없다.


아들이 아니었다면 앞으로도 별 관심 없이 살 큐브와 바둑이 정확이 올해 3월 둘째 주 방과 후 수업시작일부터 내 삶 속에 침투하기 시작했다. 3X3X3 큐브, 일명 루빅큐브에 대해 알아보고 유튜브에 올라온 수많은 큐브 공식 동영상을 조회해서 가장 나와 잘 맞는 영상 하나를 무한 반복하곤 한다. 데이지 맞추기는 무난히 성공, 1층 색 맞추기까진 여차저차 해냈다. 공식도 천차만별이긴 하나 손으로 이리저리 돌리며 감을 익히는 것이 좋은 방법임을 깨닫는다. 부족한 공간감각과 위치감각을 뒤늦게 채우느라 매번 쉽지 않다. 


아들이 학교에서 바둑을 배워온 날에는 블록으로 바둑판을 임시로 만들어놓고 아들의 특별과외까지 받는 엄마다. 바둑세트도 온라인 쇼핑 장바구니에 넣어놨다. 아들과 제대로 한판 붙을 날을 기대하면서.


여기서 조금 더 바라는 게 있다면, 아들이 가끔은 큐브를 맞추다 막혔을 때 아빠대신 엄마를 부르며 도와달라고 달려오는 순간도 있기를, 기분 좋은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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