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번이나 이직을 한 게 물론 자랑은 아니지만, 누군가는 '네가 얼마나 의지가 나약했으면 4번이나 이직을 해?'하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언젠가는 꼭 쓰고 싶었던 장장 10년간의 이직 기록을 적어본다.
그리 어린 나이는 아니지만 휴학 없이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 졸업식날 면접을 본 기업에서 이틀 후 합격 전화를 받았다. 누구나 이름을 말하면 알 만한 기업이었던 데다, 동기들 중 가장 처음으로 직장인이 된 나에게 친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축하를 해주었고, 우리 집은 그야말로 파티 분위기였다.
'요즘같이 취직이 어려운 때에 한 번에 취직이 된 우리 딸 축하한다!'
그리고 바로 일주일 후 나는 내 인생의 첫 출근을 하게 되었고, 당시 20대 초반이던 나의 첫 임무는 다름 아닌 커피 타기였다.
처음에는 신입이고 막내라 그런가 보다 하여 큰 불만은 없었다. 그런데 점점 연차가 쌓이고 시간이 지나도 커피 타는 건 나의 업무였고, 언젠가 사무실로 손님이 찾아와 내 옆에 있던 남자 직원이 커피를 타려 하자, 그 손님이 이런 망언을 내뱉었다.
'에이, 앉아. 똑같은 커피도 여자가 타야 맛있지.'
순간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리고 사무실을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사무실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하하 하고 웃거나 심지어는 '그렇지.'하고 동조했다.
또, 회식 자리에서도 아빠나 삼촌 뻘이 되는 분들이 취기가 점점 오르고 나면 나뿐만 아니라 집에 그만 가야 한다는 다른 여직원들에게 굳이 노래방에 가자고 손을 끌거나, 풀린 눈으로 예뻐 보인다는 말을 내뱉기도 했다. 심지어 회식이 끝나고 집에 도착했는데 다시 나오라는 전화를 한 적도 있었다.
불과 10년이 조금 넘은 일이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지금보다는 이런 일들이 조금 더 만연했고 사회적인 분위기가 잡히지 않은 때였던 것 같다.
그곳은 복장이 자유롭던 회사였지만, 언젠가 무릎 살짝 위까지 오는 치마를 입고 출근했을 때 대놓고 한 직원이 다 같이 모인 곳에서 '누구 보여주려고 입고 오는 거냐.'라고 묻고 시시덕거리기도 했다. 그밖에 더 심한 일들도 있었지만 할말하않. 나는 이러한 대우를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참기 힘들어져 결국 첫 직장을 나오게 되었다.
두 번째 직장은 집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었던 기업이었는데, 내가 다녔던 네 곳 중 가장 연봉이 높았다. 처음 해보는 업무였지만, 일부를 제외하곤 직원들도 모두 괜찮았고, 나름 복지도 좋아 만족하며 다녔다. 그런데 몇 년 지나지 않아 회사가 2시간 넘는 거리의 대표님 자택 근처로 옮겨지게 되었다. 출근 시간도 다른 곳에 비해 빨랐거니와 왕복 4시간 넘는 거리를 다니기 힘들겠다는 판단이 들어 고민 끝에 두 번째 회사도 그만두게 되었다.
사실 어떻게든 다니려면 다닐 수야 있었지만, 두 번째 회사를 다니며 몸이 조금 좋지 않았다. 대학 때부터 한 번의 휴학도 없이 졸업 후에도 쭉 쉬지 않고 일만 해온 탓인지 몸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한 달 정도 쉬면서 작지 않은 수술을 했고, 심적으로도 우울감이 들었다.
조금 쉬는 게 좋겠다는 가족들의 조언에 가까운 요가원을 다니며 휴식기를 가졌다. 그런데 처음엔 취미로 다니던 것이 의외로 적성에도 잘 맞고 너무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어 전문가 자격증을 1년 만에 취득하고 강사 생활을 시작했다. 사람들과 함께 수련하는 것이 즐거웠고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있는 것보다 훨씬 자유로움을 느꼈다. 게다가 심신 수양이 된다고 생각하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 마음은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혀 그리 오래 가진 못했다. 보통 요가강사는 원장이나 실장이 아닌 이상 시급제로 임금을 받게 되는데, 당시 다른 곳은 시급이 2만 5천 원~3만 원 사이라면 내가 다니던 곳은 1만 원 조금 넘는 금액을 주었다. 게다가 수업 1시간 전에 도착해 수업 준비를 해야 했고, 수업 후에도 청소를 하고 가야 했으므로 결과적으로 약 3시간 정도를 소요하면서 1시간의 시급밖에 받지 못하는 나날을 보냈다. 누군가 이러한 문제로 이야기를 하면, 원장 부부는 강사들에게 감사 노트를 쓰게 했다. 노트에 '감사합니다.'라고 빼곡히 적으며 감사할 것들을 다시 한번 되뇌어 보라는 거다.
그런데 감사도 내 기본적인 생활이 되어야 할 것 아닌가.본인들은 센터를 하루가 다르게 하나씩 늘려가는데, 아침부터 밤까지 종일 센터에서 시간을 보내는 강사들은한 달 월급이 백만 원이 될까 말까 했다. 다른 강사들도 같은 마음이었는지 노동청에 신고하고 나간 분도 계셨지만, 누가 신고했는지 알기 위해 원장은 강사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돌리며 누가 신고를 했는지 캐물었다. 난 그렇게 몇 달을 혼자 끙끙 앓다, 아무리 요가가 좋아도 도저히 이건 아니다 싶어 경제적인 문제로 그만두겠노라 이야기했다. 원장은 알겠다고 했으나 들려오는 말에 의하면 요가를 하는 사람이 돈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나를 질타했다고 하였다.
그곳을 그만둔 후 다른 요가원에 갈 수도 있었지만, 요가 자체에 크게 질려버린 나는 몇 년 간 요가를 끊게 되었다.
마지막 회사는 내가 가장 길게 다녔고, 또 내 전공을 살린 곳이었다. 글 쓰고 책 읽는 것이 취미이자 가장 행복한 나는 책을 편집하는 일이 무척 즐거웠다. 첫 달 월급은 적긴 했지만, 몇 달 지나지 않아 정직원이 되었고 동기들 중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아 제일 먼저 승진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새로운 상사가 오게 되면서 완전히 상황이 뒤바뀌게 되었다. 자신의 모든 일을 떠맡기되 이익은 본인이 챙겼으며, 야근을 잘하는 사람이 일을 잘한다고 생각하는 전형적인 (심지어 젊은) 꼰대였다.
내 옆자리던 그는 아침에 출근하면 쇼핑몰을 두어 시간 정도 서핑하고, 어느 날은 이어폰을 끼고 휴대폰으로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보았다. 그러면서도 자신에게 내려오는 업무는 틈틈이 나에게 토스.
그리고 점심시간 후에는 카페에서 다른 직원과 한두 시간 노닥거리다 슬며시 들어와 내가 일을 모두 끝내고 퇴근 시간이 되어 가방을 싸려고 하면 늘 '회의합시다.'하고 회의실로 먼저 쌩 들어가 버렸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묵묵히 점심도 굶어가며 일만 해도 돌아오는 건 야근, 야근, 야근이었다. 내가 하는 업무를 모두 인정받으면 조금 덜 억울했을 텐데 매일 탱자탱자 노는 그가 내 몫까지 다 빼앗아가고 승진하고 인정받는 모습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났고 억울했다. 참다못해 그만 둘 각오를 하고 그 윗선에 이야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그들은 친한 선후배 사이로, 전 직장에서도 함께 일하던 사이였다.
그렇게 바짝 3년을 버텼다.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 8시부터 밤 10시 넘도록 야근을 했고, 주말에도 연락이 오면 집에서도 근무했다. 워라밸은커녕 몸이 점점 망가지는 느낌이 들었고, 6개월 동안 생리까지 하지 않아 건강 상의 문제로 그만두었다.
그럼에도 '네가 끝까지 버텼어야지! 더 힘들게 일하는 사람들도 있어.'라고 질타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물론 나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더 힘들게 밤낮으로 일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실 것이다. 하지만 모두 각자의 인생이 있고, 인생에 있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관이 모두 다른데 그걸 가지고 어느 누가 타박하고 질타할 수 있을까.
나도 이직할 때마다 면접에서 '전 직장은 왜 그만두셨어요?'라는 질문을 받아보았지만 이유를 말하면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 수긍해주었다.
성희롱, 건강상의 이유, 노동 착취.
누군가 나에게 '회사를 왜 그리 많이 그만둬.'하고 혀를 끌끌 찬다면, 저 이유들을 참고 꾸역꾸역 다니는 것이 정녕 성실한 것인지 묻고 싶다.
설령 저 이외의 이유일지라도 누군가에겐 저마다의 이유로 이직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이직이 자랑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꼭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직 자체만을 두고'쯧쯧, 요즘 애들은 나약해서 탈이야. 의지가 약해.' 하며그 사람 자체가 의지박약이라고 생각하는 건 쌍팔년도 꼰대 마인드에 불과하다고생각한다.
나는 4번이라는 적지 않은 이직을 했지만 비로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은 지금이 너무나 행복하다. 하지만 그동안의 시간들이 헛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20대 초반이었던 내가 대학 졸업 후 바로 아이를 키우며 집에서 시간을 쪼개어 글을 쓰는 시간이 행복하다고 느꼈을까?
그동안의 나의 인생이 켜켜이 쌓여 진정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내가 뭘 할 때 가장 행복하고 마음이 편안한지,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은 무엇인지 깨달은 후에야 비로소 나는행복을 얻게 되었다.
아이가 조금 더 자란 후, 다시 전공을 살려 복직할 예정인 나에게 그동안의 4번의 이직과 지금 이 시간은 모두 소중한 경험이고 지우고 싶지 않은 내 인생의 단편이다.
단순히 '다니기 싫어.'의 이유가 아닌, 자신에게는 진지하고 심각한 이유로 이직을 고민하고 있는 모든 분들이 부디 스스로 나약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직을 했다고 해서 단순히 선입견부터 갖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 고민하는 이 시간마저 여러분이 훗날 진정 행복한 일을 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될 수 있기를 진정으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