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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미경 Sep 08. 2020

술과 장미의 나날들

62년생 박미경 이야기

어느 날 학교 앞에 개인 화실이 하나 생겼다. 교내의 미술 서클과 맞지 않았던 나는 사막의 오아시스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화실은 카페와 나란히 운영되고 있었는데, 화실과 카페의 주인장들은 연인관계였다.


화실을 운영하는 원장님은 긴 파마머리에 눈 화장을 짙게 하고 줄담배를 피는, 히피 같은 분위기의 여자 선생님이었는데 쎄 보이는 외모와 달리 매우 마음이 여리고 따뜻한 분이었다. 그 옆에서 혼자 작은 카페를 운영하는 사장님은 시를 쓰는 분이었는데 마르고 왜소한 체구에 유머감각이 남다른 분이었다.


두 분은 연인이면서 동료 같기도, 가족 같기도 한, 따뜻하고 안정된 관계로 보였다. 나는 그 두 분의 예술적이고 여유로운 분위기에 사로잡혔으며, 카페와 화실이 붙어있는 것도 무척 마음에 들었다. 나는 당장 화실을 등록하고 학교에 등교하는 대신 매일 화실로 출근을 하기 시작했다. 화실 비를 내기 위해서 학교 앞 다른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도 했다.


그러나 그림을 열심히 그려보겠다는 결심과는 달리 그림에는 큰 진전이 없었고, 나는 생각대로 되지 않는 그림에 대한 열정이 점점 식어감을 느꼈다.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시간보다 카페에서 음악을 듣고 수다를 떨며 보내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화실 선생님과 지인들은 자주 카페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며 술을 마셨는데, 그게 너무 멋있어 보여 나도 술을 마시며 담배를 피기 시작했다. 딱히 인생에 즐거운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고 학교도, 그림도 재미가 없어진 나는 술과 담배와 음악에 빠지기 시작했다.



술과 담배와 음악, 거기에 연애는 반드시 따라오는 것. 나는 그 시절 연애를 무척 많이 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대학생활에서 내가 찾은 대안은 술을 마시고 취하고 연애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면 현실을 잊을 수 있었다. 지루하거나 혹은 무서운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었다.


내가 일하는 카페에 자주 오는 손님, 재수 시절의 지인, 같은 과 선배, 화실에 놀러 오는 화실 선생님 후배 등등, 나보다 어린 사람, 동갑, 한참 나이가 많은 사람 등등과 짧은 연애를 계속 이어갔다. 20대라는 나이가 그렇듯이 물불 가리지 않는 연애였다. 그저 감정에 이끌리는 대로, 분위기에 이끌려서 그렇게 닥치는 대로 연애를 했다.


데이트는 사실 같이 술을 마시고 취해서 떠드는 것 이외에는 별게 없었다. 등교해서 아침부터 학교 앞에서 술을 마시고 학교에 들어가 잔디밭이나 벤치, 음악감상실에서 낮잠을 자고 다시 저녁부터 술을 마시는 그런 패턴이었다. 밤늦게 술을 마시다 보면 집에 가는 차가 끊기기도 했다. 그러면 화실이나 술집이나 혹은 급우의 자취방 같은 데서 잠을 청하곤 했다.


때로는 살벌한 학교주변을 피해 야외로 나가기도 했다. 백마, 대성리, 양수리, 강촌, 청평 같은 곳에 기차를 타고 가서 막걸리를 퍼마시고 주변 사람들과 어울려 만취되기 일쑤였다. 당시 백마라고 불리는 곳(지금의 3호선 백마역)은 대학생들의 인기 데이트 장소였는데, 노래를 잘하거나 기타를 잘 치는 등 특기가 많은 주인들이 운영하는 독특한 민속주점이 몇 개 있었다.


그곳에서 술을 마시다 보면 어느새 다 같이 어울려 소리를 높여 노래를 부르고 웃고 울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곳은 서울로 돌아가는 차가 일찍 끊긴다는 점이 큰 장점이었다. 그래서 정신없이 술을 마시다 보면 본의 아닌 것처럼 주변의 여인숙에서 하룻밤 자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 어디보다 대성리를 좋아했는데, 청량리역에서 기차를 타고 가서 조금 걸어가면 북한강이 나왔다. 거기서 아주 작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너면 아는 사람만 아는 허름한 술집이 하나 있었다. 거기서 연애도 했었지만 가끔은 용감하게 혼자 가서 술을 먹기도 했다. 재미있는 것은 돌아올 때에는 강 건너에 있는 뱃사공 아저씨를 큰 소리로 불러서 배를 타야 한다는 것이었다. 깜깜한 밤에 술에 취해 혼자 배를 타고 강을 건너던 그 날의 바람과 냄새와 물결 소리는 몇십 년이 지나도 내 온몸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이렇게 방탕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역시 술이 덜 깬 몽롱한 기분으로 화실로 들어섰다. 화실에는 누가 사다 놓았는지 수선화 한 다발이 꽃병에 꽂혀있었다. 화실 선생님이 오늘은 수선화를 그려보자고 했다. 이젤에 올려놓은 나의 스케치북을 넘겨보았다. 죄다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림들이었다. 그래, 오늘은 정신을 차리고 저 수선화를 진짜 예쁘게 그려보자.



I do not have a mansion.

I haven’t any land.

Not even a paper dollar to crinkle in my hand.

But I can show you mornings on a thousand hills.

And kiss you and give you seven daffodils.


I do not have a fortune to buy you pretty things.

But I can weave you moonbeams for necklaces and rings.

And I can show you mornings on a thousand hills.

And kiss you and give you seven daffodils.


Seven golden daffodils are shining in the sun

To light our way to evening when our day is done.

And I will give you music and a crust of bread.

A pillow of piny boughs to rest your head.


전 집도 없고 땅도 없어요

당장 제 손에 움켜쥘 지폐 한 장도 없고요

하지만 전 당신에게 저 굽이치는 산 위로 떠오르는 아침을 보여줄 수 있고

사랑의 키스와 일곱 송이 수선화를 드릴 수 있습니다


전 당신에게 예쁜 물건들을 사줄 만한 재산도 없습니다

하지만 전 당신에게 저 달빛을 엮어서 목걸이와 반지를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 굽이치는 산 위로 떠오르는 아침을 보 여줄 수 있고

사랑의 키스와 일곱 송이 수선화를 드릴 수 있습니다


오, 황금빛 일곱 송이 수선화는 햇빛 속에 찬란히 피었다가

우리의 나날들이 다하면 시들어가겠죠

그러면 전 당신에게 아름다운 음악과 한 조각 빵을 드리고

소나무 가지로 베개를 만들어 당신의 머리를 편히 쉬게 해 드리겠습니다


영어 가사를 다 외워 부를 정도로 좋아했던 "일곱 송이 수선화"라는 노래는 가사도 멜로디도 부르는 가수의 음색도 너무나 아름다웠다. 낭만적이며 평화로웠다. 오늘은 이 노래를 들으며 몸과 마음을 정화시키면서 그림에 한번 집중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수선화의 스케치를 다하고 노란색으로 꽃잎을 몇 개 색칠했을 즈음, 화실 밖에서 구호 소리가 들려왔다.


"독재타도" "양키고홈"

나는 화실에 난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교문 앞에는 시위대가 구호를 외치며 교문밖으로 진출해 있었다. 그들은 창문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나를 발견하자, 내려와서 합류하라는 손짓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나는 당황해서 창문을 닫아버렸다. 조금 있으니 곧 최루탄이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고, 긴박하게 달리는 소리, 경찰의 방패와 건물 벽에 짱돌이 부딪히는 소리, 잡으라는 경찰들의 고함소리 등등이 들려왔다.


그날의 수선화는 역시 망치고 말았다. 별 수 있나, 그림을 망친 김에 술이나 마셔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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