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경 학생은 교무실로 오세요" 떠들썩한 복도를 지나 교무실로 향하는 마음은 복잡했다. 어린 나이에 마음이 복잡하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지만, 화가 나는 것도, 부끄러운 것도 아닌 그 느낌을 달리 묘사할 수가 없었다.
"대체 육성회비도 못 낼 거면서 왜 이런 비싼 학교를 보낸 거야"라고 부모를 원망하기엔 내 부모가 자식 성공에 목숨 거는 종류의 사람들은 아니었고, 사실은 가난이 그다지 부끄럽지 않았다. 그러니까 나는 "집에 돈이 없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것에 어떤 감정을 품어야 하는지 잘 몰랐다.
"집에 가서 부모님께 말씀드릴게요" 한두 번이 아닌데 직접 부모에게 연락하지 않고 매번 나를 불러내는 것은 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런 비싼 학교, 학부모들에게 인기가 좋은 사립학교에서 말이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는 1960년대에 무척 선진적인 교육을 하는 사립 국민학교였고 부잣집 아이들, 사회 권력층 자녀들이 많이 다녔다. 그런데 우리 집은 그 두 개에 전부 해당되지 않았다. 아니, 해당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순 있겠다. 왜냐하면 우리 아버지는 대학교수였으니까.
요즘 시대의 대학교수는 경제적, 사회적으로 안정된 직업이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대학교수가 현재와 같은 급여를 받기 시작한 건 1980년대 말부터이다. 내가 어릴 때에는 대학교수의 월급은 중고교 교사의 월급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교수는 돈보다는 일종의 명예직, 전문가,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직업이었다고나 할까.
영문학을 전공한 나의 아버지는 나름 알려진 분이었다. 그래서 그런 우리 집이 쪼들렸다고 하면 믿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당시 집안에는 모종의 사건으로 빚이 있었고, 8명의 대가족 생활비에 아이들 교육비까지 교수 한 명의 월급으로는 부족했다. 아이들 교육에 지출이 많다는 것이 뭐 비싼 사교육을 시켰다는 건 아니다. 그 당시 사립 국민학교에 아이 셋을 동시에 보내기엔 벅찼다는 의미이다.
그래서인지 당시 아버지는 이런저런 부업을 했는데, 신문이나 잡지에 에세이나 평문을 많이 썼다. 그 원고료가 얼마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아버지에게 들었던 말 중 생생히 기억나는 것은 "원고료 나오면 줄게"라는 말이었다. 아마 교무실에 불려 갔던 날 저녁엔 항상 아버지에게 이 말을 들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 말을 믿으면 안 되는 상황도 가끔 있었는데, 아버지에게 원고료를 주는 쪽이 항상 돈이 많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아침, 아버지 앞으로 온 영문모를 사과박스 하나가 대문 앞에 놓여있었다. 그 안에는 길게 쓴 편지가 들어있었는데, 내용인즉슨 돈이 없어서 원고료 대신 사과를 보내서 너무 죄송하다는 한 출판사의 눈물 젖은 사연이었다.
편지를 본 아버지는 그저 너털웃음을 짓고 말았으며 그것을 소재로 또 하나의 유머러스한 에세이를 썼다. 그때 아버지의 마음이 어땠는지 어렸을 때에는 알지 못했다. 좋은 교육을 받게 하고 싶어서 비싼 학교를 보냈지만 치루어야 할 비용에 허덕이는 부모의 심정. 현금 한 푼이 아쉬울 때 그걸 배신한 사과 한 박스. 그러나 그 출판사의 사정을 이해해줄 수밖에 없는 상황.
육성회비를 사과로 낼 수는 없어서 나는 그 후에도 몇 번 불려 갔고, 아버지가 원고료 대신 사과를 받았다고 얘기할 수는 없었다. 어렸지만 내 마음은 복잡했다. 화가 나는 것도 아니고 부끄럽지도 않았다. 부모가 가난에 대응하는 태도와 그들의 낭만적인 생활방식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나는 가난에 어떠한 감정을 품어야 하는지 잘 몰랐다. 물론 아버지처럼 사과박스에 유머러스한 서사를 부여할 수 있는 나이도 아니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런 부모의 삶의 방식 때문에 나는 심히 비현실적인 경제관념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교무실에 불려 가며 화가 나고 부끄러웠다면, 아버지가 그냥 웃어넘기지 않고 그 출판사에 항의하고 조치를 취했더라면, 아니 애초에 부모가 본인들의 경제 수준에 맞는 학교를 보냈더라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랬다면 나는 가난을 부끄러워하며 가난한 부모에게 화를 내고 현실적인 경제관념을 가지고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까.
물론 이런 공식이 그대로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안다. 하지만 커가는 내내 부모는 우리 형제들에게 "돈"에 관한 얘기를 하지 않았고, 술과 음악과 학문과 낭만에 빠져 살았으며, 심지어 존경받았다. 그것은 내게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었고, 그래서 "돈"에 대해 무관심한 태도를 갖게 만든 것만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과 태도가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곤란한 것은 분명하다. 내 아이가 점점 커서 독립을 할 나이가 되다 보니까, 나도 아이에게 얼마나 돈 얘기를 하지 않았는지 알게 되었다. 아이도 나처럼 경제관념이 없는 것을 깨닫고 그제야 정신이 퍼뜩 들기 시작했다. (물론 요즘 아이들은 다른 맥락에서 돈을 모으지 않고 쓰지만 말이다.) 돈을 추구하는 삶은 아름답진 않지만, 계획 없이 산다는 것이 결코 낭만적일 수는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는 한, 적어도 돈에 대한 개념은 탑재하고 있어야 할 텐데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곤란한 채로 나와 아이는 살아가고 있다. 오히려 돈이 없다 보니까, 돈을 벌고 모을 수 있는 상황이 안되다 보니까, 돈보다 중요한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요즘 세상에는 나의 부모님들처럼 돈이 없어도 존경받을 순 없겠지만, 돈이 없어도 그럭저럭 살아지는 방법에 대해 본의 아니게 실험을 하면서 살고 있달까.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늘 불안하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