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와 가해자
자전거를 타고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때에 꽤나 빠른 속도임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발을 구르며 나를 따라잡는다.
뙤약볕의 섬광이—선글라스 없이는 제대로 눈을 뜨기 어려울 정도의 시큰한 빛이다—비추는 풍경에 어울리지 않는 존재가 열심히 발을 구른다. 필사적인 움직임이 우습기도 한 그는 분명 악마일 것이다.
그는 허겁지겁 뛰며 어떠한 생각을 불어넣는다. 숨도 헐떡이지 않고 조용히, 하지만 논리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의 말은 분명 타당하다. 적어도 그 당시의 나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자전거를 세우고 천천히 걷자, 그도 보폭을 맞춰 걷는다. 점점 격양되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한다. 나는 피해자이며 가해자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 처벌을 피해자인 내가 직접 해야 한다.
그리고 처벌방식에 대한 여러 가능성을 제시한다. 감정 하나 없이 차가운 목소리로 잔인하고(하지만 내가 당한 것에 비하며 이마저도 약하다), 비열하고 (가해자에게 비열이니 뭐니 따질 이유는 없다), 본능적인 (어차피 인간 모두 본능을 따라가는 동물이다)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마침내 그는 소리 높여 연설하듯 혹은 당연한 진리를 이야기하듯 외친다.
"피해자여, 이제 가해자가 되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