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글을 200개 올리고 난 뒤

Essai

by 이다이구

수요일에는 <철학자 상담 서비스>를 발행하고 일요일에는 <문장 수집가의 이야기>를 발행하고 있다. 토요일에도 하나 새로운 시리즈를 발행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현대 철학 배우기>라는 느낌의 시리즈를 구상했다.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설명하는 정보형 에세이 형태를 가질 이 시리즈는 이미 두 개의 에피소드까지 작성해 놓았다.


그런데


논쟁에서 권위를 방패로 쓰는 사람은 지성이 아니라 기억력을 쓰는 것에 불과해


라는 문장을 읽었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에서 읽은 이 문장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한 말이다. 그리고 <현대 철학 배우기>는 그만두기로 했다. 내가 지금까지 쓴 에세이들을 돌아보니 내 생각은 거의 없었다. 아니, 내 생각을 권위 있는 철학자나 문학인의 인용으로 포장해 쓴 글이 대부분이었다. 말 그대로 권위를 나의 방패로 삼았다.


다 빈치의 말에 의하면 나는 나의 지성은 거의 사용하지 않고 기억력에만 의존해서 지금까지 200개의 에세이를 작성한 것이다—정말 그렇다면 대단한 기억력이다. 그렇다 마침 딱 200개의 에세이를 작성했다. 이제는 나의 생각을 담은 에세이를 쓸 때가 되었다는 계시로 느껴졌다. 아니 사실 딱히 그런 계시감도—계시감이라는 단어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기왕 반항하는 분위기니 그냥 쓰기로 한다—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냥 결심을 내렸다. 새로운 도전은 늘 불안하고, 불안하면 지푸라기 같은 근거라도 붙잡고 싶어지는 것이 인간 심리이니 말이다.


이건 또 하나의 실험이다. 이 자유로운 에세이 끝에 나는 자유를 얻을 것인가 아니면 혼란을 얻을 것인가. 아니면 둘 다인가. 이 실험 끝에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공간을 나만의 글 연습장으로 쓰지 않겠다는 나의 다짐은 아직 유효하다. 지금까지는 나의 글은 언어로 표현된 누군가의 사상이 원어에서 영어로 한번, 그리고 한국어로 다시 한번 번역된 글을 또다시 나만의 언어로 다시 한번 옮긴 글이었다. 말하자면 유통된 virtuality(가상성)이다. 하지만 이제 내가 하고자 하는 건 나에게 찾아온 virtuality를 바로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유통과정에서 닳고 닳은 virtuality는 효율적인 정보 전달의 수단이 되었지만 그 안에서 아름다움을 찾기란 영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효율 안에 아름다움이 완전히 존재불가인지는 알 수 없다. 미니멀리즘에서도 어떤 미학적 요소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극단의 효율을 추구하는 것이 과연 효율인가에 대한 의문도 있을 것이다.


어제 심리학 입문서를 하나 읽었다. 어려운 심리학 개념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쓰인 베스트셀러였다. 그 책을 1-2 시간 만에 읽어버렸다. 그만큼 쉽게 읽히는 책이었다. 생각보다 한 권을 빨리 완독 해버린 탓에 다른 책도 골라 읽었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었다.


이전 책처럼 쉽게 읽히진 않았다. 분량은 비슷했던 것 같은데 같은 시간 동안 절반 정도의 분량 밖에 못 읽었다. 영어로 쓰인 책을 읽었을 때와 비슷한 속도였다. 하지만 그 속에서 나는 황홀함과 놀라움을 느꼈다. 강렬한 흥미도 느꼈다. 심리학 입문서에서는 느끼지 못한 즐거움이었다. 아름다움이란 정말로 효율에 있는 것이 아니구나 생각했다.


아무튼 이러한 사고의 흐름 끝에 얻어낸 결론은 나에게 주어진 이 공간에 아름다움을 더하겠다는 결정이었다. 비효율적이고 난해하더라도 불가해한 매력을 남겨보겠다는 시도이다.


이건 일종의 프롤로그이니 주의의 말을 남긴다. 이 에세이 모음에서 정답을 얻으려 하지 않길 바란다. 출처 없는 나의 떠도는 생각에서 진리가 등장하리라 기대하긴 어렵다. 다만 생각거리를 얻어가길 바란다. 사색을 얻어가길 바란다. 그리하여 새로운 virtuality가 당신에게도 찾아가길 바란다. 그 virtuality를 또 당신만의 언어로 세상에 표출해서 이 세상에 다만 아름다움을 더하길 바란다.


더하여 이 글의 목적은 정보형 포스트가 아니기 때문에 글에 등장하는 철학적 개념에 대한 설명은 포함되지 않을 예정이다. 대신 본문 아래에 주석을 달아놓을 계획이다.




1) Virtuality (Virtualität) | 빌렘 플루서 (Vilem Flusser)의 저서 '몸짓들'에 등장한 개념. 글 쓰는 사람이 언어로 표출하려는 작가 내면에 존재하는 태초의 느낌 / 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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