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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고운 Nov 23. 2022

육아일기 대신 회의록

2. 빠른 두 줄

“여보, 약간 가슴이 커진 것 같아. 배도 좀 이상하게 아프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살짝 묵직해진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거창한 태몽도, 엄청나게 핫한 섹스도 없었지만, (물론 성령으로 잉태한 건 아니다) 나는 아주 작은 실마리도 놓치지 않는 탐정처럼 미묘한 조짐들을 주시했다.


며칠 뒤, 남편과 밤 산책을 하다 약국을 지나게 되었다.

자, 여러분, 남녀가 손을 잡고 약국에 들어가서 임신테스트기를 살 때는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요?


"안녕하세요, 뭐 드릴까요?"


약국에 들어서자 젊은 남자 약사가 데스크에서 반갑게 맞아 주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남편은 1초 머뭇거렸고, 나는 1초 빨랐다.


“테스트기 주세요”


결혼 4년 차에 접어드는데 뭐 그렇게 부끄러운 기색을 보일 건 없잖아? 하지만 나도 왠지 임신이라는 단어는 쓰고 싶지 않았다. 그냥 테스트기라고 말해도 이 사람이 찰떡같이 알아들을까라는 나의 고민이 무색하게 약사도 1초 빨랐다. 내 질문과 동시에, 거의 동시에 나오는 기계적 대답.


"몇 개 드릴까요? 두 가지 종류로 드릴까요?"

"엥? 두 가지 종류요? 왜요?"


남편의 머뭇거림을 은근히 타박하는 눈길을 보내려던 나는 멍- 해졌다.


"아, 보통 두 가지 종류로 가져가서 비교 테스트를 해보세요."

“에? 무슨 차이가 있는데요?”

“이 테스트기는 며칠 좀 더 빨리 알 수 있다고 해요.”

“얼만가요?”


그 와중에도 나는 계산이 먼저였다. 아닐 수도 있는데 두 개씩이나 사야 하나. 5천 원을 내고 좀 더 빨리 알 수 있다는 테스트기를 한 개 샀다. 우리 부부는 우와 별 신기한 것이 다 있네라고 몇 마디 주고받으며 태평하게 집으로 향했다. 다음날 조금 일찍 일어나 어제 사온 테스트기를 챙겨 화장실로 향했다. 아침 소변이 가장 정확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잠이 덜 깨 눈을 찡그리며 패키지를 뜯었다. 스틱을 소변에 가져다 댈 때만 해도 만약 임신이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은 1도 없었다. 단지 임신이라면 다이소보다 두배 비싼 이 테스트기가 제 값을 하겠군이라는 얄팍한 계산이 있었을 뿐. 소변이 희미하게 번져가며 종이에 물자국을 냈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결과에 눈살을 찌푸리며 남편을 불렀다.



“여보, 두 줄인데?”

“어? 정말?”


물론 내가 한두 번 장난을 친 전과가 있긴 하지만 자기가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남편은 손을 내밀었다. 테스트기의 두줄은 어느새 더 진해져 있었다. 감정이 빠르게 바뀌기 시작했다. 신기함, 흥분, 재미있겠다! 무언가 이벤트가 떴어! 그리고 난 뒤에 찾아오는 패닉. 여기서부터가 진짜다.


“여보, 나 숨이 안 쉬어져!”


스마트 워치의 심박수가 금방 100을 넘었다. 나에 대한 단 한 가지 정보가 달라졌을 뿐인데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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