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봐봐"
입꼬리를 옆으로 당기고 눈을 반달 모양으로 만든다. 살짝 아이를 쳐다보다가 앞으로 몇 걸음 간다. 한 삼십 장쯤 찍었나? 다음 포인트로 이동.
엄마, 아이와 함께 간 제주도 여행. 저녁을 먹고 숙소에 도착한 후 아이를 씻기고 침대에 누웠다. 티비를 보며 쉬는 시간. 부르르르 진동소리와 함께 사진이 카톡에 빼곡히 쌓였다. 에메랄드빛 바다가 펼쳐진 하얀 모래사장. 여기가 한국인지 동남아인지 분간하기 힘든 야자수와 하늘. 휴지통 버튼을 누르고 싶다. 수많은 사진을 돌려봐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두툼한 볼과 살짝만 미소 지어도 생기는 두 턱, 거대해 보이는 육중한 몸. 찍사는 문제가 없다. 보기 싫어도 인정해야한다. 이렇게 뚱뚱하구나.
마음에 짚이는 게 하나 있다. 지난겨울. 버거운 일상. 할 일은 계속 쌓이는데 제대로 못하고 꾸역꾸역 끌려가는 느낌. 여기저기 요구하는 사람들뿐이다. 퇴근하고 나면 늦지 않게 집으로 와 저녁밥을 하고 아이를 돌봐야 한다. 스트레스를 분출할 곳 없이 코너에 몰렸다. 마음에 생긴 허기를 먹어 채웠다. 기름진 저녁식사에 술도 추가. 뭐 다른 거 있겠어? 대강 분출하며 사는 거지. 인생이 아주 살짝이라도 가벼워지면 좋겠어. 시간이 빨리 가기는 했다. 먹고 마시고 자면 아침이 되었다. 에라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한 달을 보내니 3킬로가 쪘다. 문제는 아이 낳고 쭉 몸무게가 늘은 채로 살고 있었다는 거다. 머릿속 나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산토리니에서 조그만 원피스들을 가뿐히 소화하던 몸인데... 힘든 시간을 보냈으니 됐어. 어쩔 수 없었어. 시발비용이야.
며칠 후 부산에 사는 언니와 조카를 제주 공항에서 만났다. 이모 차가 왜 이렇게 작아? 황금연휴에 렌터카 가격이 비싸 선택한 가장 작은 차였다. 모닝 트렁크에 꾸역꾸역 짐을 넣고 다 같이 좌석에 앉았다. 아이 둘과 어른 셋. 나와 엄마가 운전석과 조수석, 언니가 아이 둘과 뒷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생각보다 탈만한데? 뒷자리에 탄 언니가 말했다. 아이들도 불편하다는 말이 없다. 이 조그만 차가 비좁지 않다니. 언니의 가냘픈 몸 덕이다.
언니는 의류학과에 들어간 후 다이어트를 했다. 옷을 만들고 직접 입어 피팅을 해야한다고 했다. 하루에 세 시간 헬스장에서 살았다. 술은 마셔도 안주는 안 먹었다. 어렸을 땐 분명 나보다 많이 먹었는데. 맨날 자기 몫 꿍쳐놓고 내 꺼 더 달라했는데 다이어트에 성공한 이후 쭉 계속 그걸 유지하고 있다. 날씬한 몸으로 산 게 그렇지 않은 몸으로 산 시간보다 더 많아졌다. 여전히 치맥은 가장 자주 먹는 배달음식이지만, 밥은 새 모이만큼 먹고 바쁘게 부지런히 움직인다. 펜션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옮기고 방바닥을 물티슈로 닦았다. 기억 속 언니와 지금은 참 다르다. 더 이상 언니 옷을 입을 수가 없다.
하나로마트에서 사 온 고등어회와 연어회를 안주 삼아 제주 막걸리를 마셨다. 단맛이 별로 없어 음식과 함께 먹기 딱이다. 저녁을 신경 써서 조금 먹으면 돼. 공부가 가장 쉬웠다는 학생같이 언니는 살 빼는 법을 알려준다. 돌아가면 진짜 살 빼야지. 어떤 모습이든 나를 사랑하기는 해야지만, 하늘하늘한 몸으로 살아보고 싶다. 하얀 면티와 청바지를 예쁘게 입은 채로 엄마들 속에서 아이 하교를 기다리는 모습을 떠올리며 평생 한 지겨운 다짐을 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