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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취 Nov 06. 2022

사램이 오죽허면 글켔냐

아버지의 해방일지

 아버지는 빨치산. 주변 가족들은 그로 인해 씻을 수 없는 피해와 상처를 입었, 아버지는 감옥에 갔다. 유년시절을 함께 할 수 없었기에 딸인 나와 아빠 대면대면했다. 그런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딸의 시점에서 적은 이야기이다.



 가장 큰 복은 부모를 잘 만나는 것이라 했던가. 한 날 한 시에 태어나도 어디서 자라는지에 따라 사람은 전혀 다르게 살아간다. 나고자라며 부모의 환경은 내게 대물림 되고 그것이 삶이 되어가는 까닭이다. 부모를 원망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발목을 붙잡는 결핍을 내게 준 사람들이라는 의미에서 가장 가깝고도 치명적인 사람들이다.



 한국 역사의 뒤안길에서 빨치산이라는 존재는 반공 이데올로기에 사로 잡혀있던 시절 반드시 척산해내야 하는 위험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가족에게도 연좌제의 책임을 묻고 사회 생활에서 공직에 오를 수 없게 하는 등 직접적인 피해를 입혔다. 어떤 사람이건 간에 빨치산이었다면 그는 딸과 그 가족에게 자랑할만한 아버지, 삼촌, 형일 수 없다. 그러던 아버지가 갑자기 어느 날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사망한다. 세상이 손가락질하며 모질게 다루던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딸은 아버지 곁에 있던 주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를 한 사람으로 알아간다.




P44 내 아버지에게는 소멸을 담담하게 긍정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었고, 개인의 불멸이 아닌 역사의 진보가 소멸에 맞설 수 있는 인간의 유일한 무기였다.




 '사램이 오죽하면 글 컸냐'를 노래방 18번처럼 얘기하던 아버지. 남들본인에게 모질게 대해도 피해를 입혀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사회의 구조적 모순 탓이고, 그래서 더더욱 혁명이 필요하다 했던 아버지. 그가 남긴 것은 장례식장에 모인 사람들이고 그들과 함께 산 삶이었다.




 사투리가 익숙하지 않아 이해하는데 좀 애를 먹었다. 그럼에도 책을 놓을 수 없었다. 아버지를 마주하고 세상을 받아들인 그가 진지하게 풀어낸 이야기가 유쾌해서 중간중간 눈물이 많이 났다. 몇 번 다시 읽어야 할 것 같다. 내게도 마주해야 할 가족이, 세상이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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