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웰컴 투 서울 홈스테이>를 읽고
밀레니엄이 덤덤해진 이천 년대 후반. 대학에 입성했다. 무한 경쟁 입시 지옥을 벗어났다는 해방감에 어떻게든 놀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남이 말한 것을 무비판적으로 듣고 외우는 것에 지쳐 있었다. 옆자리 친구와 점수로 비교되고 성적을 시기 질투하고 싶지 않았다. 뭔가 잘못된 것 같았다. 같은 나이대 사람들이 한 가지 척도로 평가받기 위해 엄청난 돈과 시간을 쓰는 게 무슨 의미인가 하면서도 도태될까 두려운 마음에 제도에 순응했다. 그 시간이 지나고 나니 자연스레 다른 나라에 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세상 전부는 아닐 거라 믿고 싶었다. 뭔가 밖에 해답이 있지 않을까? 내가 산 이 나라보다 더 나은 곳이 있을거라 생각했다.
'서울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지 마라. 지구 반대편에서 누군가는 미친 듯이 열망하는 이 아름다운 이 도시' <웰컴 투 서울 홈스테이> 서문에 나오는 문구이다. 떠나고 싶은 나와는 반대로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이 나라 문화와 사람에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다. BTS가 앨범을 발표하면 수록곡이 빌보드 차트에 오르고 오징어 게임의 주인공이 유명 시상식에서 호명된다. 아시아권에서 한류로 불리던 흐름이 전 세계로 넓어지고 기대김을 갖게 하는 트렌디한 문화로 인식된다. 열풍에 힘입어 많은 외국인들이 우리나라를 찾는다. 단기 여행뿐만 아니라 다양한 전공을 가진 외국인들이 장기간 배우며 우리나라를 깊숙이 체험하고 살기 위해 한국에 온다.
<웰컴 투 서울 홈스테이>의 저자는 외국 경험이 많다. 교환학생을 두 차례 다녀와서 이미 홈스테이 게스트로 살았다. 평생 전업주부로만 산 엄마. 요리와 청소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다고 하는 엄마에게 그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이야기한다. 자신의 경험과 엄마의 능력을 믿고 집에 남는 방 한 칸으로 외국인을 상대하는 홈스테이를 시작했다. 참고할만한 게 주변에 없었기에 둘이 우여곡절을 고스란히 겪으며 경험을 쌓아나갔다.
3년간 30여 명 게스트가 그들에게 남긴 것은 편견을 깨는 경험이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넓은 시야이고 소중한 인연이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 홈스테이 운영이 어려울 거라는 생각과 달리 영어를 잘 못하는 엄마가 있기에 한국어를 배우고 싶은 학생들은 무조건적으로 언어를 접했다. 그리고 여행객들이 주로 이용하는 에어비앤비와 달리 장기투숙객들이 오기에 한국어를 어느 정도 할 줄 아는 외국인들도 있었다. 엄마는 자신이 잘하는 요리로 학생들을 정성껏 대접했다. 몇몇은 자국의 음식을 재료까지 직접 공수하여 답례로 해주었고 그들은 글자 그대로 먹을식에 입구, 함께 밥을 먹는 식구가 되었다
저자의 엄마같이 중장년층 나이대가 되면 일이 점점 줄어든다. 금전적 부담을 안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은 쉽지 않다. 심지어 한 번도 경제 활동을 해보지 않았다면 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고 일할 능력이 없는 것은 전혀 아니다. 능력을 경제적으로 인정받고 펼칠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재원을 주변 가까이에서 찾아봐야 한다. 장성한 자녀가 결혼, 취업 등으로 집을 떠나고 큰 짐을 쌓아두는 창고 같은 방이 있다면 홈스테이를 바로 시작할 수 있다. 책에는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이 그대로 따라 할 수 있도록 타겟 고객층 분석부터 게스트와 연락할 때 써야 하는 내용까지 자세히 팁이 적혀 있다.
시간이 많이 흐르고 내가 경험한 많은 것들이 라떼가 되었지만 입시전쟁과 경쟁의 승자가 주류를 이루는 문화는 변하지 않았다. 그럼 여전히 나는 다른 나라에 가고 싶은가. 답이 거기에 있을까. 어느 나라에나 역사, 문화 그리고 제도가 있다. 이 땅에서 벌어진 일들이 있고 필사적으로 헤쳐나간 사람들이 있다. 지금의 문화, 제도는 그들이 치열하게 만들어낸 것들이다. 덕분에 많은 것을 누리며 살고 있고 어떤 것이 더 나은가를 고민하며 대안을 생각한다. 앞으로 만날,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상상을 도울 것이다. 저자가 홈스테이에서 만난 게스트들과 얘기하면서 서울을 더 알게되고 사랑하게 된 것 처럼 말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앞으로 생길 일을 두려워하지 말고 저지르고 나아가보자! Go for 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