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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취 Jan 04. 2023

일 학년 휴직의 시작

초콜렛 상자 개봉

 


2023년 새해가 밝았다. 오랫동안 개봉하기를 기다렸던 초콜릿 상자를 열어 하나씩 차례로 달콤 쌉싸름 맛을 음미한 후 남은 2개의 초콜릿을 바라본다. 아쉬움보다는 입안에 남아있는 맛과 향이 다 사라지기 전에 휴직 기간을 기록하고 싶다. 얼마나 기다려왔던 시간이었나.






 아기가 걷기 시작하고 복직한 후부터 줄곧 8살 되는 해에 휴직하는 것은 정해져 있었다. 주변 선배교사들은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 휴직 다시 해. 그게 꿀이야"

라고 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는 체계가 많이 달라 어른의 도움이 많이 필요한 시기이고 아이가 잘 적응하면 엄마 역시 쉴 수 있다고 했다. 일을 계속하다 보니 저 말은 점점 정석처럼 느껴졌다. 유치원은 놀이 중심이지만 초등학교는 교과중심으로 수업이 이루어진다. 한반에 있는 학생수도 더 많아진다. 무엇보다 40분간 자리에 앉아 수업을 받는 편제에 아이들은 익숙해져야한다.  과정이 쉽지 않을 터였다. 아이가 학교에 입학해서 적응하는 시기인 3월은 내게도 가장 정신없는 달이다. 담임교사는 학생들 관련 서류작성과 교육과정을 준비하는 학기 초와 생활기록부를 작성하는 학기말이 제일 바쁘다. 물리적으로 초등학교 하교 시간인 1시 내외에 맞춰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했고 아이의 떨리는 마음을 차분하게 듣고 함께 이야기 나누려면 내 마음의 안정도 필요했다. 그래서 학교를 옮기자마자 육아휴직을 내냐며 역정을 내는 교감선생님의 전화를 뒤로한 채 너무나 당연하게 육아휴직을 냈다.




 귀한 이 시간을 나는 어떻게 보내야 할까. 아이와 그동안 함께 하지 못했던 황금 같은 오후 시간을 같이 알차게 보내고 싶었다. 일을 끝내고 집에 헐레벌떡 와 저녁식사를 차려주고 나면 방전되어 있었다. 아이는 엄마와 놀고 싶다는 눈빛을 마구 쏘는데 영혼 없는 리액션만 나왔다. 마음속에 미안함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그것을 털어낼 좋은 기회였다.

 이사와서 새 학교 적응하는 것만 해도 힘드니까 학원은 가지 말고  엄마랑 이거 저거 해보자."

직업이 아이들 가르치는 건데 지금까지 쌓인 경험을 내 아이에게 쓰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았.


 놀이터에서 많이 놀고 도서관도 가고 다 해보자 우리. "

 



 아이가 학교에 간 오전 시간은 나를 위해 오롯이 쓰고 싶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할까? 뭘 할 때 재밌을까? 어렸을 때 쓰던 백문백답을 써봐도 쉽사리 결론이 나지 않았다. 왜 스스로에 대해 이리 모를까 답답했다. 결혼하 오랜 기간 행동에 대한 선택 기준이 돈과 가족이었다. 저렴한 것을 고르고 아이 돌보는 것을 우선순위로 두었다. 올해는 내 재미와 흥미에 초점을 맞춰보자 결심했다. 쉽게 얻을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다. 돈은 작년까지 처럼 꾸준히 지 않았나. 건강을 위해 운동도  하면 좋겠다. 살이 빠져서 예뻐지면 더 좋고. 아니 빼고 싶다. 때마침 동네에 새로 오픈하는 필라테스 짐이 이벤트를 했다. 무려 72회 7개월이나 되는 장기계약을 하고 왔다. 역시 나란 사람 회당 비용을 무시 못한다. 유행하는 운동이니 효과가 있겠지.





 그렇게 큰 그림만 그린 채 휴직을 시작했다. 2월 초 코로나에 걸리고 격리기간이 해제되자마자 이사를 마쳤다. 컨디션이 엉망이었다. 겨울잠 자는 곰처럼 잠을 푸지게 자고 눈을 뜨면 집을 정리하며 안내장을 보고 필요한 물품을 챙겼다. 1학년 첫 입학이니 백화점에 가서 아이가 좋아하는 파란색 가방과 실내화주머니를 샀다. (나중에 등하굣길에 똑같은 가방 열개도 넘게 봤다.)  교실에서 쓸 가위와 색연필 등에는 잃어버려도 찾을 수 있게 이름 스티커를 붙이고 떨어지지 않게 그 위에 테이프로 위에 한번 더 감았다.




 우리애는 반에서 어떤 모습일까. 선생님과 눈은 잘 마주칠까. 친구들이랑 잘 어울릴 수 있을까. 가르쳤던 수많은 아이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설렘반 기대반 걱정반에 마음이 두근두근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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