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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취 Jul 23. 2023

7월 18일 그리고 22일


 며칠 전 갔던 청소년 진로 캠프에서 아이는 나를 똑똑한 엄마라고 소개했다. 이어 우리 엄마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예요.라고 덧붙였다.  자랑스럽게 여기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며 고마웠지만 한 구석씁쓸했다. 수년동안 다른 일을 할 수 없을까 오랫동안 고민 중이었다. 어떻게든 도망치고 싶었다. 주변 사람들은 교사면 대부분 부럽다며 삶이 행복하냐고 묻는 그럴 때마다 나는 정작 이해가 되않았다.



 우리 반엔 수업시간에 필요한 학습지를 매번 잃어버렸다며 당당하게 말하는 아이가 있다. 본인 심기에 거슬리면 아이씨 아이씨 하며 가위로 책상을 툭툭 치며 수업을 방해한다. 피구 시간 자기가 원한 아이와 같은 팀이 되지 않으면 아무렇게나 공을 던지고 내가 망쳐버릴 거야라고 소리 지른다. 수시로 기분이 안 좋으면 욕을 내뱉으면서 지도하면 감정을 상하게 한 아이 탓을 하며 물고 늘어진다. 자기 변화 계획서를 써도, 따로 마음 읽기를 하며 지도를 해도 그 순간만 들을 뿐 교실로 돌아가면 똑같다. 부모는 아직 애라서 그렇다며 아이가 자존심이 센 편이라 했다.



 생활지도만 어렵나. 아이들 하교하면 다음날 수업준비를 해야 함은 당연한데 교육지원청에서 쏟아내는 공문처리며 학교에서 주어진 학부모회, 학생자치회 등 업무 하기에도 시간은 부족하다. 해야 할 일은 산더미라 화장실 갈 시간도 없다. 심지어 책임은 무한이라 애들에게 해야 하는 안전교육만 가족폭력, 신변 안전, 도박중독, 여름철 식중독, 물놀이 등 수십 건이다. 정작 내가 아플 때 보결해 줄 교사가 제대로 없어 병가도 제대로 쓰지 못한다. 교사들조차 다들 이런 환경을 쉬쉬하니 능력이 없어서 이 일이 벅차나 했다. 성향이 교직과 안 맞아서 그런가 생각했다. 만의 일이구나. 조용히 힘든 일들을 참고 마음에 묻으며 내년은 더 나을거야 위안할 뿐이었다.



 18일 저녁 2년 차 신규 교사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가슴이 먹먹했다. 학교에서 생을 마감하기 전 아이들 간에 있던 일로 수십 통의 전화를 받았고, 아이들 케어를 어떻게 했길래 이런 일이 일어나냐. 교사 자격이 없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나만의 문제가 아니구나. 내 탓으로 돌려 참는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담임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묻는 시스템과 문화가 점점 심해져 저경력 어린 선생님들에게 더 큰 피해가 간건 아닐까. 처음 경험하는 세계에서 엄청난 무력감에 짓눌렸겠지. 나를 포함한 선배교사 집단이 오랫동안 참고 묵인해 담임 무한 책임 구조가 굳어진 것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학교는 다양한 아이들이 단체 생활을 하는 곳이기에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것에 대한 모든 책임이 온전히 담임교사에게 있다면 무슨 교육 활동을  수 있을까. 교내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아동을 지도하며 나머지 아동들을 가르칠 수 있도록 시스템상 지원 인력이  필요하다. 관리자이자 경험 많은 선배교사인 교감, 교장이 역할을 도맡거나 그것만 하는 전문 교사들을 배치해야 한다. 그 반의 다른 아이들, 담임과 분리해야 한다. 학부모 민원 역시 따로 그곳에서 처리해야 한다. 그래야 담임교사가 학생들을 제대로 교육할 수 있다. 동시에 나머지 학생들의 학습권도 보호할 수 있다.  





  어제 22일 보신각 집회에 참여했다. 어떤 단체의 도움도 받지 않고 개별 교사가 기획하고 다른 교사들의 자원봉사로 이루어진 집회였다. 집회에 필요한 비용 역시 기획한 교사 지불했다. 비용정산을 투명하게 공개 후 한 사람당 1000원만 후원을 받는다고 했다. 많은 교사가 함께 했단 의미를 주기 위함이다.


 집회에선 자유발언 시간에 여러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기간제로 채용되고 학급에 선지 1시간 만에 아동학대 신고를 받은 선생님부터 우리에게 놓인 현실의 문제를 조목조목 이야기 하신 분까지 다 고개가 끄덕여지더니 이후 마음속 참아왔던 분노가 일었다. 그러다 이하이의 '한숨'을 듣는 순간 눈물이 터졌다. 주변 모두 다같이 눈물과 콧물을 훔치고 있었다. 마지막 자유발언은 교사발령 6개월 만에 다른 세상으로 떠난 자식을 둔 부모님이 하신다고 요청하셨다는데 끝내 오열로 하지 못했다고 다.



 


 그간 각자의 공간에서 스스로 탓을 하며 힘들어하던 우리가 이번에 처음으로 모였고 서로의 아픔에 공감했다. 그 계기가 서이초 선생님의 죽음이었다. 집회가 끝나고 서이초에 간다는 교사 친구를 따라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엔 교사뿐만 아니라 다양한 시민들이 보였다. 군인, 가족, 청소년 등 정말 많은 분들이 젊은 교사를 애도하고 있었다. 한 시간이 넘게 줄을 기다려 따라가니 가장 음침하고 후미진 곳에  그분이 근무했던 교실이 있었다. 햇볕도 들지 않는 곳. 거기서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을 그를 생각하면 마음이 쓰라렸다.


 


 수많은 애도 쪽지 중 눈에 들어오는 게 있었다.


가해자는 학부모 공범은 관리자


 경찰은 동료교사만 조사를 하고 학부모는 필요시 조사를 하겠다 했. 분명 그 일이 있기 전 학교를 찾아와 난리 친 학부모가 있는데. 전화번호를 알려주지 않았는데도 소름 끼치게 계속 전화를 한 학부모가 있는데 왜 전수 조사를 하지 않는가. 나는 교사지만 학부모이다. 우리 아이 반에서 이런 일이 이러난다면 조사를 하는 거를 부당하다고 느끼지 않을 거 같다. 담임선생님의 죽음에 조사를 왜 하지 않는지 무슨 일이 정말 있었나 의문이 들 거 같다. 아동학대는 의심만 들어도 진위여부 따지지 말고 바로 신고하고 조사하라 교사들에게 교육하고 실제로 그런 이유로 관리자가 교사를 신고한 사례가 많은데 왜 교사가 죽었을 땐 관련 있다고 이야기 나오는 사람이 있는데도 조사하지 않는 걸까.


 


 추모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중학생 때 같은 반이었던 오랜 친구와 걸어오며 그간 학교에서 근무하며 있었던 일들을 하나씩 터놓기 시작다. 작년에 떠밀려 연구부장을 하며 처음 상담센터에 찾아가 상담을 받았다고 . 많이 힘들었겠다 라고 하며  차마 나는 매일 처방받은 약을 먹으며 잠이 든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아직도 내가 능력없어 보일까 두려웠나. "너는 애들 뭐든 다 품어줄 거 같아"라고 하는 친구 말에 "그래서 힘든가 봐" 하고 그저 씽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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