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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엉 Nov 17. 2020

누구에게나 보이지 않는 약점은 있다.

제주한달살기 4일 차, 거문오름 탐방하기 

세계 자연 유산인 <거문오름> 탐방에 나섰다.


제주도에 있는 수많은 오름들 중, 유일하게 

예약을 해야지만 갈 수 있는 곳이다. 

시간당 인원이 제한돼 있어 주말에는 

미리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참여가 불가능할 정도로

인기가 많은 곳이라고 한다.      

코로나 이전엔 해설사가 탐방 내내 해설을 해주셨지만, 

현재는 해설은 제외하고, 인솔만을 해주신다고 해서 

다소 아쉬움을 품고 탐방로에 나섰다.

분화구. 날씨가 조금 흐렸지만, 그래서 더 운치 있었다. 


하지만 중간중간, 중요 포인트에서는 

짧은 설명을 해주시긴 하셨다.


해설 없이 탐방을 한다면, 그 감동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며

내내 아쉬움을 표하시는 해설사분의 태도에서 

직업의식과 거문오름을 사랑하는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산신령과도 같은 속도로 빠른 걸음으로 인솔하는 해설사님의

뒤를 바짝 쫓느라 어느새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몇 년째 늘 걷는 길이라서 그러신 건지, 걸음걸음에 거침이 없었고

사뿐사뿐 걷는 듯한데도 어느새 저 앞에서 사람들을 기다라고 계셨다.  

 

예약 당시에도, 후기 곳곳에  인솔자분의 걸음이 너무 빠르다는 

것들을 종종 읽어서 바짝 긴장하고 갔으니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다소 놀랐을 것 같다. 


뒤에 따라오시는 분들이 어쩜 저렇게 빠르냐며 수근 수근

신기해할 만큼, 

크게 숨 한번 몰아쉬지 않는데 해설사님은 어느새 저만치 앞서 가 계셨다.      


그 뒤를 바짝 쫓아가는 선두 인원 5명 내외에 속한 나는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바쁘게 걸어오는 사람들을

중간중간 포인트에서 기다리는 해설사님 뒤에 서서 숨을 골랐다.      

그러다 문득 발 끝을 타고 올라오는 통증에 

흠칫, 놀라 발목을 부여잡았다.


‘이러지 말아라, 지금 아플 때 아니다.. 좀 봐줘라 내 발아’   




      

<누구나 자신만의 보이지 않는 약점이 있다. >     


나는 걷기를 사랑한다. 

걸음걸음마다 떠오르는 공상과 사색에 푹 빠져,

끝없이 걷는 즐거움.     

여행을 가면 대중교통 이용을 최소화하고

가능한 모든 코스를 걸어 다니려고 노력할 만큼 

느리게 그리고 깊이 있게 다가오는 순간들을 사랑한다.      


초등학생 시절엔 

이런 나를 두고 엄마는 ‘종 잡을 수 없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똑바로, 늘 걷는 길로만 오면 되는데 

나는 이 길로 갔다가, 저 길로 갔다가

왔다 갔다 하면서 하교를 해 도저히 어느 길로 오는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 버릇은 지금까지도 여전하다.     


한 번은 일본 여행을 떠났을 때, 골목골목을 돌아보는 것이 즐거워 

한 참을 걸으며 여행을 즐기다 보니 

어느새 일 평균 4만 부를 찍은 적이 있었다.

제일 적게 걸은 날이 3만 보, 많이 걸은 날이 5만 부 후반. 


문제는 이렇게 걷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원래 이렇게 걸으면 ‘안 된다’라는 함정이 있다.     


나는 부주상골 증후군을 갖고 있다.

발목과 엄지발가락을 이어주는 주상골에 붙어 있는 뼈가 완전히 

붙어 있지 않는 증상을 말한다. 복숭아 쪽에 뼈가 하나 더 있는 느낌이어서 

‘액세서리 뼈’라고도 부른다고도 한다. 


전 세계 10% 정도의 인구가 갖고 있는 흔하다면 흔한 질병이기는 하지만 

나는 조금 심한 편인지 조금만 많이 걸어도 발 근육에 염증이 생기고

통증이 발생한다.  

         

오래 걷지 않는 일상생활 중에도 발을 디디는 순간 뜨끔한 통증이 몰려와 

한번씩 눈물이 찔끔 날 때도 있다.      

무리하게 운동을 하면, 어김없이 통증은 재발한다.

특히 겨울철엔 수시로 염증이 생겨서 꼭 한 번씩은 병원에 가서 

염증 주사를 맞거나 물리치료를 받아야 한다.

      

나와 같이 통증이 심한 경우는,  

무리하게 발을 쓰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라고는 하는데..

‘걷기’를 좋아하는 나에겐 정말 치명적인 질환이다.      


내가 이 말을 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내가 발이 좋지 않다는 것을 잘 모른다.


혜화에 있는 직장을 다닐 당시엔, 

퇴근 후 시간이 못 내 아쉬워서 

시청역까지 걸어가서 지하철을 타는 일이 잦았다.

발이 조금 피곤하면 을지로입구역, 정말 정말 발이 아픈 날은 

보통 동대문 문화공원역으로 향했다.      

이런 내게 사람들은 ‘근데 발이 안 좋다고..?’라며 의뭉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종종 사람들에게 

‘나는 조금 조심해야 하는 발을 갖고 있어’라는 말을 하면

다들 놀라는 것을 보며,

문득 누구에게나 나처럼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보이지 않는 약점 혹은 결함 하나씩은 

품고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방이 말하기 전까지는 

그 사람의 약한 점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나만 하더라도, 보이는 행동과 ‘실제’ 사이엔 그 간극이 존재하니까.

그래서 사람을 마주할 때

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거나,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 

태도를 가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함께 거문 오름 탐방로를 오른 50여 명의 사람 중에,

선두그룹에 속했던 내가 

발이 아픈 증후군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그저 저 선두그룹 사람들 체력이 좋네, 혹은 발이 빠르네 라고 생각했겠지.      


점점 나이가 들수록, 나의 조금은 불편한 발 덕분에

‘보여지는 것’과 ‘보여지지 않는 것’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다.    


참, 감사한 병이다.  



  

<정보>

거문오름 탐방로는 

하루 전, 오후 5시까지 인터넷 사전 예약을 해야지만 

갈 수 있다. 당일 현장 예매가 불가능하다.

모르고 방문했다가 허탕을 치시는 분들이 꽤 많은 듯하다.

꼭, 예매를 하자. 


내부에 '생수' 외엔 어떤 음료나 음식물도 반입이 금지되어 있다.

혹시 실수로 가져갔다면 탐방로 입구 사물함에 보관할 수 있다.





거문오름 탐방로에서 내려와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올티스’라는 찻 집에 갔다.

올티스 티 마인드 클래스는

4가지의 차를 직접 사장님이 설명과 함께 내려주시고 

시음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10,000원에 4잔의 향기로운 차를 즐길 수 있고

판매하는 차를 사게 되면 시 음료 10,000원을 할인해주신다. 

거문오름 탐방 12시 시작, 2시 25분경 종료 

3시 티 마인드 클래스를 예약하니 시간이 딱 알맞아 참 알찬 하루를 보냈다.

혹시 거문오름 탐방을 계획 중이라면 

이 코스를 꼭 추천하고 싶다.           

 

목소리가 참 좋으셨던 사장님. (사장님 얼굴 등장은 허락을 받았어요!)


TMI. 

거문오름 탐방 중 노루를 두 마리나 만났다...행운이다.  



한 달 동안 제주도에 머물면서 떠오른 생각들, 여행일지들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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